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9-04-09   3163

[09/03/31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5명 유죄, 4명 무죄 주장, 유죄로 결론짓는게 정당할까?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국민참여재판을 시민들과 함께 방청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국민참여재판 같은 시민사법참여를 주창해온 참여연대는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간접체험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실제 국민참여재판 운영과정에서 개선할 점이나 아쉬운 점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도 파악하고자하는 취지에서 시민방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방청일정이 정해지면 참여연대 웹사이트 등을 통해 알려드리고 있으며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아래 글은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이 지난 3월 3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10여명의 시민과 함께 방청한 뒤 쓴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는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실시된 2008년 여름즈음부터 시민들과 함께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고 소감을 나누며 아쉬운 점, 잘한 점 등의 의견을 모으는 시민방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다. 좀 세련된 제목으로 바꾸어보아야겠다고 생각되는데, 벌써 9번째 행사를 치를 정도에 이르렀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지난 3월 3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을 10여명의 대학생과 로스쿨 준비생 등과 함께 방청하였다. 제9차 시민방청행사였다.


이 날은 재판 방청에 앞서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제공해준 빈 법정에서 방청참여자들을 상대로 한 국민참여재판 방청 오리엔테이션 시간도 가졌다. 참여재판 제도의 특징과 함께 방청하면서 주목해주었으면 하는 점 등을 설명한 것이다.


* 3월 31일 서울서부지법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제9차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참가자들


재판 방청 중간의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 재판이 끝난 뒤와 저녁식사 시간 등을 이용해서 방청소감이나 궁금증을 서로 말하고 답하는 시간도 가졌고, 앞서 본 여러 재판에서 볼 수 있었던 에피소드 등도 소개해주었다.


거의 8시간 정도 방청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에게 최대한의 만족감과 정보를 제공하기위해 노력하였다. 다행히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참가자들이 만족감을 표시해주어서 고마웠다. 


참여자들이 재판 방청후 남긴 소감들은 전반적으로 유사했는데 대표적인 한 가지를 소개하면 “극민참여재판 방청하기 캠페인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참여해보니 유익한 정보도 알게 되었다. 배심원들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게 인상적이었고, 평소에도 국민참여재판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더 깊이 일게 됐다.”(경희대 법대 3학년)고 말했다.


이 날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재판장의 안내에 따라 추가질문을 몇 차례 한 것이나 전체적으로 증인신문 과정에서 검사, 변호인, 증인 등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아무래도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것 같다.  


* 재판방청 후, 법정앞 복도에서 방청중의 궁금한 점이나 소감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9차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참가자들 




5대4로 유죄평결을 내린 배심원들


그 날 방청한 재판은 강간치상죄로 기소된 20대 젊은 이에 대한 형사재판이었다. 그리고 9명의 배심원이 내린 결정은 다수결에 의한 유죄였다. 다섯 명은 유죄, 4명은 무죄라고 한 것이다. 배심원의 평결결과와 마찬가지로 재판부도 유죄를 선고했다. 


지금껏 10여차례 이상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했었는데(시만방청사업으로는 9번째였고, 그 전에 참여연대 단독으로 방청한 것도 서너차례였다), 5대4로 아슬아슬하게 배심원의 유죄평결이 내려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직접 방청하지 않았던 재판중에서도 그런 사례는 전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껏 실시된 70여회의 재판중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배심원들을 이렇게 양분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배심원 평의에 들어가보지 않은 이상 혼자 추측할 해볼 뿐이다.  


그 이유와 배경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배심원 평의에 들어간 시간을 추적해보면 아쉬움이 많다.


그 날 재판에서 변론절차를 모두 마친 시간은 5시30분경이었다. 그 후 배심원들이 배심원들만의 유무죄 결정을 위해 평의실로 자리를 옮기고 잠깐 호흡을 가다듬은 뒤, 배심원 대표자를 뽑는 시간을 감안하면, 5시40분에서야 배심원 평의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배심원 평의와 양형토의 시간이 모두 끝나고 재판부와 배심원이 모두 법정으로 돌아온 시각은 대략 7시 35분경. 양형토의에 2~30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본다면, 배심원이 유무죄에 대해 토론한 시간은 1시간 20~30분인 셈이다. 


이견을 제시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의외로 손쉽게 만장일치에 이른다면 1시간 정도만에 배심원 평의가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견이 팽팽히 갈렸는데도, 1시간 30분정도만 토론한 뒤 배심원 평의를 끝냈다는 것은 뭔가 문제있는 것 아닐까?


 


다수결 결정을 폐지하거나 2/3이상의 찬성으로 결정해야해


배심원들이 왜 그리했는지는 외부 관찰자에 불과한 내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더 많이 토론했다면 다수결로 결정나더라도 유죄 또는 무죄 한쪽의 의견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5대4로 유무죄가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라 만장일치는 아니더라도 8대1 또는 7대2로 유무죄가 판가름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또는 그렇게 되도록 좀 더 토론을 진행해야하지 않았을까?


*3월 31일 서울서부지법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평의실 모습(앞의 번호표대로 각 배심원들이 앉는다)


어찌보면 반 나절 이상 온 신경을 집중해서 재판과정(특히 증인신문 과정)에 참여했던 배심원들이 심신이 조금은 지쳐있는 상황인만큼 평의를 빨리 마무리짓고 싶어서 좀더 토론해보려는 생각을 쉽게 접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좀더 토론해보자고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면, 만장일치가 안 되면 다수결 결정도 허용해두고 있는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규정에 대다수의 배심원들이 유혹당할 수 있다.
 


배심원들의 평의진행과 평의 종결은 전적으로 배심원들의 권한과 역할이다. 법률에서 다수결 결정을 허용한 이상 적당한 선에서 토론을 그치고 다수결 평결을 내리는 것도 배심원들의 권한이다. 하지만 피고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인만큼, 만장일치의 결론이 이를 때까지 심사숙고하고, 더 많이 토론하는게 중요하다. 그게 원칙이어야 한다.


우리 법제도에서는 다수결로도 유무죄를 평결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는데, 그렇다하더라도 최소한 이번 재판처럼 가까스로 유무죄가 결정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심스럽게 결정해야 할 일이겠지만, 만장일치만 허용하거나도 아니면 다수결을 허용하더라도 2/3 이상의 의견일치가 이루어질 때에야 다수결로 평결을 내릴 수 있도록 법규정을 강화해야 할 것 같다. 


 


변호사에게 실망한 또 한 번의 재판


이 날 재판에서 신경쓰인 또 다른 점은 변호사의 태도였다. 재판과정에서 법정에서 피고인을 변호한다는 변호인 2명이 일반 법률사무소(로펌)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고인의 집안 사정이 국선변호사를 찾아야만 할 만큼 어려운 사정이 아니라 일반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지불하고 선임한 모양이다. 보통 말하는 방식대로라면 ‘사선’ 변호사인 것이다. 


* 3월31일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서울서부지방법원의 303호 대법정 모습


이 재판을 함께 방청한 대학생 또는 로스쿨 진학 준비생들의 일치된 의견이, 변호사가 너무 일방적으로 말을 했다는 것이다. 배심원의 입장에서 별로 호감가는 변호사가 아니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재판방청중에 나도 계속 그런 느낌을 받았다.


증인신문과정에서 변호사는 재판장과 검사에게 몇 차례나 질문을 제지당했다. 물론 제지당한게 많았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아니고, 특히 검사로부터 이의를 제기받았다고 해서 변호사가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방청석에서 보기에도 그 날 변호인의 질문은 매우 부적절하거나 중언부언하는 질문이 반복되었다. 내가 판사라 하더라도 내가 검사라 하더라도 그런 질문은 이제 그만하시죠라고 말하고 싶었다.


왜 그런 일이 반복되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사전에 준비한 질문을 법정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지 않고 준비해온 것이니까 다 물어봐야겠다고 하는 태도때문이었다. 판사도, 방청객도 모두 답답해하거나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이런 일은 배심원들에게 변호사가 뭔가 잘 한다는 인상보다는 부정적인 인상만을 남겨주었을 것이다. 그 때문일까? 배심원 중에 한 두 사람은 변호사가 별로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묻는게 반복되자, 증인신문을 하는 변호사나 답변을 하는 증인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숙여 배심원석에 놓인 필기구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한마디로 그 날 변호사는 배심원의 마음을 움직이고 설득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이끌어내는데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이 준비한 것을 법정에서 다 처리하고 가는데 마음이 집중된 것 같았다. 대실망이었다. 


솔직히 국민참여재판이 아닌 일반 재판, 그러니까 직업법관만을 설득하면 되는 재판 또는 공판정에서의 진술보다는 서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행 재판방식에 맞는 변호인의 법정변론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사선변호인들은 국민참여재판은 처음 경험하는 것 아닌가 싶다. 피고인이 신청하는 사건일 경우에야 배심원재판이 열리는데, 그 사선 변호인들이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권유했을 수도 있다. 반면에 그들은 특별히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피고인이 강력히 요청했기 때문에 변호인도 수락했을 수 있다. 


재판결과만 보면 9명의 배심원중 4명의 배심원이 무죄의견을 고수했다는 점에서 변호인의 공이 컸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방청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변호인의 공은 느낄 수 없었다.


변호인의 말중에 검사의 주장을 의심스럽게 할 것은 특별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를 떠나서, 재판과정만으로 보았을 때, 배심원재판에 부합한 변론을 위해 변호인이 신경써야 할 부분은 아주 많다는 점을 느낀 재판이었다. 국민참여재판은 뛰어난 논리를 문서로 잘 정리해서 법관을 설득하는 과거 재판을 벗어나, 이제는 뛰어난 논리를 법정에서의 증언과 말로 잘 표현해서 법관과 배심원을 설득하는 재판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건 단순히 말을 잘하는 그러니까 말기술이 뛰어나도록 노력하자는 것만은 아니다. 중언부언하지 말고 핵심을 이어갈 수 있는 적절한 논리구사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날 재판에서는 그런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함께 방청한 사람의 날카로운 지적, ‘배심원이 위험해요!’


점심시간이 되어 법원 구내식당으로 들어가는데, 배심원들이 구내식당 문앞에서 다른 배심원들과 법원관계자들을 기다리며 서성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함께 재판을 방청하러온 이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 분들이 바로 오늘의 배심원이예요라고 설명하는데 급급했는데, 한 참가자는 이런 지적을 나중에 했다. 배심원들을 너무 방치한 것 같다는 것이다.


재판진행중에 배심원들을 일반 방청객들과 접촉할 수 있게 한 것은 여러모로 문제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그 참가자는 재판이 쉬는 잠깐 사이에는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배심원과 마주쳤다고 했다.


만약 이 날 재판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법원에 왔다가 배심원에게 다가가 잘 해달라고 부탁한다든지 또는 은근슬쩍 위협을 한다든지 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걱정도 덧붙였다. 


방청참가자의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미처 주의깊게 보지 못한 점을 아주 잘 지적해주었다고 생각된다. 과거 다른 재판방청때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법원 직원들이 배심원들 앞뒤에서 인솔하여 구내식당으로 데려가기도 하였지만, 좀 엉성한 경우가 있었던 것 같고, 이 날 재판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운영하면서 법원에서는 일반인들이 배심원들을 재판중간에 접촉할 가능성이 전혀 없도록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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