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0-04-05   2298

[2010/03/29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배심원제는 ‘3차원’ 재판


이 글은 2010년 3월 29일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시민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함께해요 국민참여재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배심제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배심원이 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옆에서 지켜본 방청자들의 겸험을 통해 여러분도 함께 배심원단이 되는 간접체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방청기를 써준 김정민 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정민(한국외대 영미문학전공 4학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프로그램 OT자료에는 “배심제를 확정하느냐 마느냐는 ‘우리 생각’에 달려있다”고 소개한다. 단 한차례, 배심원단 참여도 아닌 방청만으로 뭐라 말하기하는 어렵지만 견학한 소감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느낀점들을 적어본다.


참여연대는 지난 3월 29일 시민들과 함께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했다.
사진은 당일 재판이 열린 동부지법 1호법정 전경


이 제도의 장점과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이번 방청을 통해 배심원제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효과’를 발견한 것 같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실제는 어떨까

나는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원래는 회의적이었다. 영화 ‘12인의 성난사람들(12 Angry Men, 1957)’은 미국의 배심원제를 소재로한 작품인데, 살인혐의를 쓴 한 소년의 유무죄 여부를 두고 배심원들의 평의과정이 나온다. 각계 각층의 다양한 구성의 시민들로 이루어진 배심원단들은 대충 결론짓고 서둘러 재판을 끝내버리고 싶어한다. 단지 그 중 한 사람만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고 할 뿐이다.

배심원들은 오랜시간동안 사건정황들을 따져보는 씨름을 한 끝에, 소년이 무죄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증거나 증언만 가지고서는 유죄인 것 같았던 소년이 혐의를 벗게 되는 순간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뿐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실제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재판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영화에서 처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귀찮게만 생각하는 배심원도 있을 수 있다. 내가 방청한 날도 판사나 검사, 변호인들은 사건에 대한 준비를 먼저 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재판에 참여한 시민들만 아니었더라면 재판이 훨씬 빨리 끝났을 게 분명했다.

친절한 설명, 강의를 듣는 기분

내가 방청한 재판은 살인미수사건으로, 판사님은 판결의 요지가 되는 살인의 확정적 고의나 미필적 고의, 그 차이와 해당 여부 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고, 재판 도중에 진행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줘서 마치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검사와 변호인도 각자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통해 모두진술을 했다. 이 부분에 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검사와 변호인이 선보이는(?) 프레젠테이션의 질이 너무나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시각적 효과는 무시하지 못할 요소인데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판결이 변호인의 PT능력에 따라 갈리게 되면 어떻하나 우려가 드는건 당연했다.

국민참여재판의 ‘어떤’ 효과

하지만 내가 발견한 어떤 ‘효과’는 시간적인 지체나 PT의 질 문제와 비교해 그 경중을 따졌을때 이 정도는 감수해도 좋겠구나 싶은 것이었다. 내가 방청을 하면서 놀랐던 것은 사건 당사자들이 남들이 듣거나 지켜보더라도 상관 없이 당당하게 재판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은 사건 당사자가 원할때 행해진다고 들었다. 내가 방청한 재판도 피고인측에서 아마 시민 배심원의 판결을 받는 쪽이 더 낫다는 전략적인 판단을 하고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한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검사는 피고인이 명백히 살인미수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피해자는 상해에 대한 배상금을 받고 합의까지 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피고가 형사처벌을 받길 원한다고 말해서 그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판사가 배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고, 형사처벌에 있어 무죄판결을 내린다 하더라도 검사측에서 항소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나 여러 명의 시민으로 이루어진 배심원이 내린 판결이라면 그 결과가 어떠하든 당사자 양쪽다 ‘납득’하는게 훨씬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사건 당사자들은 아주 사적인 사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을 제외하고 방청객들도 계속 자리를 지켜도 좋다고 허락해서 각자가 ‘스스로 떳떳하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같이 한번 얘기해보자’하는 인상을 받았다.

재판과정은 사건당시의 상황과 당사자들의 말, 행동, 생각에 대해 다시 한 번 재확인하고 재연하는 자리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당사자 외에 이를 가운데서 지켜보는 여러명의 ‘타인의 눈’이 있다는 것이다.

배심원제만의 3차원 효과

내 생각에 당사자들도 이 눈을 의식하면서 사건을 좀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은 당사자들이 재판 결과에 대해 각자 좀더 받아들이기가 쉬워지는 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배심원제만의 ‘납득의 효과’ 혹은 ‘3차원 효과’라고 부르고 싶다.

이 날의 사건은 피해자에게도 잘못한 부분이 있었고,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수술을 한 차례 받긴 했지만 다행히 생명이 위독한 정도가 아니었으며, 가해자 역시 살인을 할 목적은 전혀 없었던게 분명했기 때문에 미필적고의라는 복잡한 개념까지 생각하지 않는 일반인이라면 살인미수로 유죄판결을 내리기에는 너무 가혹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경우였다.

역시나 배심원단은 살인미수혐의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내렸고 추가적인 배상을 하고 합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이 정도의 판결은 여러가지 비슷한 사건을 맡아본 판사에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국민참여재판제도를 긍정적으로 보게 된 이유는 우선, 사건 당사자가 정당한 재판을 받길 원한다는 데 있고, 두번째는 내 이웃들의 판결인 만큼 당사자가 결과를 받아들이기 쉬울 수도 있다는  ‘납득의 효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심원 경험을 한 시민들이 많이 늘어났을때의 사회 전체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

분명 재판에 참여해서 타인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신중하게 생각해 볼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을 성숙하게 할것이고,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 더 많아지면 성숙한 사회의 평균적 수치가 올라가는 것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이 있기 마련이다. 국민참여재판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은 아마 개선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재판 참여자들을 매우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개선해야할 부분을 보완하는 노력을 병행한다면, 이 제도로 기대되는 효과는 분명 그러한 수고만큼의 값어치를 할 것이다. ‘납득의 효과’라는 것이 정말로 힘을 발휘해서 상고심까지 가지 않고 더 신속하게 사건을 끝내는 경우가 많아질지 혹시 아는가.

방청 한 번 만으로는 ‘많은 것’을 볼 수가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종전에 회의적이던 시각에서 벗어나 배심원제도의 긍정적인 측면을 몸소 느꼈다는 정도의 두루뭉술한 교훈에서 만족해야했다. 이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와 검토에 있어서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나타나는 문제나 효과에 대해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작업에 내 작은 의견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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