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안정을 위해 개혁을 포기한 검찰의 소폭인사

1. 검찰은 오늘 고검장 및 검사장급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빈자리 채우기식 승진·전보에 그친 소폭의 인사이동이었다. 이는 개개 인사의 적절성이나 공정성 여부를 떠나 우선 검찰총장 및 수뇌부가 퇴진하고 검찰의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해나갈 개혁세력을 전면적으로 배치하는 보다 큰 구도의 인사를 기대해 왔던 국민의 바람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2. 이번 인사의 계기는 대전 이종기변호사 수임비리사건이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종기변호사로부터 관행적으로 금품 및 향응을 수수해왔던 검사들에 대해 경미한 징계나 사표수리로 마무리했던 검찰은 전면적인 인사개편과 총체적인 개혁을 통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겠다는 다짐을 여러 차례 해왔다. 특히 이원성 대검차장검사는 ‘이번엔 출신 지역에 구애되지 않고 서열도 파괴하는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번 인사가 검찰개혁을 위한 일종의 시험적 성격을 띄우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전면적인 인사를 포기함으로써, 그러한 대국민 공언은 당시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면피용이었음을 드러냈다.

3. 검찰은 이번 인사가 소폭에 그치게 된 이유를 고검장 및 검사장급의 직위에 공석이 없다는 것과 검찰총장이 임기를 마치는 올 6월에 대폭적인 인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오는 8월 인사에는 그동안 추진해온 인사제도 개혁방안에 따라 대대적인 개혁인사가 단행할 방침이어서 이번 인사에서는 조직안정에 주안점을 뒀다”고 이번 소폭인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 그러나 국민이 원하고 검찰개혁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조직의 안정이 아니라 전면적인 인사개혁의 단행이었다. 참여연대는 그동안 김태정 검찰총장이 검찰의 최고책임자로서 대전 법조비리사건 및 정치검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자진해서 퇴진할 것을 요구해왔다. 현직 검사 25명이 연루된 대형 법조비리사건, 현직 검찰 고위간부가 ‘정치적 시녀론’을 제기하였고, 일반검사들이 검찰개혁 및 검찰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연판장까지 돌리게 된 검찰사상 초유의 사건에 대해서 검찰총장 및 수뇌부조차 책임을 회피하고 소폭인사로써 사태의 봉합에만 급급하고 있는 상황은 국민을 전혀 납득시킬 수 없다. 검찰 수뇌부의 교체 없는 빈자리 메꾸기식의 인사조치로서는 도저히 검찰개혁이라는 큰 과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5. 이번 인사는 내용적 측면에서도 여느 때의 검찰인사와의 차별성이나 검찰개혁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대구고검장은 예상대로 박순용 서울지검장이 승진하여 임용되었다. 그의 무난한 이력으로 인해 예전부터 승진인사가 예상되어 온 바 있다. 박고검장은 이번 일선검사들의 연판장 사건을 수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나 앞으로 그가 검찰개혁에 대해 주도권을 쥐고 일선검사들의 개혁요구를 실천해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평검사회의 이후 납득할만한 검찰개혁이 뒤따르지 않아, 사실상 일반 검사의 개혁움직임이 검찰 기득권 논리에 순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신임 박고검장이 과연 검찰의 자기개혁을 위한 남다른 소신과 적극적 노력을 보여줄 지는 의문스럽다. 또한 박순용 신임 고검장이 수사를 지휘했던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수사는 입증 안된 사실에 대한 무리한 발표 및 검찰수사방향의 여과없는 노출 등으로 의도만 앞세운 검찰 수사력의 한계를 보여주었던 경우였다.

또한 지난 11월 민방사업자 선정과 관련, 3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이기택 전한나라당 총재대행에 대한 불구속기소는 경성으로부터 4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국민회의 정대철 부총재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법적용의 형평성 시비를 낳기도 했다. 앞으로 고검장으로서 그가 소신있고 추상과같은 검찰세우기 작업에 일조해 갈 수 있을 지를 지켜볼 것이다.

5. 한편 정홍원 신임 광주고검차장은 기소권행사와 관련한 요주의 인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지난 의정부법조비리사건당시 수사지휘검사로서, 관내 변호사들한테서 명절 떡값과 여름 휴가비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판사들에 대해서는 징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반면에 한나라당의 국회 정보위 529호 사무실 강제진입사건을 수사에서는 서둘러 한나라당 당직자 3명에 대해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이 청구했으나 법원에 의해 기각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이력으로 볼 때 그가 과연 앞으로 검찰의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인사의 계기가 사실상 대전법조비리였다는 점에서 의정부법조비리에 대해 철저한 사법적 잣대를 적용하지 못했던 검사를 승진조치한 것은 법조비리 수사에 대한 검찰의 인식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그의 기소권 행사를 각별히 눈여겨 볼 것이다.

6. 검찰의 인사는 앞으로 추진해야 할 검찰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할 중대하고 긴급한 것으로 미루거나 소극적 대처로 끝낼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의 정서이다.

또한 개혁은 때가 있고 검찰개혁의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도 국민적 공감사항이다. 오늘의 안정위주의 소폭인사는 검찰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의 우려를 사실로 드러낸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검찰은 내홍을 수습한 것으로 자족하고 있지만 국민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는 검찰을 계속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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