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법원개혁 2010-03-11   3391

재정합의부, 본래 취지를 살리는 제도 되어야


대등한 경력법관으로 구성하고, 대상사건 선정절차 보완해야

지난 9일 대법원이 재정합의제도의 전면 개선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요 형사사건에 대해 단독판사 3~4명이 합의부를 이루어 재판하는 재정합의부 규정을 현행 재판예규에서 대법원 규칙으로 승격한다는 내용 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하태훈, 고려대 교수)는 1심 재판의 강화라는 입장에서, 최근 단독판사의 경력강화와 함께 재정합의부의 활용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재정합의부는 법관간 대등한 관계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등한 경력법관으로 구성하고 대상사건의 선정절차가 투명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참여연대는 1심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의 경력을 강화하고 합의부를 대등한 경력의 법관으로 구성할 것을 주문해왔다. 현재 우리 사법시스템이 경력이 낮은 법관들에게 1심을 맡도록 하고 있어, 재판 결과에 불복하고 항소하는 비율이 높은데 이는 사회적으로 많은 비용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합의부 구성이 부장판사와 경력 5년 미만의 배석판사로 이루어져 대등한 관계에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진정한 의미의 합의부 재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경력법관의 채용을 통한 대등한 경력법관의 재판부 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확정된 전국 법원의 사무분담표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형사단독사건을 모두 10년 이상 경력법관이 담당하도록 하고 재정합의부 4개를 신설했다. 이와 함께 민사단독사건 판사들도 상당수 경력이 많은 판사들로 채웠다. 그러나 신설된 재정합의부는 단독부장판사를 재판장으로 하고 나머지는 여전히 현행 배석 판사의 역할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 재정합의부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재정합의사건의 처리에 대한 예규가 ‘선례나 판례가 없거나 엇갈리는 사건’ ‘사실관계나 쟁점이 복잡한 사건’ 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단독사건을 예외적으로 합의부로 넘기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대등한 경력을 가진 법관으로 합의부가 구성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재정합의 대상사건에 대한 기준을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려는 경우 ▲기존 판례와 다른 판단을 내리려는 경우 등으로 하겠다는 안이 지난 법원장회의에서 보고되었다. 기존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가 정하고 있는 재정합의 대상사건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 등으로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이를 구체적 규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대상을 위헌법률심판 제청 등의 경우로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의 소지가 있다.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거나 위헌제청을 하려는 경우 사건을 재정합의부로 이송하는 것을 담당판사의 재량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이를 강제적으로 하는 것은 단독판사의 재판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헌제청을 보다 신중하게 하겠다는 취지일 수 있지만 위헌제청을 한다고 곧바로 위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단독판사가 자유롭게 위헌제청을 하는 것을 막을 정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도 위헌제청이 남발되는 상황이 아닌데다 이미 단독판사의 경력을 강화하기로 한 마당에, 단독판사의 위헌제청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해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사태를 겪으면서 사건배당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우리 사회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대법원 역시 관련 예규를 수정하는 등 내부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자동배당 예외사유를 최소화하여 ‘관련사건, 쟁점이 동일한 사건, 사안이 복잡하거나 다수의 이해관계인 또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이던 배당 예외 조항을 ‘먼저 배당된 사건의 관련사건이 접수된 경우 담당 재판부에 배정할 수 있다’로 축소했다. 배당에 있어 인위적인 요소가 들어갈 경우 재판의 독립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 재판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져 결국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해칠 수밖에 없다는 교훈 때문이다.


재정합의부 사건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과 같은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선정한다면 이는 신영철 대법관 사태 이후 우리 사회와 법원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것이다. 민감한 시국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법원이 정치권의 외압이나 보수언론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 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신영철 사태’를 제도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 재정합의부 구성은 합의부의 취지를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하고 대상사건의 선정 기준은 투명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논평원문
JWe2010031100.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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