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9-04-21   3644

[09/04/07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일곱개의 쇼크로 다가온 법정


 


이 글은 2009년 4월 7일 서울남부지방법원 406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시민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배심제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배심원이 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옆에서 지켜본 방청자들의 경험을 통해 여러분도 함께 배심원단이 되는 간접체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방청기를 써준 김푸른샘 님께 감사드립니다.



 


김푸른샘(공감 9기 인턴)



4월 7일, ‘참여연대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방청하기’에 참여한 사람들

쇼크 하나. “다리 꼬지 말아주세요.”


재판 절차와 법정에 대한 호기심,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던 나의 심장을 툭하고 멈추게 한 그 한마디는 “다리 꼬지 말아주세요.”였다. 맨 앞자리의 여성 방청객에게 검은 정장을 입은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법정이 정숙을 요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곳이라지만 그렇지만 다리를 꼬면 정말 안 되는 걸까? 편한 자세로 앉으면 안 되는 걸까? 또 다리를 꼬는 것은 정숙하지 않은 걸까?


순간 미국과 우리나라 참여재판 법정 구조의 차이점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우리나라는 판사석만 약 0.5m가 높은데 미국은 판사석과 배심원석이 동등한 높이에 있고, 우리나라도 배심원석의 높이를 높여야 하지 않느냐는 설명이 기억나면서, 판사석의 높이를 낮추어 배심원석, 검사석, 변호사석, 피고인석, 증인석 모두와 같은 높이에 있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자리에 앉던 한 남성 방청객에게 검은 정장의 그 분이 말했다. “모자는 벗어주세요.”라고.


다시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는 언젠가에는 모자를 쓰고, 다리를 꼬며, 판사와 내가, 판사와 배심원이, 눈높이가 같아서 눈을 바라보며 말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일, 판사석 0.5m 깎아내는 일은 누가 해야 하나? 언제쯤 이루어질까?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까?


재판장석에서 바라본 법정의 모습


쇼크 둘. 배심원은 모두 비장애인?


강간상해사건이고, 피해자가 여성인 만큼 성별에 의해 판결이 조금은 기울지 않을까? 란 솔직히 우려의 눈빛으로 배심원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모두 비장애인임을 깨달았다. 뒤에 앉아 계신 참여연대의 이진영 씨께 여쭤 보자, “아직까지 장애인 배심원은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만 20세 이상 시민 중 무작위 추첨을 해서 배심원을 뽑았다는데, 장애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거의 10%에 가까운데, 우연히도 장애인이 뽑히지 않은 건지, 아니면 뽑혔지만 출석을 안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장애인이 배심원을 할 경우, 편의시설은 잘 되어 있을까? 지체장애인의 경우 비교적 접근이 편리하지만,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의 경우에는 어떤지? “시각장애인은 사진 등의 증거를 잘 볼 수 없어서, 청각장애인은 어조 등을 판별할 수 없어서 배심원으로 참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들으며 뭔지 모를 복잡한 생각으로 잠겨 들어갔다.


그런데 왜 배심원 자격은 만 20세 이상인 걸까? 올해 1월 1일부터 술과 담배를 할 수 있고, 운전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으며, 올 10월 이후 선거권을 가질 나는, 올 10월에 만 19세가 될 나는 향후 일 년 동안은 영원한 방청객일 수밖에 없는 걸까? 운전면허증과 선거권보다 배심원의 무게는 훨씬 더 무거운 걸까? 상대적으로 선거권과 생명이 연결되는 운전면허증은 배심원보다 훨씬 가벼운 걸까?


쇼크 3. 빛과 어둠 그 사이, 검사와 변호사의 진술 사이, 바로 그 사이


검사 진술 : 시비가 붙어 싸운 후, 피해자는 리어카에 커다란 천으로 덮여진 뒤 어디론가 태워져갔다. 가는 도중 112에 전화해 신고했지만 핸드폰을 뺏겼으며, 도착 후 강간을 당하고 노끈으로 묶여 감금되었다. 피고인이 나가며 출구를 잠가서, 철구조 반대편으로 기어가 열려 있는 출구를 발견, 겨우 도망쳤다.


변호사 진술 : 시비가 붙어 싸웠지만, 피고인은 때리고 난 후, 죄책감이 들어 치료를 해주려고 리어카에 태워 콘크리트 철구조에 데려갔다. 서로 신앙이 있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도 했으며, 우발적으로 성교를 했고, 감금을 한 것이 아니라 약과 음식을 나가서 사고 돌아올 때까지만 있어달라고 잠시 묶었을 뿐이다. 피해자가 잘못 마음을 먹고 나가서 신고를 할까봐 묶었다. 돌아와 보니 사라지고 없더라.


밝은 빛은 눈을 멀게 하고, 짙은 어둠은 주위를 덮는다. 빛과 어둠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진실을 볼 수 없다. 빛과 어둠의 사이, 검사와 변호사의 진술 사이 그 어느 곳에 진실은 있는 걸까? 배심원의 눈은 빛과 어둠, 그 사이에서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꿰뚫어볼 수 있을까?


쇼크4. ㅏ 다르고 ㅓ 다른 우리말


변호사는 배심원에게 “피해자가 20살 정도 연상이라는 점, 피해자와 피고인이 종교적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며 은근히 애매모호하게 말끝을 흐렸다. 20살 연상이면 뭐가 어떻다는 것일까?
검사는 “몽둥이로 내리쳤다” 대신 “몽둥이로 세게 내리쳤다” 등등 주관적인 형용사와 부사 등의 수식어를 섞어가며 증거를 제시했다. ‘세게’의 강도는 얼마쯤일까?


변호사는 “피해자가 20살 연상이므로, 피고인이 성욕을 느끼지 않거나 덜 느낀다.”고 말하고, 종교적 이야기를 하며 감정교류를 형성했으니, 강간이 아닌 합의된 성교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또 검사는 그냥 내리친 것이 아닌 세게 내리침으로 표현하여 피고인이 매우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둘 다 정교하고 세밀한 언어를 구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관적인 표현들이 많았기 때문에 난 진실의 끝자락에 가 닿기가 참 힘들었다. ㅏ 다르고 ㅓ다른 우리말, ㅏ와 ㅓ 사이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데, 배심원들은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지적인 판단을 하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


쇼크 다섯 . 인권은 부분적으로 보호되는가? 그래도 되는가?


피해자 증언은 요청에 의해 비공개로 이루어졌고, 우리-공감 인턴, 민변 인턴, 참여연대 분들-는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법정을 나왔다. 그런데 검은 정장을 입고 온 사법 연수생들, 방청객의 대다수를 이루던 그들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교육 목적으로 온 것이라 증언을 방청 가능하다.”는 말에 순간 당황했다. 피해자가 신변 보호, 증언의 심적 부담 등을 이유로, 또는 그 어떤 이유로든 비공개 요청을 했으면, 비공개로 진행이 되어야 하지 않나? 사법 연수생도 엄밀히 방청객인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원치 않는 방청객일 뿐인데, 무슨 권리로 남아 있어도 되는 건가? 그건 누가 결정하는가? 그렇게 결정해도 되는 것인가? 인권을 존중해야 할 법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가? 인권은 부분적으로 제한적으로 보호해도 되는가? 이것은 당황이 아니라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킹왕짱 숔’ 이었다


쇼크 여섯. 98% 만족, 2% 부족한 진행. 나머지 2%는 어떻게 하나?


판사, 검사와 변호사의 진행은 비교적 매끄러웠고, 법률 용어를 쉽게 풀어 설명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뭐랄까, 예전에 곰국을 맛있게 거의 다 마셨는데, 거의 다 마신 허연 국물 위에 죽은 개미 시체, 혹은 어떤 벌레가 동동 떠있는 것을 봤을 때의 그 찝찝한 기분이랄까? 맛있게 마시던 것은 하얗게 잊고 개미 시체만 기억나는 그런 느낌. 그런 이미지.

마무리 과정에서 판사는 계속 같은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집중력을 현저히 저하시켰고, 예비배심원에게 “힘들고 어려운 평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돼서…”라고 위로 비슷한 말을 하면서 “평의 과정이 힘들고 어려우니 안 하는 것이 다행이다”라는 묘한 뉘앙스의 말을 했다. 또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피고인이 “자신은 전립선 염증을 앓고 있어서 삽입이 어렵다.”고 주장했는데, 후에 판사는 배심원에게 “삽입 여부는 강간 미수와 기수를 구분하는 데 중요하며, 실형을 선고할 시 기간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판사는 미수와 기수의 용어 설명, 그리고 미수와 기수에 따라 선고 기간이 얼마만큼 어떻게 달라지는지 배심원들에게 설명해야 하지 않았을까?


검사는 “징역 7년을 선고해 주기를 바란다.”고 배심원에게 말했는데, 어떻게 7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간상해죄가 무기 혹은 징역 5년 이상의 징역이고, 감금죄가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700만원 이하 벌금인데, 둘 다 유죄라고 여긴 것일까? 그렇다면 징역 5년부터 무기징역의 큰 폭에서, 왜 7년을 선택한 것일까? 유사 판례나 관련 자료를 제시해서 배심원이 평결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단지, 검사만 제시할 경우 한쪽으로 기울 수도 있으니 검사와 변호사 양측에서 선별된, 판례와 자료를 제시해 주는 것은 어떤가?


쇼크 일곱. 사람이 사람을?


재판을 방청하며 지금까지 멀게만 느껴왔던 법이 피부에 와 닿으면서 내 피부와 심장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배심원, 판사, 검사, 변호사, 피해자, 피고인은 사람이며 법은 사람이 만든 잣대이며 판결은 사람에 의한 결론이다. 이 모두가 사람을 위한, 사람에 대한, 사람에 의함을 문득 깨달으니 더 두려워졌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데, 사람이 만든 잣대와 구조 또한 불완전한데, 정말 공평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배심원과 판사는 미세한 감정에 흔들릴 수도, 검사와 변호사는 원하는 만큼 전달을, 언어 표현을 다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이번 사건처럼 목격자가 없어 증언, 증거와 진술로만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는 더욱 더 진실과 가까워지기 힘들 텐데.’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해야 하는 한, 이 불안함은 계속 영원히 남겠지만, 국민참여재판이 이 불완전성의 간극을 메울 수 있기를, 법조인과 시민의 경험과 지식과 지혜가 만나 더욱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될 수 있기를 마지막 일곱 번째의 근원적인 쇼크 속에서, 간절하게 소망해 본다.


2009년 4월 14일 새벽 4시까지 다리를 꼬고 앉아, 모니터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방청기를 써도 마음은 진실 되고 편안하기만 하다. 본 대로 느낀 대로 토로하니 더 이상의 쇼크는 없다.
아, 그런데 모자는 안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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