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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6.05.25
  • 1249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지방선거 열기에서 무언가 주권의 역동성 같은 것을 감지한다. 지방 행정부의 장을 뽑고 의회를 구성하는 일은 헌법이 정한 의무다. 거기에 가려 있긴 하지만, 사실은 그에 못지않은 헌법기관의 구성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지방선거일을 전후하여 새 대법관 후보 다섯 명이 사실상 결정될 전망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방자치단체 선거보다 더 중요한 정치행위일지 모른다. 선거야 유권자의 결단에 따르면 되지만, 대법원 구성은 전적으로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제청권자인 대법원장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섯 명이면 전체 대법관 14명의 3분의 1을 넘는다. 참여정부가 이미 임명한 대법원장을 포함한 아홉 명의 대법관을 모두 계산하면, 사실상 대법원 구성을 송두리째 바꾸는 셈이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제럴드 포드의 말이 종종 인용된다.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 중 연방대법원 판사 지명만큼 국가 장래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없다.” 우리도 사법의 역사를 반복할수록 그 의미를 절감한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대법원장은 국민의 희망과 시대의 요구와 사법부의 미래가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뽑아주고 임명한 국민들이 바라는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장 스스로 취임 연설에서 사법부의 과거청산을 말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앞으로의 사법부는 그런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목표는 더욱 분명해진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은 지난해 10월 서열에 구애받지 않고 두 명의 대법관을 임명하여 환영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임명권자와 제청권자는 새 다섯 자리를 두고 무얼 망설일 필요가 있겠는가. 지난번 발탁에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왜 되풀이의 당위성이 없겠는가. 지난번 파격 인사가 일회적 정치선전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거듭하여 그 시대적 정당성을 확고히 해야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 반론들이 만만찮다. 서열을 무너뜨리는 대법관 임명은 다양화를 핑계 삼은 특정 정치세력의 대법원 거점화라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법관들이 상심했다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도 한다. 그런 항변은 언뜻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사법부의 허리춤을 부여잡고 늘어지는 구태의 관료제에 대한 허망한 미련에 불과하다. 서열을 고집하는 항변은 섣부르고 거칠다. 서열이 능력이나 평정의 순위를 말한다면 대법관 시험이라도 치러야 할 판이다. 하지만 대법관이 법관 승진의 마지막 자리가 아니란 사실을 너무 가볍게 간과하고 있다. 대법원이 사법 관료제의 마지막 관문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정책 법원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법원 내부의 요구이기도 하다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옛 생각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들에겐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대법원이 마치 파탄의 길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파괴로 보이는 것이 기실은 변화다. 변화가 두려우면 조금 참고 바라보면 된다. 변화란 내일의 사법부가 자리할 새로운 공간의 창출이다. 당장 그 기초작업의 일부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맡았고, 우리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차병직 (변호사,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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