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7-09-12   1504

[18회 판결비평 – 판결읽기3] 법이 없는 사회를 창조한 법원

지난 9월 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의 이재홍 수석부장판사와 이상원, 호제훈 판사는 약 1,0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중 700억 원을 사용한 횡령혐의, 부실계열사인 현대우주항공에 다른 계열사가 지원하게끔 해 약 1,600억 원의 손해를 끼치는 등 현대그룹의 각 계열사에 수 천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배임혐의 등으로 기소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김동진 현대차 대표이사에게 징역3년,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하였다.

1심에서 징역3년형이 선고되어 2심에 가서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면서도 천 억대가 넘는 막대한 규모의 횡령과 배임죄를 저지른 기업인에게 또 다시 ‘솜방망이 처벌’이 선고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이 많은 상황에서 내려진 이 판결은 사법부가 경제정의는 물론이거니와 사법정의를 내버렸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재판장을 맡았던 이재홍 수석부장판사가 정몽구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어 경영일선에서 잠시라도 물러나게 되면, 현대차그룹이 부도될 위기를 맞을 수 있고 이것은 국가경제에 큰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국민적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판결결과를 설명해 논란이 되고 있다.

또 재판부가 집행유예의 조건으로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 대상 강연 실시(2시간 이상),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신문기고, 검찰 수사단계에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사회공헌기금 출연약속 이행을 제시했고 이를 실형을 대체할 사회봉사명령이라고 포장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사회봉사명령 내용이 과연 실형을 대체할 수 있는 사회봉사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재판결과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사법정의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불법적인 기업활동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한국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하는데 걸림돌만 되었다고 본다. 이에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기 위해 판결비평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비평칼럼은 정남구 논설위원(한겨레),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전성인 교수(홍익대 경제학)가 각각 작성하였다(편집자 주).

법원이 미쳤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이 모두 그렇다. 정몽구 회장에 대한 사회봉사명령에다가 김승연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까지 완전히 작심을 하고 내달리고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따로 없고, 탈선한 폭주 기관차가 오히려 점잖아 보일 뿐이다. 폭주 기관차에 기관사는 보이지 않는다. 기관사가 있고서야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하라는 대법원장의 말이 이처럼 휴지로 구겨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에 대한 판결을 내린 어떤 판사는 모든 비판을 달게 받겠노라고 호언했다. 그러나 어찌 일개 판사 한 명이 법원 전체에 쏟아지는 비난과 불신을 달게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판결이 법원 전체에 대한 불신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점을 몰랐다면 그의 상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알고서도 그러한 판결을 내렸다면 그의 양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사법적 판단은 판사 또는 집합적 의미로서의 법원의 고유한 권한이다. 판사는 재판과 관련하여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해 ‘자기 맘대로’ 판단한다. 그것이 유무죄의 판정이건 양형이나 손해배상액을 결정하는 것이건 자기 맘대로 한다. 사회가 그것을 허락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권한 뒤에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제약이 있다. ‘법과 양심’의 제약은 일차적인 제약이다. 그러나 ‘법과 양심’이 의미하는 진정한 제약은 사법적 판단에 대한 권한이 정당하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모든 권한은 기본적으로 정당하게 행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권한에는 원칙적으로 의무가 따른다는 말을 학창시절 내내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사회를 살면서 언젠가부터 이런 법언은 ‘고상한 지적 마스터베이션’으로 치부해 버리게 되었다. 권한만 있고 의무가 없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통제하려고 하기 보다는, 권한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이 더 우월한 생존전략임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권리와 의무가 동행하는 것은 적어도 필자가 체험한 ‘삶의 현장’에는 없었다.

물론 이번 판결을 한 판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과 같이 반론할 지도 모른다. 정몽구 회장의 처벌과 관련하여 거액의 사회출연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나, 김승연 회장의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감안한 것이 사법권을 정당하게 행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그러나 주주의 돈을 훔친 사람이 그 돈을 사회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해준다면 이 세상에 절도나 횡령으로 콩밥을 먹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또 법원이 얼마나 많은 피의자에 대해 그들의 건강상태를 걱정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했었던가. 정말 법원에 그런 관행이 있었다면 이번 판결을 예상하지 못한 일반 국민과 언론은 모두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이란 말인가.

사법권의 정당한 행사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법 앞의 평등’이다. 이번 판결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여러 판사들이 반복적으로 재벌 회장을 일반 민초들과는 다른 기준으로 대우했기 때문이다. 재벌 회장은 남의 돈을 훔쳐도 그만이고 다른 사람을 때려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법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법이 없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에는 오직 경우에 따라 그 때 그 때 달리 적용되는 ‘무원칙한 강제’만이 존재할 뿐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듯이 살아 있는 경제권력 역시 신성불가침이다.

후진국을 여행할 때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상당수 국가들에서 고위 공무원들이 큰 기업을 몇 개씩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 놀라곤 한다. 저런 체제에서 어떻게 기술혁신과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며 안도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생각은 지당하다. 사회체제가 공정하지 않을 때 획기적인 기술혁신과 경제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한 가지 팩트를 간혹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나라가 그 후진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전성인(홍익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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