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9-02-06   1700

“대기업 범죄 솜방망이 처벌 줄이자는 사회적 기대에 못미쳐”



양형위원회의 배임횡령죄 양형기준안에 대한 참여연대의 입장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배임횡령죄, 강도죄 등 3개 범죄의 양형기준안을 새로 마련해, 오늘(6일) 오후에 공청회를 개최한다. 이번 공청회는 지난 해 11월 뇌물죄 등 3개 범죄 양형기준안에 대해 연 것에 이은 두 번째 공청회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처음의 공청회에 즈음하여 뇌물죄에 대한 양형기준안이 뇌물범죄를 엄하게 다루고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낮은 수준의 처벌이 반복될 가능성이 너무 많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배임횡령죄에 대한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안에도 동일한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배임횡령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와 경영인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벼워 이를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바로 잡고 양형과정에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많은 것을 고치자는 것이 양형기준안 마련의 취지인데, 이번 기준안을 보면 낮은 형량을 선고하거나 집행유예형이 선고될 여지가 더 많아지는 것이라 우려된다.



뇌물죄와 함께 기업인들의 배임횡령죄, 특히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배임횡령죄 재판의 형량이 사회적 문제가 된 주요 원인은,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선고되는 형량이 너무 낮으며, 감경 또는 집행유예형 선고 이유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제시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배임횡령죄로 수사를 받기 시작하거나 재판을 받게 된 후에라도 회사에 끼친 손해를 갚거나 갚으려고 하는 점, 개인적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점, 그리고 피해자라 볼 수 있는 회사 임직원들과 계열사, 협력업체가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선처해줄 것을 탄원한다는 점 등이 그동안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대표적인 선처사유였다.


사회정의를 실천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는 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배임횡령죄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을 감안할 때 이런 것들을 비롯해 재량여지가 지나치게 많은 선처 사유들을 대폭 줄여야 함에도, 이번 양형기준안에 이런 사유들이 합리적 제한없이 포함되어 있어 문제다.



대표적 몇 가지에 대해서만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양형기준안에서는 ‘피해의 회복’을 감형을 할 수 있는 특별양형인자로 정하는 한편 다시 이를 집행유예의 주요 참작사유로 반복해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대기업의 지배주주나 경영진에 대한 처벌 사례를 보면 이는 봐주기식 판결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너무나 많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지금까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취득한 주식을 모두 회사에 반환’, 징역2년, 집유3년),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피고인을 비롯한 대주주들이 횡령금 전액을 각 회사로 반환한 점’, 징역 3년, 집유 5년).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이후 거의 대부분의 피해를 회복한 점’, 징역 3년, 집유 5년) 등이 검찰의 수사를 받기 시작한 후에 기업의 손실을 보전하려고 노력했다는 이유로 모두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등 낮은 처벌을 받는데 그쳤다.

이런 일은 대기업의 지배주주와 주요 경영진으로서는 자신들이 피해회복을 위한 자산만 있으면 실형을 면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잘못된 법감정만 야기할 뿐, 사회적으로도 범법행위에 대한 억지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만든다. 피해회복 여부에 따라 집행유예 선고가 결정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몰락한 기업의 지배주주와 경영진 정도만 실형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 범죄의 경우에는 피해회복을 양형요인과 집행유예의 참작사유로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가중요인으로 산입하는 것이 법의 엄정함을 지키는 방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양형기준안에서는 ‘오로지 피해자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한 행위’를 특별양형요인으로 정해 감형사유로 사용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불합리한 것으로 삭제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피해자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한 행위’라는 개념은 그 자체 의미가 불분명하기도 한데다가 그동안 대기업 비리의 사례들에서 봐주기 판결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 실제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사건이나,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 사건,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사건, 장진호 진로그룹 회장 사건 등에서 회사 주식을 100% 가진 경영진의 경우든 아니면 대주주의 경우든 회사 이익을 위한 행위였을 뿐 개인적으로 취한 이득이 없다는 이유로 재벌총수들이 모두 낮은 형량 또는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만일 진정으로 ‘오로지 피해자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한 행위’라면 횡령과 배임의 구성요건 단계에서 검토해서 배임과 횡령죄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지, 감경요소로 정해서는 안된다. 이에 ‘오로지 피해자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한 행위’는 특별양형요인에서 아예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형기준안에서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특별양형인자와 집행유예의 주요 참작사유로 공통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소유구조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은 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횡령과 배임죄의 법률상 피해자는 회사 자체인데, 지배주주와 주요경영진에 의하여 선단식 경영을 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특성상, 회장과 사장이 형사재판을 받는데, 우리나라의 어느 이사회가 처벌을 원한다고 하겠는가. 하청기업이나 관련 기업에 미치는 대기업 총수의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그들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해달라는 피고인인 대기업 총수 측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대기업 범죄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양형요인과 집행유예의 참작사유에서 다르게 반영하여야 한다.


또 양형기준안에서는 실체적으로 동일한 영역의 사유를 중복적으로 감경사유로 삼도록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피해자 기업을 소유하거나 지배권을 보유하는 경우 피고인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따라서 해당 범죄행위를 ‘오로지 피해자 회사의 이익을 목적’으로 실행하였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고, 피해기업의 이사회는 당연히 지배주주에 대한 처벌불원의 의사를 표시하게 될 것이며, 피고인이 1인 회사나 지배회사에게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결국 자산의 관리주체를 자신으로부터 회사로 옮겨 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유들을 제각각 감경요소들로 삼는 것은 그 자체가 부당할 뿐 아니라 실체적으로는 동일한 사유를 모양만 바꾸어 중복되는 수 개의 감경사유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양형기준제정의 취지와는 달리 기업범죄를 저지른 이가 다른 범죄에 비해 부당하게 유리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참여연대는 대법원이 객관적이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양형기준을 마련하고자 노력함에 대하여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하지만, 횡령배임죄에 관한 양형기준의 경우 특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기업범죄들을 엄정하게 처벌함으로써 사회정의와 경제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투철하게 반영되지 않은 듯하여 다소 유감스럽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선진적인 경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하여 대기업관련 배임 횡령죄에 대하여는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왔었다. 특히 10%도 채 되지 않는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소유구조가 왜곡된 우리나라의 대기업체제를 생각할 때 이들의 범죄는 당해 기업이나 주주뿐 아니라 관련 기업체들 및 관련 산업 나아가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피해가 엄청나게 확산되는 경향을 가진다.
더구나 이 대기업 범죄를 제대로 처단되지 못해 국민들에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법불신, 법불신의 관행을 만들어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이런 잘못된 폐습들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였어야 했다.

이에 횡령·배임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반드시 일반적인 경우와 대기업이 관련된 경우를 구분하여 후자에 대하여는 엄벌주의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배임횡령죄와 관련한 양형위원회의 방안이 갖고 있는 이들 대표적인 문제점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나열되어 있는 선처사유들을 반드시 줄여야만 양형기준을 만들려고 한 취지와 배임횡령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와 경영진을 좀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충족될 수 있다고 본다.
양형위원회가 공청회 이후 개선된 안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JWe2009020600.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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