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7-07-16   1457

<안국동窓> 연봉 2000만원대 변호사가 필요하다

변호사 양성제도 개혁을 위한 제안

로스쿨 도입과 함께 사법시험은 2014년경에 폐지된다. 사시 폐지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부여하는 몇 남지 않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어지고, 로스쿨 제도는 계층 간의 격차를 고착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일 뿐 아니라, 그 하나조차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다.

시험 한번 잘 치면 인생역전?

일회성 필기시험은 그 시험에 대비하여 자원을 집중 투자할 여력이 있는 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끼니를 때우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던 시절, 전란으로 폐허가 되어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에는 일회성 필기시험이 공평했다.

그러나 계층간 격차가 현저히 벌어진 이제는 일회성 필기시험의 가장 큰 수혜자는 형편이 어려운 응시생이 아니라 넉넉한 자금과 여력이 있는 응시생이다. 고시생에 대한 체계적 장학금 제도는 없다. 반면, 로스쿨로 인가받기 위해서는 취약계층에 대한 장학제도를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

한판 시험 만능을 부르짖는 자는 이 사실을 간과하였거나, 이 점을 알면서도 자기 계층의 이익을 영속화하기 위한 이기적 주장을 피상적 ‘공평’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사시합격으로 ‘신분상승’이 이루어지는 것이 마치 당연한 일인 양 여기는 데 있다.

일회성 관문의 통과로 단숨에 인생역전이 가능한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극심한 독과점 체제가 존재해야만 이런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꾸준한 노력과 지속적 자기계발이 정당히 보상받는 사회가 정의로운 것이다.

사시폐지를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사시합격에 부여되는 독과점 프리미엄을 합리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을 고안하는 데 노력할 일이다. 그 해법은 현행 사법연수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수습변호사 제도를 적절히 운영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왜 나랏돈으로 수습 직원에 월급줘야 하나

사법연수제도는 자영업자(변호사도 자영업에 불과하다) 연수에 연간 500억원이 넘는 국가 예산을 쏟아붓는 제도이다. 초보법률가가 각자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진출하여 실제로 일을 배우며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시점을 2년 간 인위적으로 유예하는 제도이다.

그 대신, 그 기간 동안 자기들끼리의 소모적 등수경쟁에만 올인하도록 강요하는 특이한 제도이다. 한 마디로 우리 법률서비스 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에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

국가가 모든 것을 맡아 해야 한다는 집착과 편견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다. 국민들은 지금껏 사법연수생에게 1인당 연봉 1800만원 가량씩 지불해 왔다. 의사가 되기 위해 연수를 받는 인턴·레지던트의 월급을 국민 세금으로 지급한다면 과연 납득이 갈까? 회계사가 되기 위해 수습 중에 있는 인력에게 나랏돈으로 월급을 주는가?

인턴·레지던트는 병원운영에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라도 한다. 사법연수생은 그런 기여는커녕, 자신만을 위한 등수 놀음에 골몰하면서 무슨 명분으로 급여를 받아가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어째서 이들에게는 고위 공무원 대접까지 덤으로 얹어주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법연수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연수생에게 수습변호사 자격을 부여하고 취업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적절한 훈련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채용주체에 한하여 수습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습변호사 급여의 하한을 정할 필요는 있다.

2년간의 수습계약직을 거치지 않으면 정식변호사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는 제도에서 수습인력 급여의 하한을 정하지 않으면, 일종의 ‘덤핑’ 사태와 노동력착취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연봉 2000만원을 하한으로 정해두면, 각 채용주체는 자기 위상에 걸맞은 수준의 급여를 제시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수의 수습변호사를 채용하게 될 것이다. 저렴한 연봉으로 2년간 고용할 수 있는 수습변호사를 매년 채용할 수 있다는 것은 로펌으로서는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2년간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자에게는 수습기간 종료와 동시에 정식고용 제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영국의 로펌들은 법률인력의 약 10~15% 정도를 수습변호사로 편성하고 있다.

변호사 가뭄에 로스쿨 단비를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법률인력이 필요하긴 하였으나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무수한 주체들(정부 부처·지자체·공기업·사기업·NGO 등)이 수습변호사를 채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정거래위·감사원·국회·금융감독원·소비자 보호원 등 ‘변호사 가뭄’에 시달리던 주요 기관들도 비로소 넉넉한 수의 법률인력을 지속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변호사 수는 이처럼 연봉 2000만원대의 전문법률인력이 풍부히 존재하는 상황이 와야 정확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연간 1000명 변호사 배출도 ‘너무 많다’는 아우성은 비정상적으로 비싼 몸값의 변호사들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법률인력에 대한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비쌌기 때문에 수요가 위축된 데 불과하다.

물론 모든 변호사가 연봉 2000만원대에 머물 리는 없다. 수습기간이 끝나고 지속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변호사는 그에 상응하는 고소득을 누릴 것이다. “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 욥 8:7)”. 약관의 나이에 시험 한번 붙었다는 이유로 당장에 “영감” 대접을 해주는 제도는 진작 사라졌어야 했다.

※ 이 글은 7월 14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김기창 (고려대 법과대학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