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7-03-07   1418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⑧]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 편지는 국민의 사법참여를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이해를 돕고 관련 법안의 도입을 바라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국회 법사위위원들에게 보내는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릴레이 편지 제8호(마지막) 입니다.

이상민 의원님께

얼마 전 법사위 전문위원실에서 대형할인마트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입법안에 관해 인터뷰를 하고 나오는 의원님을 잠시 뵈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단호한 표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안등을 통해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원님의 의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외람스럽게도 이를 빌미로 의원님께서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조속한 도입에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 주실 것을 간청하고자 합니다.

의원님께서는 지난 해 9월 법사위가 마련한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안의 공청회에서 배심재판을 운영하여야 할 주체격인 “판사나 법원이나 변호사나 또는 일반 국민들의 준비가 어느 정도 성숙되어 있는가”라는 취지의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배심재판의 경우 모든 법정절차가 구술로 이루어지는 데 우리 법관들이 일견 장황할 수도 있는 피고인이나 변호인들의 진술을 요점만 파악해서 쟁점을 잡고 판단해 나갈 수 있는 “해독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 법조인 양성시스템이 그런 교육을 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물어 보셨습니다.

아직은 미흡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의원님의 걱정은 타당합니다. 일반국민들의 준비에 대해서는 물론 걱정할 필요가 없음은 앞서의 편지들에서 잘 설명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판사나 검사, 변호사들이 이런 국민참여재판제도에 잘 적응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부정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1월에 발생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밑바닥에는 일반인과 법조인 사이에 가로놓인 의사소통의 장벽이 존재합니다. 상식과 일상적 언어용법에 기하여 자신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원고의 말이 법률용어와 재판논법에 익숙한 법조인들에게 도저히 전해지지 않는다는, 정말 어찌할 방법도 없이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 법조와 사법에 대한 불신을 낳고 급기야는 법관이 상해를 입고 마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 법관이나 검사, 변호사 등의 법조인과 당사자, 그리고 일반국민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배심제와 같은 국민참여재판에서는 필수적인 요건이 됩니다. 배심제가 사법관료들의 법논리를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재판제도가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법적 정의를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내어 놓도록 하는 재판제도라고 한다면 양자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고도 긴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법조의 현실을 살펴 볼 때 아직은 이런 준비가 미흡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상 언어와 전혀 다른 법률용어와 개념을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공고하고도 치밀한 법리를 구성하여 이에 따라 모든 사건을 해결해 내고자 하는 개념법학, 보통법학에 익숙해 있는 우리 법구조가 그 한 단면이 됩니다. 또한 일제 이래 특권적 계급이 되어 국민위에 군림해 왔던 법조인들은 이런 개념법학, 보통법학의 특성들을 관료법학으로 변환하여 자신들만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토대로 이용해 왔음도 그 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점은 최근 공판중심주의에 대해 검찰은 물론 법관들조차도 부정적이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납니다. 공판중심주의는 종래 법관과 검찰이 주도하던 형사재판의 구조에 방청객이라는 또 다른 주체를 산입시킵니다. 모든 공격과 방어를 방청객들이 보는 앞에서 방청객들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만들어 내어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관의 판단 또한 방청객이 방청과정에서 얻는 것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법관과 검찰의 권력은 그대로 방청객들의 감시와 견제 아래 놓이게 될 뿐 아니라, 그 과정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일반인의 법감정과 정의의식에 부합하도록 재가공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익숙한 용어법이 아니라 일반인의 일상적인 용어법에 따라 재판절차가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법조인들은 거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준비가 제대로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실제, 제도를 바꾸거나 개선하고자 할 때에는 그 지향하는 효과가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는가의 여부를 먼저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의 순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배심제의 경우는 조금 달리 보아야 할 것입니다. 준비가 덜 되었다는 점 그 자체가 심각한 개혁대상이 되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 우리 사법체계는 항상 국민위에 군림하는 권력이었습니다. 그것은 국민의 뜻을 받아 법을 운용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권력이나 스스로의 권력을 위하여 국민들에게 명령하고 강제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에게 명령할 줄만 알았지 국민과 대화할 줄은 몰랐습니다.

작금의 사법개혁 논의들은 바로 이런 왜곡된 현실을 깨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법이 아니라 국민에 봉사하는 사법, 국민에 대한 사법이 아니라 국민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사법, 그들의 사법이 아니라 국민의 사법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최근의 사법개혁의제들인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사법의 민주화 과제들이 집약되는 지점이 바로 이 배심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민참여재판제도입니다.

이상민 의원님!

저는 의원님께서 지적한 바로 그 사항들이야말로 사법개혁을 위한 전제조건 내지는 준비가 아닌 사법개혁의 목표이자 방향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나 법원이나 변호사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대하여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국민의 판단을 구하여 그로부터 법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사법의 민주화가 지향하는 궁극의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법구조가 이루어지기 위해 판사나 법원이나 변호인들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변론방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 국민과 부단하게 의사소통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재판하게 되는 법정 운영체계를 구성해 나가는 것, 그것은 이런 사법의 민주화를 향한 중간목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법률안 자체가 이를 향한 준비단계입니다

이 점에서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국민참여재판제도는 그 자체로 이런 중간목표를 달성하는 방편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민 의원님께서 걱정하신 바로 그 요건들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배심제가 본격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기 나름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안전밸브와 완충장치를 설치하고 여차하면 원위치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소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법률안의 밑바닥에는 국민에 의한 국민의 재판을 만들기 위한 참으로 좋은 훈련기회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환언하자면, 아직은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법원과 법관과 검사, 변호사들이 국민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변론전략을 구성하고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법판단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기 위한 기회와 그 훈련의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상민 의원님께서 원하시는 국민의 사법제도는 이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사법개혁은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작업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국민참여재판제도가 배심제를 향한 길을 열어 두고 있다면, 로스쿨법안은 국민들과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할 줄 아는 법조인 양성에 적합한 법조양성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처럼 생각”하고 “변호사처럼 행동”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고객인 국민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훈련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관이 무엇을 말하였는가”가 아니라 “법관이 무엇을 말하여야 했는가”를 학습하고 더 나아가 “법관으로 하여금 무엇을 말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는가”를 익히는 것은 법조인의 덕목이 이미 고객인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함을 암시합니다.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하는 형사소송법개정안은 민주적 사법을 만들기 위한 절차적 요건을 충족하고자 합니다. 로스쿨에서 국민과 대화할 줄 아는 법조인들로 하여금 법정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국민을 향해 공격과 방어의 일전을 펼치게 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스스로 법적 정의를 판단해 낼 수 있게 하는 일련의 과정과 절차를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면심리에 의한 밀실수사, 밀실재판의 관행을 떨쳐버리고 국민의 감시와 견제뿐 아니라 국민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형사사법절차를 구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현재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사법개혁법률안들은 상당히 많은 것들이 이런 준비에 상당하는 제반의 요건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반의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할 때, 확신컨대 이상민 의원님이 걱정하시던 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아니, 해결의 수준을 넘어 본격적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사법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배심제를 맞을 준비를 끝냈습니다

가끔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실 여건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더러 이상형을 지향하다 그나마 가능한 현실적 목표조차 상실하기도 한다는 지적도 받습니다. 하지만,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게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어낸 우리 국민의 우수성을 감안할 때 배심제를 도입하는 정도를 놓고 이상론이니 시기상조니 할 상황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제도를 충분히 소화하고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단지 문제는 이런 배심제에 의해 권력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는 법조집단의 저항입니다. 그들은 다른 문명국가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배심제를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혹은 제반 여건이 배심제를 실시하기에 미흡하다는 검증되지 않은 -혹은 그 주장이 잘못되었음이 이미 검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장을 내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배심제 실시를 방해하는 최대의 요인이 바로 이런 법조집단의 기득권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심제의 도입이 단순히 사법제도의 개선에 머물지 않고 개혁의 차원에서 거론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그것은 사법권력의 소재를 기득권에 젖은 법조집단으로부터 법률의 소비자이자 주권자인 국민에게 이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준비 자체가 개혁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냥 배심제 혹은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법률안의 통과에 도움이 되어 주십사라고 간청하는 것으로 족해야 할 글이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사뭇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민주화와 산업화의 과정을 동시에 거치면서 사법은 국민의 생활뿐 아니라 국가와 경제의 운영에 있어서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배심제는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혁점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거듭 밝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사법개혁과제들이 사법의 독립과 중립성, 공정성의 확보를 지향하였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를 넘어 사법의 민주화 혹은 민주적 법치를 지향하여야 하는 시점에 와 있으며 이 새로운 지향을 향한 가장 굳건한 발판이 바로 배심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의 법안은 이렇게 긴 사법민주화의 역정에 미루어보자면 아주 작은, 그것도 하나의 실험에 불과한 틀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관료적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 사법체계에 던지는 충격은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국민들의 법감정을 향하여 국민의 언어로 재판이 진행되는, 적지만 단호한 결절점을 마련해 내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이상민 의원님의 도움을 삼가 간청하고자 합니다. 준비를 하는 것 그 자체가 개혁의 목표일 수도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준비를 걱정하는 의원님의 도움이야말로 우리 사법의 혁신을 이루어내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럼, 다가오는 새 봄이 이상민 의원님의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한상희(사법감시센터 소장, 건국대 교수)



JWe200703070a-.hwp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