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5-09-02   1825

[‘경범죄’ 이젠 고치자] ⑤ 법개정이냐 폐지냐

참여연대-경향신문 공동기획

경범죄처벌법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경미한 범죄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경미한 범죄인지 기준이 모호하다.

또 그런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능사인가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이 만들어지고 반세기가 지나다보니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조문도 많다.

이 때문에 경범죄처벌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점에는 정부나 시민단체나 이견이 없다. 다만 개정이냐 폐지냐 하는 각론에서 의견이 갈릴 뿐이다.

◇경찰 ‘개정에는 찬성’=경찰은 경범죄처벌법이 폐지되면 사회가 ‘쓰레기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고, 고성방가를 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 치안망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빈집 등에의 잠복(제1조 1호), 흉기의 은닉휴대(2호), 폭행 등 예비(4호) 같은 조항은 범죄를 예방하는데 꼭 필요한 조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도 시대에 뒤떨어진 일부 조항의 폐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제1조 30호 굴뚝 등 관리소홀, 38호 전당품 장부 허위기재, 39호 미신요법, 46호 비밀 춤 교습 및 장소제공, 52호 뱀 등 진열행위 등은 최근 10년간 거의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삭제해도 무방하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법 개정시 오히려 강화해야 할 조항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 위반자에게 부과하는 범칙금 제도가 처벌조항이 취약해 범칙금을 내지 않아도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납부하는 사람만 ‘바보’로 만드는 꼴이다.

경찰청 생활질서과 관계자는 “납부기간 내 범칙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법원에 즉결심판을 청구해도 당사자가 출석을 거부하면 달리 제재수단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시민단체 ‘폐지해야’=반면 시민단체는 경범죄처벌법이 폐지되더라도 기존 법으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참여연대 분석에 따르면 경범죄처벌법 54개 조항의 절반가량이 형법 등 다른 법과 겹친다.

불안감 조성(24호), 음주소란(25호), 인근소란(26호) 등의 조항도 삭제 대상 첫 순위에 꼽힌다.

이들 조항은 처벌 범위가 모호해 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에 어긋나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층간 소음을 경찰이 ‘인근소란’ 혐의를 적용, 처벌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다. 층간 소음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거 형태가 일반화된 대도시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분쟁이다. 경찰 방침대로라면 아파트 거주자들은 언제라도 형사처벌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참여연대 이지은 간사는 “경범죄처벌법 어디를 봐도 층간 소음을 처벌한다는 조항이 없다”며 “층간 소음은 환경·건설관련 법을 통해 기준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광고물 무단첩부(13호) 등은 행정처분으로 전환이 가능하고, 새치기(48호) 등은 비난의 대상이지 법으로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경원대 법학과 한영수 교수는 “경범죄처벌법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국민들을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며 “개정 수준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오창민·최명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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