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6-04-17   1499

[한겨레21-참여연대 좌담] 흥미롭고 어색한 민주주의 1교시

‘국민참여 형사모의재판’ 참가한 시민 배심원과 법률가들의 좌담

2007년 3월부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배심 재판이 시작된다. 배심 재판은 그동안 우리 법조계의 문제로 지적된 재판의 민주적 정당성 결여, 국민의 약한 법의식, 만연한 법조 비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해결책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법률 비전문가들이 내리는 결정에 대한 불신, 정부와 국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여러 비용 등을 이유로 들어 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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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과 참여연대는 4월12일 열린 모의재판에 변호인으로 참여한 진선미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배심원으로 참여한 곽영빈(26), 문의빈(26)씨,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이하 사개추위)에서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담당한 한상훈 연세대 법대 교수, 심리학적으로 배심제를 연구해온 박광배 충북대 심리학 교수 등에게서 모의재판에 대한 소감과 배심 재판의 의의,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눠봤다. 편집자

사회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

정리 길윤형 한겨레21 기자

박근용(이하 박근)=일단 4월12일 열린 모의재판에 대한 평가로 논의를 시작해보자.

문의빈(이하 문)=솔직히 말해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제도가 진행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집에 “배심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우편물이 와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참여했다. 모의재판이었지만, 내가 한 사람의 유무죄를 가리는 판단을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실제 재판이었다면 정말 굉장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곽영빈(이하 곽)=비슷하다. 변호사의 변론과 검찰의 공소 사실을 재미있게 들었지만, 막상 평의(죄의 유무를 가리기 위한 배심원들의 논의)가 진행되자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면 좋을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나이든 어르신들은 젊은 학생들보다 그에 대한 부담이 덜한 것처럼 보였다.

진선미(이하 진)=변호인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재판은 법률 전문가를 상대로 한 재판이었다. 법률가들까리는 통상적으로 나열된 사실관계를 굉장히 어려운 전문용어로 바꿔 변론을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다시 일반 용어로 풀어 설명을 해야 하니까 배심원들이 내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몰라 어려웠다.

배심원단 “실제 재판이었다면 큰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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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배심원 선정 과정이었다.

박광배(이하 박광)=배심 재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배심원 선정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컨설팅 산업이 매우 발전돼 있다. 사회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남의 얘기는 절대 안 듣는 사람이 들어갈 수도 있고, 이상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들어가면 평의의 양상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릴 수 있다. 검사와 변호사가 자기에게 유리한 배심원을 구성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사람들이 가려지게 돼 있다.

=지금까지 치러진 모의재판의 경험과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오히려 남성들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들이 여성 문제들에 인색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당신들은 훨씬 더 힘든 고통을 참아왔는데, 요새 사람들은 왜 그러지 못하냐는 정서가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여성들을 기피 대상 1호로 생각하고 배심원을 선정했다.

박근=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너무 무식한 상태로 재판에 들어간 게 아닌가 싶어 좀 후회되는 측면도 있다. 나의 심적인 동요 하나로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판사가 설명하는 ‘무죄 추정’ ‘미필적 고의’ 등 이런 개념들을 완벽히 이해했다고 자신하기 힘든데, 그런 점이 불안했다.

한상훈(이하 한)=그건 이렇게 이해했으면 한다. 미필적 고의나 정당방위라는 것에 대해 너무 자세히 얘기를 하려면 법적인 용어가 더 많이 들어가고 이해가 더 어려울 수 있다. 제도의 취지는 법률적인 개념에 압박을 받기보다는 시민들의 건전한 상식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정당방위의 경우 방어행위가 상당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상당’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걸 판단하는 것이 시민의 건전한 상식이다.

박광=나도 그전에는 판사, 변호사, 검사는 법률적인 개념에 모두 정통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당방위에 대해 판사 10명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아마 제각각일 것이다. 배심 재판 도입의 기본 취지는 어떤 의견이 맞고 어떤 의견이 틀리다는 게 아니라. 맞는 의견이라는 건 있지도 않고 있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고, 그 판단을 존중하자는 게 국민참여재판의 취지다.

=그런 면에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기초적인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제도가 안착되기까지 법학·사회·법률 실무 교육들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이 주체가 돼 재판을 한다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많이 어색해할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적응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이게 국민의 사법 주권을 행사하는 길이고, 넓게 봐 민주주의의 확산이다.

법조인들은 솔직히 배심제 환영 안해

박광=미국에서도 배심 재판에 대한 여러 비판이 있다. 그러나 비판은 배심제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배심제의 어떤 부분이 잘못됐고,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으로 연결된다. 사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전체 재판에서 배심제가 도입되는 비율은 극히 작은 부분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국민들이 직접 재판에 참여해서,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냐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인들은 배심제야말로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제도로 생각한다.

박근=시민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라는 말도 많다.

=제도가 유지되려면 당연히 여러 부담을 무릅쓰고 사람들이 참여해줘야 한다. 20살 이상 국민 가운데 배심원 후보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의 확률은 1년에 3천 명 가운데 1명꼴이다. 배심원은 출석 의무와 선서 의무, 비밀준수 의무를 갖는다. 초등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돌아가며 반장을 한다. 반장을 하는 것은 권리이기도 하고 의무이기도 하다. 반장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돌아가는 관점이 다르다. 반장을 하면 리더적인 관점에서 보게 된다. 반원으로 있을 때는 보지 못한 문제점도 알고 감수를 한다. 사법 재판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재판이나 법이 갈등 해결의 도구다. 항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원고와 피고가 있다. 또 항상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진다. 배심원이 돼 다른 사람 간의 분쟁에 대해 심판자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다른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재판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되고 그에 따라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도 낮아질 것이다.

=사회에 대해 일종의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개인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공적인 영역에 간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돼 국민의식도 성숙될 것이다.

박근=제도 시행 과정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우려도 든다.

=솔직히 변호사들은 배심제를 환영하지 않는다. 배심 재판이 잘 이뤄지려면 여러 여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예를 들어 배심원들은 굉장히 자세히 변론해주기를 바라지만, 재판관은 간결 명료한 진행을 원할 수 있다. 누구의 눈높이에 맞출 것인지 고민이 된다. 검사와의 싸움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피고인을 언제고 불러다 조사할 수 있는 검찰과 달리 변호인의 접근은 제한돼 있다. 검사에 견줘 변호인이 피고인과 접촉해 인간적인 유대를 쌓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 배심 재판은 굉장히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보통 수십 개의 사건을 병행하는 변호사들이 따라가기에 버거운 구조가 있다.

=그 때문에 배심제가 없는 상태를 전제로 규정되었던 형사소송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공판중심주의로 재판을 끌고 가자는 것도 그런 의미다. 시범 시행 과정에서 그런 부분이 다듬어져야 한다.

비용 부담, 국가재정에 타격 안준다

박광=이번 모의재판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서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언론의 반응은 대개 호평이었다. 잘됐다는 이유는 배심원의 판단과 판사의 판단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판사 판단이 정답이고, 배심원이 정답을 맞히냐 못 맞히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잘못된 편견이다. 오히려 굳이 따지자면 주권자인 배심원의 판단이 정답이고, 판사의 판단이 배심원의 판단에 맞춰야 하는 거다. 국민참여 재판에서 배심원의 판단이 평가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국민이 주권자인데. 그걸 판단하는 것은 법조인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겠다는 것이다. 배심원과 판사의 의견이 늘 같거나, 배심원이 판사가 제시한 정답을 맞혀가는 식이라면 국민참여재판은 도입할 필요가 없다.

=좋은 지적이다. 제도 도입을 위해 미국 판사들을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오판의 문제가 없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판사들은 “배심원들의 판단이 대부분 자신들의 판단과 일치했다”고 말했다. 물론 몇백 건 가운데 몇 건씩 다른 의견이 있기도 하다. 그런 경우 미국 판사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는 누가 옳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관 위주의 사고가 뿌리내려 있다. 우리나라 법률가들은 자신이 전문가인데, 누가 이걸 판단하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은 옳지 않다. 법적인 지식은 법조인들이 더 잘 알 수 있지만, 국민참여재판은 기본적으로 법에 대해 묻고 있는 게 아니다. 사실 판단에 대해서는 법조인들이 일반인들보다 전문가일 수 없다. 국민들의 건전한 상식에 따른 판단과 법조인들의 판단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게 이 제도 도입의 근본 취지다.

박근=비용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재판 참여를 위해 솔직히 수업 2개를 빠졌다. 다행히 교수님들이 흔쾌히 결석 처리를 안 해줘 피해는 입지 않았다. 실제 재판에서 배심원이 되면 여러 부담이 있을 것이고, 국가 재정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재판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증인을 많이 부르는 경우다. 배심 재판의 경우 집중 심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판은 길어야 2~3일 안에 끝날 것이다. 그에 드는 예산도 우리나라 경제 사정에 견줘 무거운 편이 아니다. 배심원들에게 지급되는 경비 등을 추산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제 규모에 견줘 큰 부담은 아니라고 본다.

“국회 심리 중인 법안, 빨리 통과돼야”

박광=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해서 얻을 수 있는 사회 통합이나 이전보다 성숙해진 국민들의 법의식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 부담은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법안이 지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리 중인데, 빨리 통과돼야 일정의 차질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2007년 3월부터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데 1년도 안 남았다. 국회에서 서둘러 법안을 통과시켜 제도 안착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

모의배심재판 방청기

[1]”가르치려 들지마라” / 한상희(건국대 법대교수)

[2] “배심재판, 잘 정착될 거 같아요” /김병필(대학생)

[3] “사법개혁의 장도, 배심제의 입법화에 달려있어” / 한상훈(연세대 법학교수, 사개추위 기획추진단)

[4]배심원을 향한 검사와 변호사의 치열한 설득전 / 이귀보(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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