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법원개혁 2005-08-03   1543

‘관료사법’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인식드러나

서울중앙지법 모 부장판사와 보수언론의 대법원장 인선관련 주장에 대해

1. 참여연대를 포함한 14개 시민사회단체가 신임 대법원장 인선과 관련하여 ‘우리는 이런 대법원장을 원한다’는 발표회를 가진 이후, 익명을 요구한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새 대법원장이 전·현직 대법관 가운데 나오지 않으면 사표를 던지겠다’는 내용의 문건을 배포하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일부 보수언론도 시민사회단체들의 이런 의견개진을 사법부에 대한 간섭으로 매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부 법관들과 일부 보수언론의 태도는 관료화된 법원조직의 개혁과 다양한 대법관 구성이라는 사법부 개혁 과제는 외면한 채 사법부 구성에 있어 민주적 정당성을 보충하려는 국민의 의견수렴 절차를 사법부에 대한 간섭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전혀 없는 주장이며, 대법원장이라는 직책을 ‘사법관료’의 최종 승진코스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어서 매우 안타깝다. 참여연대는 법원내부에서조차 확산되고 있는 관료사법 개혁의 요청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2. 우선 익명을 요구하면서 ‘법관 경력이 없는 사람을 대법관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배석판사와 단독판사 경력 없는 변호사를 곧바로 합의부 부장판사로 임명하는 것과 같은 지나친 처사’라고 비판한 서울중앙지법의 부장판사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우리 사법사와 법원조직법의 내용을 무시하거나 일부러 외면한 것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대법원장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대법관으로 재직한 인물 중에는 변호사 출신의 양병호 대법관도 있다. 그는 군사독재 시절 소신있는 소수의견으로 옷을 벗어야 했던 인물이다. 만약 문제의 그 부장판사의 논리대로라면 양병호 변호사가 대법관이 되었을 때 ‘고법, 지법부장들은 큰 자괴감에 빠지고’ ‘패닉’상태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법관 출신이 아닌 인물이 대법원장에 임명된 경우는 외국에도 많이 있다.

그리고 법원조직법 제42조에도 대법원장의 자격은 법조경력 15년 이상의 검사, 판사, 변호사 등으로 명시하고 있지, 대법관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즉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의 자격으로 법조인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 꼭 관료조직의 단계를 거쳐 올라간 고위법관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대법원장으로서 자격은 법조인으로서의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지 관료조직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변호사 출신이 대법원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논리야말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대법원장을 법관의 최종적인 승진코스 정도로 여기는 관료 사법적 승진관행에 매몰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인다.

더구나 사법부는 검찰이나 일반 공무원 조직에서 요구되는 상명하복이나 관료제적 질서가 동일하게 적용되어서는 안 될 조직이다. 어느 기관보다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이 강조되어야 할 곳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관료제적 기구의 수장쯤으로 대법원장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3. 한편 국민적 의견 수렴을 위한 공론의 장을 제공해야 할 언론들마저 ‘시민단체가 대법원장 자격기준 정하나’, ‘시민단체 사법 간섭 이렇게 막가나’, ‘시민단체가 대법원장 뽑나’ 등등의 선정적인 제목의 사설과 칼럼을 동원하여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바람직한 대법원장 선임에 대한 의견제시를 자의적으로 폄하하고 매도하였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대법원장 선임과 관련하여 시민단체는 물론이거니와 국민들조차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대법원장의 상을 제시하는 모든 행위가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는 행위이고 따라서 국민들은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지명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들 언론도 알다시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과 인권보호의 최후 보루로서의 대법원 역할강화 등의 관점에서 어떤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분석하고 그 판단의 기준들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그러한 내용에 대한 합리적 토론에 나서고 대안적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밑도 끝도 없이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제시를 ‘사법부 간섭’이라고 하며 국민들의 의견제시와 활발한 토론을 매도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이들 언론이 국민적 토론이나 여론수렴과정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명해온 대법원장 인선관행에 대해 아무런 비판의식도 없거나, 보기나름으로는 이들 언론이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막후에서 자신들의 입장에 영합하는 대법원장의 인선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4. 또 이들 언론은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 표명도 없이 다만 대법원장의 적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사법권 독립에 대한 의지, 법철학에 대한 검증, 법조인으로서의 활동경력 등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수 년 전부터 사법부 독립에 대한 의지와 국민의 기본권 및 인권보호 의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능력 등을 바람직한 대법관 후보 추천기준으로 제시해왔다. 또 이런 기준과 함께 참여연대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법원장이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마저 침해할 정도에 이르러 법원내부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올 만큼 관료조직화된 사법부를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고 또 대법원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대법관제청권을 민주적으로 행사할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안팎의 사법부 개혁 필요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혹시 이들 언론들이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어서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들 언론이 제시하고 있는 사법권 독립이라는 것이 현재의 고등부장 승진발탁과 같은 구시대적 관료주의 체제에 입각하고 있는 법관인사제도나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된 법원행정처제도와 같은 사법제도 전반의 개혁이 선행될 때에만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 언론이 이 부분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음은 투철한 사회비판과 건전한 대안의 제시를 본연의 임무로 하는 언론으로서 일종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게다가 이들 언론들은 겉으로는 법철학에 대한 검증을 제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법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다시말해 이들 언론들은 추상적이고 공허한 기준만 열거하면서 합리적이고 검증가능한 인선의 기준은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현재 사법부 안팎에서 분출하고 있는 사법부 개혁에 대한 요구조차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거나 애써 이를 외면하여 기존의 관료사법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5. 이번 대법원장 인선에서도 인권보호 및 기본권 존중 등 법조인으로서의 기본 자질은 당연히 검증사항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대법관 제청권, 법원행정처장 임명권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법관에 대한 각종 인사권과 보직권을 독점하고 선거관리위원회 등 각종 주요국가기관 위원 지명권까지 거머쥐고 있는 대법원장 인선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관료제적 사법부를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인가 여부도 중요하게 검증되어야 한다.

참여연대는 대법원장 지명권을 행사할 대통령이 국민적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뿐만 아니라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게끔 사법부를 개혁할 수 있는 인사를 선임할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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