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2-08-10   2810

[2012/07/2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②] ‘사람’이 없다

 

이 글은 2012년 7월 27일 서울동부지방법원(제11형사부) 1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참여연대 인턴(10기) 여러분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함께해요 국민참여재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배심제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배심원이 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지켜본 방청자들의 경험을 통해 여러분도 함께 배심원단이 되는 간접체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방청기를 보내주신 김주호 님께 감사드립니다.

 

 


2012년 07월 27일 국민참여재판 방청후기 II

 

참여연대 인턴 10기 김주호

 어렵다. 그 어느 때보다 펜 끝이 무겁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실체적 진실’이라는 다소 무미건조해 보이는 단어들의 나열로 범죄 사건의 피해자, 특히 성폭력이 수반된 사건 피해자에게 다가간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피해자를 증인으로 법정에 세워두고 강간상해인지 강제추행-상해의 경합인지를 따져야 하는 법적 공방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치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람’이 없다

2012년 4월 25일 밤 11시경, 사건 장소였던 주점 안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 뿐이었다. 피고인과 증인으로 법정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당시의 상황을 엇갈리게 진술했고, 검사와 변호사는 서로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사건의 쟁점은 피고인이 상해 행위 당시 강간의 목적이나 의사가 있었는지. 피해자는 증인으로 법정에 서서 피고인에게서 강간의 의사를 느꼈고, 그 사건의 충격으로 폐업하였으며,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피고인을 강력히 처벌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검사 측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피고인이 얼마나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는지, 그리고 피해자가 얼마나 심한 두려움과 고통을 느꼈는지를 부각시키는데 집중했다. 물론 배심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그 과정에서 다소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상황 묘사나 말투, 피고인을 향한 실소가 반복됐다. 기자재를 다루는 데에도 약간의 미숙함이 엿보였고, 재판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벌어지는 불필요한 시간 지연도 있었다. 엄격한 법적 절차와 시스템으로 꽉 짜여진 재판정 그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아 보였다.

또한 사실 개인적으로는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취지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였지만 평소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배심원으로 참여하기 위해 하루라는 시간을 온전히 바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그 복잡한 법률용어나 관련 법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판결을 내릴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지, 일반의 법 감정을 강조한 나머지 피고인에게 다소 가혹하거나 가벼운 판결이 내려지지는 않을지, 그런 몇몇의 우려 때문에 그 좋은 취지마저도 퇴색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지, 분명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 사람이 있다.

9명의 배심원들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기대 이상의 진지한 태도로 재판에 임했고 어느 쪽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인지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6시간이 넘는 긴 공판 과정에도 불구하고 9인의 배심원 중 어느 하나 흐트러지는 사람이 없었다.

불법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떤 적법한 국가 공권력 작용의 과정에서도 언제나 지켜져야 할 최고의 가치는 ‘사람’이다. 불길에 무너져 가는 망루에서 들려온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은 바로 이러한 말하는 것이었다. 사법 절차에 국민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그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하고, 구두변론 중심의 공판을 통하여 공정한 절차를 확보하며, 형의 선고와 양형의 판단에 있어 일반의 법 감정을 반영한다는 국민참여재판.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이 가지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는 바로 법정에 ‘사람’이 있다는 데 있었다.

피해자의 인권과 피고인의 인권, 그리고 국가 공권력이 격렬히 충돌하는 지점인 형사 재판을 다시 ‘사람’들 속으로 소환하는 과정이 바로 내가 지켜본 국민참여재판이었다. 비록 검사와 변호사가 설명하는 법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그래서 조금은 법적용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판결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교환한 끝에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경험을 공유하는 곳, 그곳은 민주주의의 학습장이었다.

 

 법은 분명히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법에서 멀어지는 순간,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게 된다. 결국 법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며, 법을 법으로 만드는 것 또한 사람이다. 배심원이어도 좋고 방청객이어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참여재판의 장에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빚어내는 형형색색의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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