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3-20   3241

[세 번째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좀 더 편해졌다.


이 글은 지난 3월 17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국내에서 세 번째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고 난 뒤, 재판내용과 방청소감 등을 기록한 방청기입니다.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도입을 주창해온 참여연대는 직접 방청하지 못한 시민들이 방청기를 통해 국민참여재판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리고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원활한 정착을 위해 필요한 개선사항을 제시하기 위해 앞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재판 방청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국민참여재판 일정, 이렇게 확인하세요.




3월 17일. 수원지방법원 제110호 법정.


좁은 법원 주차장의 빈자리를 찾지 못해 10분쯤 주변을 헤매다 법정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2시20분쯤. 법정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한 여자 변호사의 차분한 목소리만 들리고 방청석 100개중 빈자리는 대 여섯 개뿐이었다.


조용히 걸어가 빈자리에 앉으니, 일어서서 이야기하던 그 변호사는 자리에 앉고, 재판장이 ‘그럼 이제부터 두 번째 증인에 대한 신문을 하겠다’, ‘증인 들어오게 하라’고 하는 말이 이어졌다. ‘이런 벌써 재판이 꽤 진행되었군’ 하는 낭패감이 몰려왔다.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올해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재판은 2월 12일 대구지법에서 있었고, 그 다음 재판은 2월 18일 청주지법에서 열렸다. 두 재판을 모두 방청했고, 두 번째 재판 방청기에서 많은 시민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실제 방청해보는 것이야말로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궁금증이나 걱정을 푸는데 아주 좋을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속해있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명의로 지난 2월 말, 법원행정처에 국민참여재판 방식으로 진행키로 확정한 재판의 일정을 대법원 웹사이트 등에 공개해주면 좋겠다는 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그 덕분일까? 3월 17일 점심을 먹은 후 우연히 들어간 대법원 웹사이트에, 이날 낮 11시부터 수원지방법원에서 배심재판이 있다고 적혀 있는 것 아닌가? 고맙기도 하면서 지금이라도 가볼까 하는 마음이 교차했다.

수원지방법원 법정에서 만난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판사에게 들어보니, 마침 이날(17일) 오전부터 일정알림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했다.앞으로도 혹시 법대학생뿐만 아니라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궁금한 시민들이라면, 대법원 웹사이트를 통해 거주지나 학교에서 가까운 법원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언제 열리는지 알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법원의 국민참여재판 일정 안내 사이트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help.scourt.go.kr/minwon/pjudgement/PJudgementList.work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우려를 씻어주는 30%대의 출석율




두 번째 증인신문 전에 있었던 절차는, 배심원 선정절차, 재판의 기본쟁점과 검사와 변호인측의 주장과 변론 계획설명, 그리고 첫 번째 증인신문 정도이다.


두 번째 증인이 들어오기 전에, 배심원석을 살펴보니, 12명의 배심원이 앉아 있었다. 예비배심원 3명을 포함한 숫자이다. 여자는 3명, 남자는 9명. ‘음..남자가 의외로 많네’.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외모로 보았을 때 연령대는 2~30대와 절반, 4~50대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했다. 60대 이상은 없어보였다.


3월 1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모습. 왼편 벽쪽에 앉은 이들이 배심원이고, 마지막 평결을 앞두고 예비배심원 3명은 배심원석에 앉지 않은 모습이다.


12명의 배심원 중에서 예비배심원 3명이 공개되는 것은 검사와 변호인의 치열한 법정공방과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모두 끝난 뒤, 배심원들만의 평의가 시작되기 직전의 순간이다. 밤 8시 25분경, 재판장이 공개한 예비배심원은 3번, 5번, 9번 번호를 부여받았던 배심원이었다. 남자1명, 여자 2명이었다. 그렇다면 평의에 참여하는 배심원은 남자는 8명이지만 여자는 1명뿐이다.

오늘 사건은 돈과 관련해서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자신을 강제추행을 하려는 사람과 다투다 살인을 한 여자가 피고인인 사건인데, 배심원에 너무 남자만 많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전에 법심리학을 전공하는 분들과 이런저런 책에서, 여성이 피고인 사건, 특히 성범죄와 연관된 사건에 남성보다 여성이 피고인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것은 편견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평의결과가 더 궁금해지는 사건이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배심원 선정절차에 참여한 배심원 후보자는 대략 64명쯤 된다고 수원지법 공보판사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애초 배심원 후보자로 출석할 것을 알리는 통지서를 보낸 수원지법 관할지역의 주민은 모두 230여명. 이들은 주민등록표를 근거로 무작위로 뽑힌 것인데, 이중에서 우편물이 배달되지 못해 반송된 사례가 있어, 실제 통지서가 배달된 경우는 180여명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180여 명 중에서 64명쯤이 안내문에 따라 일상생활을 벗어나 오전 일찍부터 법정에 나온 것이다. 앞서 있었던 청주지법 사례에서는 출석통지서를 받은 89명중 28명이 법정에 나와 31%의 출석률을 보였고, 첫 재판사례였던 대구지방법원 사례에서도 30% 대의 출석률이었다. 이번에도 35%였으니, 아직 이른 감이 있는 평가이겠지만, 시민들의 참여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하루만에 끝내기에는 어려운 재판이라면…




2시 20분 이전의 재판절차는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법정에서 만난 한상훈 연세대 법대교수로부터 대략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 재판부의 계획은 배심원 선정절차를 2시간만에 끝내고 오전 11시부터 공판절차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2~30분정도 배심원 선정절차가 길어졌다고 한다. 점심식사 전까지는 사건의 쟁점과 검사와 변호인의 측의 공판진행 계획을 주장하는 시간만을 가지고, 오후 1시30분부터 첫 번째 증인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측의 신문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날 사건은 살인사건인데, 첫 번째 증인은 피고인이 경찰에 자수한 후 범행현장을 찾아가고 사체를 발견한 경찰관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증인은 사체를 부검한 국립과학연구소 직원이었고, 세 번째 증인은 살해당한 사람, 그러니까 피해자의 딸이었다. 이들은 검사측에서 증인으로 신청한 사람들이다.

이날 재판은 앞서 있었던 재판에 비해 증인이 2명 더 많았다. 네 번째 증인은 피고인의 딸이었고, 다섯 번째 증인은 피고인을 종업원으로 데리고 일을 한 적도 있으며, 지금은 피고인이 운영하는 식당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여성이었다. 이들은 변호인측이 요청한 증인들이다.


첫 번째 대구지법 사례와 두 번째 청주지법 사례에서는 각각 3명의 증인에 출석했다.




이 날도 지난 청주지법 사례처럼, 밤늦게 끝나는 재판이 문제가 되었다.


오후 1시30분부터 시작된 5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모두 끝난 시각은 오후 4시30분경. 중간에 단 한 번 10분 휴식을 가졌는데, 3시간동안 증인신문이 계속된 것이다.




재판장은 앞으로 남은 증거기록과 증거물 조사, 피고인에 대한 신문, 평의 절차 등을 생각해보면 저녁 늦게까지 재판이 이어질 것이라며, 배심원들에게 늦더라도 오늘 다 할지, 내일 다시 모일지 물어보았다. 유일하게 한 명의 배심원이 오늘 계속했으면 한다고 답변했다. 다른 11명은 선뜻 답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듯 답하지 못했다. 일단 재판장은 검사와 변호인측이 나머지 재판일정을 효과적으로 진행줄 것을 요청하고 재판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순서였던 증거물 조사만 끝낸 때가 벌써 오후 6시. 재판장은 조금 초조했는지, 판사와 배심원들이 모여 재판을 더 진행할 것인지 의논하기 위해 잠깐 휴정하기로 했다. 방청석도 모두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다시 법정이 열렸고, 재판부는 오늘 재판을 끝내기로 했다고 하였다.




실제 이날 재판은 밤 10시25분경에 판결내용이 선고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오후 6시15분경부터 피고인 신문이 시작되었고, 그 후 1시간 뒤에 검찰과 변호인측의 최후변론이 50분정도 이어졌다. 다시 피고인의 최후 진술과 재판장의 최종설명이 끝난 시각은 밤 8시30분 경. 이 때부터 배심원들만의 평의가 시작되었고, 배심원들의 평의와 양형토의가 모두 끝나고 재판부의 선고절차가 시작된 것은 밤 10시15분이었다.




지난 대구지법에서 열린 강도상해죄에 대한 첫 국민참여재판이 끝난 시각이 저녁 7시30분경. 살인죄에 대한 청주지법의 국민참여재판이 끝난 시각은 밤 8시45분경. 대구지법 때에는 그리 무리한 일정으로 보이지 않았으나, 청주지법 사례 때만해도 장시간이어서 배심원들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때보다도 더 길어졌다.

예전에 비해 평의와 양형토의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청주지법 때에는 1시간 20여분쯤 걸렸고, 대구지법 때에는 1시간 30분쯤 걸렸다. 이번에는 그보다 15~25분쯤 더 걸렸다. 무엇보다도 많은 증인과 쟁점 때문에 검사측과 변호인측의 증인신문과 변론 시간도 더 많이 걸렸다. 증인신문부터 피고인의 최후진술까지 모두 종결된 시각이 대구지법 사례는 5시35분경이고, 청주지법 사례는 7시 경이었다. 이날 수원지법은 청주지법 사례보다 1시간 더 지난 8시 5분경에 변론절차가 모두 종결되었다.




법원에 나와 오전에 배심원으로 확정된 이후 재판시간부터 변론이 끝날 때까지의 시간만 보더라도 이날 12명의 배심원은 9시간을 꼬박 재판에 몰두한 셈이다. 평의를 제외한 시간이다. 배심원들의 집중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해 토론하고 유죄일 경우 적정한 형량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평의와 양형토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더 치열하게 토론하지 못하고 피곤해서 자신의 의견을 중도에 포기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재판부로서는 배심원 중 몇 명이라도 다음 날 출석하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걱정에 재판일정을 연장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일테다. 그러나 하루종일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로서는 다음 날의 수고를 포기하는 것도 아쉬울 수 있는 일인만큼, 배심원들에게 충분한 양해를 구하고 또 필요하다면 협조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배심원들이 제대로 듣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한편 이 날 재판에서 아쉬운 점은 앞선 두 재판에 비해 변호인과 검사 모두 배심원을 설득한다는 자세가 부족해보였다. 배심원이 아니라 기존의 ‘조서재판’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물론 검사와 변호인측이 최후 변론을 펼칠 때, 그리고 증거물에 대해 빔프로젝트 등을 이용해 설명할 때에는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의 형식에 맞는 모습이었다. 배심원들을 바라보면서, 배심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차근차근 설득해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5명의 증인과 피고인에 대한 신문과정에서 보여준 검사와 변호인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배심원들에게는 나누어지지 않고, 판사석에 앉은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에게만 배포된 서류를 따라 읽어가는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사전에 작성된 질문지에 적힌 문어체적 표현을 그대로 읽어가면서, 질문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표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질문과 대답을 함께 듣고 있는 배심원들의 상태는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재판진행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숨넘어갈 듯이 빨리빨리 진행되는 신문(질문)은 배심원석에 앉은 사람들을 긴장시킬지는 모르겠으나 부담스럽게 하였다.

이미 다른 증인이나 자료를 통해 확인된 동일한 사항인데, 그저 반복할 뿐인 것도 많았다. 배심원들의 피로도만 증가시키고 집중력만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장면이었다.




또 여러차례 검사와 변호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나는 방청석에 앉았기 때문에 배심원석에서 들리는 소리와 차이가 있을 순 있겠으나, 크지 않은 법정이었고, 검사와 변호인들과도 그리 떨어지지 않은 자리였다. 그리고 나보다 더 가까운 곳에 앉았던 법원관계자들도 걱정하는 모습이었고, 중간중간 마이크를 좀더 가까이 대고 말해달라는 사람들의 주문이 나왔다.




서류중심으로 진행되던 과거 재판에서나 배심원들보다 훨씬 증인들과 가까이 앉아있는 판사들만 설득하면 되는 재판에서는 문제될게 없다. 그러나 두 줄로 배열된 배심원석의 뒷줄에 앉은 배심원은 물론이거니와 한쪽 끝에 앉은 배심원들이 과연 변호인과 검사의 말을 정확하게 들었을까 걱정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피고인이 대답하는 목소리가 너무 작아 피고인 바로 옆에서 질문하는 사람말고는 아무도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지만, 질문을 한 검사와 변호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자신들은 그 답변을 들었고 가까운 곳에 앉은 재판장이나 배석판사 1명도 그 대답을 들었다고 해서 문제없다는 것인가? 이건 배심원이 참여하는 재판에 적합한 모습이 아니다.

강제추행과 살인위협의 와중에 벌어진 살인사건


이날 다룬 사건은 이렇다.


올 1월 10일 저녁 8시경 피고인 김 모 여인(50대)은 딸과 아들과 함께 집근처 파출소에 자기가 A씨를 살해하고 그 사체를 자기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식당 주방에 두었다고 자수한다.




별다른 직업없이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소일거리를 하고 있던 피해자 A씨와 피고인 김 씨가 만나게 된 것은 2007년 7월 경. 남편과 헤어지고(사별했는지는 모르겠음) 어렵사리 자식들을 키워왔고 간신히 공사장 인부나 뜨내기 손님만이 오가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게 된 김 씨에게 남편과 같은 직장에 다녔던 A씨가 찾아온 것이다.



과거 도박으로 적지않은 돈을 잃어버려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고, 간간히 작은 노름판에 끼기도 하던 A씨는 별 이유도 없이 김 씨가 운영하는 식당에 와서 김 씨에게 성적 희롱을 하면서 괴롭혔다. 2007년 10월 경 A씨 집고 한 대부업체의 대출금 상환독촉장이 날아든다. 이를 본 그의 딸은 아버지가 혹시나 도박때문에 돈을 빌려쓴 거 아닌지 내심 걱정하면서 아버지에게 왜 대출받은 거냐고 따져묻는데, A씨는 김 씨가 돈이 필요하다해서 빌려주기 위해 대출받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연말까지는 받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김 씨와과 전화통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통화에 성공하지 못한 딸은 그냥 아버지의 말을 믿고 지냈다.
그러나 연말까지도 여전히 대출금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A씨. 1월 4일 오전 김 씨가 막 문을 연 식당을 찾아간다. 아직 손님이 없어 김 씨 혼자뿐인 식당문을 잠근 A씨. A씨는 김 씨에게 ‘대부업체에서 돈 빌린 것 때문에 집에서 난처하게 됐다. 당신이 나한테 돈을 빌려갔다고 가족들한테 말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를 김 씨가 강하게 거부하자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던 A씨는 김 씨의 음부를 비롯해 몸을 만지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면서 강제추행을 하면서 돈 문제에 대한 요구를 계속한다. 이 와중에 A씨와 김 씨는 심한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A씨가 김 씨를 때리기 위해 식당 한 켠에서 가져온 ‘코브라 수도꼭지’를 김 씨가 빼앗고 도리어 A씨의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몸싸움과 강제추행이 뒤엉키는 와중에 김 씨는 A씨를 넘어뜨리고 김씨의 얼굴에 자신의 숄을 덮어씌워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A씨가 계속 자신을 죽이겠다고 소리치자 위협감을 느낀 김 씨는 마침 A씨의 옷 호주머니 밖으로 삐져나온 청색 끈을 꺼내어 A씨를 목졸라 숨지게 하였다.


그 후 김 씨는 무서움에 떨며 사체를 식당의 주방에 옮기고 그 위에 종이박스와 음식재료 자루 등을 덮어두었다. 1월 4일 오전 이후 A씨의 행적이 보이지 않자 이를 걱정한 그의 딸이 1월 6일 김 씨의 식당으로 찾아왔으나, 김 씨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사건 이후 식당에 나가기는 했으나 영업을 하지 않던 김 씨의 몸이 무척 아픈 것을 안 아들이 여동생에게 병원에 모셔갈 것을 부탁했고, 1월 10일 그녀의 딸과 함께 정형외과를 다녀온 김 씨는, 병원에서 돌아온 오후 5시 경 그녀의 딸에게 범행사실을 털어놓았다. 저녁 7시경 아들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뒤, 김 씨는 딸과 아들과 함께 집 근처의 파출소에 나가 범행일체를 자백하였다.



정당방위라는 변호인과 아니라는 검사




이에 대해 재판에서는 검사와 변호인측에서 몇 가지 쟁점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우선 검사측은 김 씨가 실제 A씨로부터 돈을 빌렸다고 빚을 갚을 것을 독촉받다가 범행에 이르렀다는 점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즉 범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김 씨의 진술과 다른 채무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살인죄 자체의 유무죄 여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범행동기와 관련한 부분이라 검찰은 애초 피고인 김 씨의 말대로 기소했다가 재판을 앞둔 사흘 전(월요일 재판 전 금요일)에 이를 급히 바꾸었다. 피고인 김씨와 그 가족이 피해자 A씨가 농협에서 인출한 수표 몇 장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검찰은 김씨가 A씨로부터 돈을 빌린 적이 있고, 이 돈을 빨리 갚을 것을 독촉받는 와중에 범행에 이르렀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다음으로 변호인측은 당시 피고인 김 모 여인의 범행은 우발적인 점을 넘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발생한 정당방위이고, 만약 과잉방어라 할지라도 이는 법 또는 판례적으로 처벌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 즉 ‘불처벌 과잉방위’에 해당하니 무죄라고 주장했다. 단순히 형량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유죄, 무죄를 가르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그리고 범행 후에 사체를 주방 안쪽에 두고 간단한 물건들로 덮어 둔 것이 사체은닉죄에 해당하는지도 쟁점이었다. 변호인측은 사체발견을 지극히 어렵게 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행동이니 은닉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의 평의가 진행되는 동안 저녁식사를 함께 몇몇 분들과 어떤 결론이 나올까 이야기해보았다. 검찰은 징역 20년형을 구형했는데, 일반 재판이라면 10년 이상은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과 7년 정도 되지 않겠냐 하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유죄라 해도 7년 이상은 어렵다는 의견이었지만, 정당방위나 불처벌과잉방어에 해당하여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지 않을까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배심원 평의가 길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무죄에 대해 의견이 많이 갈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유무죄에 대한 판단은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배심원들이 평의에 들어간다고 해서 법원 밖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왔는데, 법원 관계자분들이 만장일치로 평의는 끝났고 양형토의에 들어갔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4~50분쯤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였다. 무죄로 평결을 맺었다면 양형토의가 필요없는데. 배심원들이 정당방위도 불처벌 과잉방어도 아니라고 결론을 맺었다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재판장이 선고하면서 말했지만, 당시 피고인이 A씨로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말을 듣고 강제추행을 당하기도 했지만, A씨의 목을 조르는 범행의 직전의 상황이 피고인이 A씨의 폭행, 추행을 제압했고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난 상황이라는 판단에 따르면, 정당방위나 불처벌과잉방위를 적용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이 아니라 추행과 몸싸움이 있었던 전체 상황을 바라보자면 좀 다른 의견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재판장의 설명이 이해되기도 했다.




결과는 이러했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의견을 냈다. 살인죄뿐만 아니라 사체은닉죄도 인정했다. 그리고 양형에 대해서는 3년 징역형부터 8년 징역형까지 배심원들의 의견이 다양했는데, 9명중 5명이 7년 징역형에 처해야한다는 의견이었다.


이같은 배심원들의 평결결과와 양형에 대한 의견을 참고한 재판부의 최종 선고내용은 이러했다. 피고인은 살인과 사체은닉 모두 유죄인데 다만 우발적 범행이고 자진해서 자수했다는 점 등의 유리한 정상참작요소를 감안하여 징역 7년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재판장은 밤 10시 30분에 이르기까지 고생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재판을 맡았던 최재혁 재판장과 서정현, 김현진 판사 모두 고생하였다. 그들도 이렇게 장시간 재판을 집중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12명의 배심원들의 고생이 가장 컸을 것이다. 재판진행내내 검사와 변호사 양측의 주장을 듣고 또 증인들의 답변을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요동쳤을까.




이제 다음 순서는 인천지방법원에서 있는 재판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공범이 있는 사건에서 공범중 몇 명은 일반재판을 끝내고 선고만 남겨둔 상태이고 한 명만 국민참여재판을 받기로 한 사건도 있다고 한다. 이게 인천지법 사건인지는 모르겠으나, 갈수록 어렵고 복잡한 사건들이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국민참여재판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 되길 바란다.




앞서 말한 대법원 사이트 국민참여재판 일정알림 코너를 다시 기억했으면 한다.


벌써 인천지법 재판, 부산지법 재판, 청주지법 재판, 울산지법 재판 일정이 안내되고 있다.
(안내 보기
http://help.scourt.go.kr/minwon/pjudgement/PJudgementList.work
)


그리고,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국민참여재판 방청하는 것을 꼭 권해주었으면 좋겠다. 살아있는 학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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