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5-01-23   2161

[판결비평77]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지난 1월 9일 법원은 한 방송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해경의 구조활동에 대해 거짓 인터뷰를 했다며, 해경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홍가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시 공익변론을 맡았던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의 양홍석 변호사가 직접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짚어주었습니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2015.1.9.선고 2014고단612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

판사 장정환 

 

 

 

양홍석 변호사

 

 

 

 

양홍석 변호사,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전국민적 비난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사실관계, 법리에 따라 무죄판결을 선고해준 재판부의 결단에 감사드린다. 변호인으로 관여한 사건의 판결에 대해 비평을 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 다만 판결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사건의 발단은 2014. 4. 18. 새벽 6시경 MBN과 한 인터뷰였다. MBN과의 인터뷰는 먼저 MBN작가가 출연요청을 했고 홍가혜가 팽목항에 가면 현장상황을 전해주겠다고 응하면서 이뤄졌다. 원래 5분정도 전화인터뷰를 하기로 한 것인데, MBN측이 생방송 영상중계 인터뷰로 변경했고 문제의 12분짜리 인터뷰가 시작됐다. 

 

홍가혜가 전한 팽목항의 상황은 언론보도와 달리 민관군 합동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해경이 민간잠수부의 투입을 막고 있고, 장비나 인력을 제대로 지원해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간잠수부가 세월호 선내 생존자와 대화를 했다(신호를 주고받았다)거나 구조대원이 유가족에게 ‘여기는 현재 희망도 기적도 없다’고 했다거나, 해경이 민간잠수부들에게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인터뷰는 홍가혜가 2014. 4. 17. 밤 팽목항에 도착해서 그 다음날 새벽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 자신이 겪고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냥 막무가내로 한 말이 아니었다. 민간잠수부가 생존자와 대화를 했다는 부분(인터뷰 도중에 ‘신호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라고 정정)도 상식적으로 보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팽목항에서는 실제 이런 말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었고, 이것이 세월호 선내에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만들어낸 신기루였다 하더라도 팽목항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말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홍가혜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말하고 관련된 언론보도도 있었기 때문에 믿었던 것이다. 실제 수중에서 소리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고, 사고 초기 세월호 선체 외부에서 망치로 쳐서 소리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재판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고, 선내 생존자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에 외부의 소리에 반응했다는 이야기가 팽목항에서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게 들렸던 것이다.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부분도 완도구조대 대원이 올린 카카오스토리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실제 재판과정에서 민간잠수부, 해경의 증언을 통해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검찰은 홍가혜의 인터뷰를 ‘해경이 세월호 선내에 생존자가 있음을 확인했는데도 고의로 민간잠수부의 투입을 막고 있다’는 내용이라고 ‘해석’한 다음, 그 ‘해석’을 바탕으로 홍가혜가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다. 검찰의 ‘해석’이 가미된 판단이 공소사실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홍가혜의 인터뷰는 팽목항에서 홍가혜가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그 중에는 사실이 아니거나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는 이유로 홍가혜가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홍가혜가 발언한 내용이 사실이거나 사실로 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는 것으로 홍가혜가 ‘거짓인터뷰’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선언한 것이다. 

 

일반인이 어떤 사안에 관해서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정보에 기초해서 인터뷰를 한 경우 그 인터뷰 내용 중 일부가 사실이 아니라거나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아니거나 다소 과장된 부분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게 ‘사실’로 확인된 내용만 말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의혹이나 문제제기는 처벌받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일반인이 하는 말에 이런 식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말을 ‘잘’ 하라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면 침묵하라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공적 사안에 관한 의혹,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한다고 해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사소한 ‘오류’, ‘과장’으로 인해 의혹제기나 비판이 봉쇄된다면 여론형성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회적 논란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논란은 여론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고 의견과 사실이 충돌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인데, 논란을 금기시하게 되면 진정한 ‘여론’이 형성될 수 없다. 

 

특히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그것이 해당 사안에 관한 핵심적인 정보인지, 큰 정보의 일부에 불과한 것인지, 그 정보는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은데, 제한된 정보 그나마도 파편화된 정보의 일부에 기초해 말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이 여론 형성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정보를 자신 나름대로 취사선택해서 해석하고 평가한 것을 토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한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여론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사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형사책임을 묻게 된다면 여론형성과정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일반인이 어떤 정보를 취득하고 해석한 다음 나름의 평가를 거쳐 한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사실이 아닌 말을 했다고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홍가혜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도 홍가혜가 한 인터뷰의 내용, 그 인터뷰를 하게 된 정보의 출처, 해당 정보의 해석 및 평가과정이 합리적이었는지에 관하여 심리했다. 그 결과 홍가혜의 말이 상당 부분은 사실에 근거했고 사실이 아닌 부분도 당시 팽목항에서는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보가 불완전한 상태라 하더라도 그 정보를 접한 후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친 표현이 사소한 ‘오류’나 ‘과장’ 때문에 형사법정의 판단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 것이다. 

 

또, 재판부는 검찰이 피해자로 특정한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현장구조대원 등 세월호 구조담당자들”이 지나치게 폭넓어 인터뷰가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법리적으로도 검찰이 내세운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없는 사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동안 대법원은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집단의 크기, 집단의 성격, 집단 내에서의 피해자의 지위 등을 고려해서 집단 내에서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개별구성원을 특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왔고, 이 법리는 강용석 전 의원 아나운서 모욕사건에서도 적용된 것이다. 검찰도 이 법리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구속하고 공소제기를 한 것은 애초부터 이 사건이 무리한 수사였음을 드러내는 단초라고 생각한다. 재판부는 재판 초기부터 검찰에 피해자 특정문제에 관한 법리 검토를 요청하였으나 검사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어쩌면 홍가혜 사건은 이 법리에 대한 적절한 검토만 있었더라도 존재하지 않았을 사건일 수도 있다. 그래서 1심판결은 법리에 충실한 판결이고 항소심에서도 무죄라는 결론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한편으로 변호인으로서는 판결문에 확립된 법리에 반하는 공소제기라는 이유가 기재되는 상황이 서글프다. 

 

또, 이번 판결에서는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국가기관으로 공적 존재이므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이 법리 역시 MBC PD수첩 광우병보도사건, 박원순 시장사건 등에서 확립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판결문에 다시 한번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 공소제기가 문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허위사실로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는 명예를 훼손했다는 허위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명예훼손을 하지 않았는데 ‘해석’을 통해 명예훼손을 만들어낸 것이다. 죄가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정부나 공직자에 대한 비판이나 의혹제기가 명예훼손으로 만들어지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이번 판결이 그 계기가 되면 그동안 전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홍가혜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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