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4-10-27   1352

<안국동窓>아인슈타인이 헌법재판소에 보내는 충고

관습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억압적인 측면이 많다. 이전부터, 어릴 때부터 사리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서 우리의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 관습이다. 따라서 관습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회적인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제도와 사상을 추구하는 것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것이었으며, 개인이 경우에는 관습 내지는 이전의 선입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을 자유롭게 가꾸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인 관습과 개인적인 관습이 어떻게 사회적 발전과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했는가를 갈릴레오와 아인슈타인의 경우를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다. 이 두 사람의 예를 드는 것은 모두가 전세계적으로 천재적인 물리학자며 우리가 세계와 우주를 보는 방식을 새롭게 열었다는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이 별로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잘 아다시피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믿었다. 지동설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확신했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는가. 세상에 신이 창조한 인간이 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한갓 행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또 당시 유럽에서 사람들이 피부속까지 스며들어있는 진리가 아닌 관습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한 개인으로서 버거운 일이었겠는가? 종교적 세계관이 과학과 학문을 지배하고 이러한 세계관이 사회적인 관습을 만들어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시절에 그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 당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관습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차라리 불변의 진리요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일상생활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바꿀 수 있는 헌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관습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관습이 잘못된 관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갈릴레오는 결국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만다. 당시 종교재판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헌법재판소보다 더 권위있고 무서운 곳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관습에 대한 도전이 너무 힘겨운 일이었기에 갈릴레오는 결국 관습에 굴복을 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진리를 거역할 수 없던 그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또한 전해져오고 있다. 이것은 종교재판의 판결에 대한 갈릴레오의 소극적인 저항의 한 형태라고 해석해야만 될 것이다. 시대가 지난 지금은 어떤가, 갈릴레오가 옳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보다 더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당시 재판관들이 틀렸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 아닌가.

갈릴레오의 경우와 같이 사회적 관습이 진리를 억압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개인이 관습에 집착하여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것도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적인 물리학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관습이 개인이 사고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이것을 편견 내지는 선입관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선입관, 법률적 선입관, 종교적 선입관, 학문적 선입관 등 모두 크게는 관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리학에 문외한이 사람들도 아인슈타인하면 상대성이론이 창시자라고 알고 있다. 상대성이론이 기존의 학문적 성과, 학문적인 관습, 학문적인 선입관을 얼마나 타파하고 새로운 학문의 경지를 열었는지는 모두 인정한다. 이런 아인슈타인도 학문적 관습에 의해 새로운 진리를 거부한 경우가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실험을 통하여 현대 물리학에서 너무 중요한 이론으로 큰 역할을 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이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 기존의 학문적인 관습, 아인슈타인이 생각하는 물리학에 대한 선입관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우주에서 시작하여 물질의 최소단위인 입자도 당시 물리학의 관습이나 아인슈타인의 선입관으로는 모두 완벽한 질서속에서 완전한 미학적 형식을 구현하고 있다고 여겼다. 즉 완벽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입자의 운동이 불확정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당시 물리학적인 세계의 관습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 결과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입자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부정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몇 년뒤 다른 과학자에 의해 불확정성의 원리가 발표되고 세계 물리학계는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이처럼 한 개인, 그것도 천재적인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도 관습적인 세계관이 얼마나 자신의 창의력을 억압했는가가 명확하다. 이러한 뼈져린 경험이 있는 아인슈타인이 관습헌법을 논거로 이번에 판결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를 하는 것 같이 들리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여보게들 나라를 구하려고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자네들 개인이라도 자유롭게 되려거던 관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게, 제발 부탁이네.”

진영종 (참여연대협동처장,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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