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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개혁
  • 2019.08.09
  • 809

새로운 사법 권력은 판결비평에서 나옵니다

2015~2019 판결비평선집 『현재의 판결, 판결의 현재』를 추천하며

 

이탄희 변호사(전 판사)

현재의판결, 판결의 현재 책 이미지

 

2019년은 우리 헌정사에 의미 있는 한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는 특히 사법 개혁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전직 대법원장은 직무상의 범죄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현 대법원장은 70년간 유지되어온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국회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70년간 검찰이 사실상 독점해온 기소권을 다른 기관이 분점하게 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우리나라의 사법 체제는 이렇게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겠지만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판사와 검사들이 갑자기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심기일전할까요? 

아닐지도 모릅니다. 구질서가 사라진다고 저절로 새 질서가 자리 잡지는 않습니다. 새 질서는 그것대로 따로 세워야 합니다. 권력에는 진공상태가 없습니다. 가만히 두면 구질서의 아류가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할지 모릅니다. 저는 판결비평이 새 질서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엉뚱해 보이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대법관은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대법관 후보자가 된 150여 명 중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습니다. 스스로 사퇴한 사례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한 번뿐입니다. 인준 거부율이 20퍼센트가 넘는 미국의 경우와 대비됩니다. 왜 그럴까요? 큰 이유 중 하나는 후보자를 평가할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30년 이상 수천 건의 판결을 선고한 판사에 대해서도 공개된 판결문이 거의 없습니다. 판결문이 없으니 비평도 부족합니다. 비평이 부족하니 후보자를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최고 법관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검증이 온통 경력과 재산 관계로만 쏠리는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평범한 판사의 머릿속에는 자신에 대한 평가 요소가 '좋은 판결'보다 '좋은 경력'에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판사의 경력은 인사권자가 만들어줍니다. 그런 판사는 재판받는 시민들의 평가보다는 법원 내 인사권자의 평가를 중시하게 됩니다. 사법 관료제는 이렇게 판사에게 시민들을 무시하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인권을 수호한다는 헌법적 사명보다는 조직의 이익과 조직 내 평판을 우선시하라고 강권해왔습니다.

 

그런 문화에 익숙한 판사는 변화가 두렵습니다. 2018년 5월 대법원은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민사사건의 경우 70퍼센트, 형사사건의 경우 78.3퍼센트의 응답자들이 미확정 판결문의 공개를 반대했습니다. 반면 3개월 뒤인 2018년 8월, 비법관이 위원 중 다수인 사법발전위원회는 미확정 판결문 전체를 공개하라고 대법원장에게 건의했습니다. 신구 질서가 충돌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시점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의 다양한 판결에 대한 비평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2014년에 출간된 판결비평 모음집 <공평한가?>에 이어 두 번째 책입니다. 참여연대가 처음 '판결을 판결한다'라는 제목의 온라인 법정을 열고, '판결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창했던 때가 2002년입니다. 그로부터 17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대법원이 전 국민을 상대로 판결문 열람용 컴퓨터를 단 4대만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등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참여연대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판결비평 작업을 진행해왔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시민들에게 '디딤돌 판결' '걸림돌 판결'이라는 어휘가 친숙해졌고, 언론사에 의한 판결비평도 확산되었습니다. 

 

이제는 판결비평의 대중화가 필요합니다. 판결 비평에는 어떠한 자격도 필요 없습니다. 주권자이기만 하면 됩니다. 적어도 주권재민 사상을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그렇습니다. <현재의 판결, 판결의 현재>에는 특히 법률가와 교수뿐 아니라 활동가가 직접 작성해 시민들에게 좀 더 쉽게 읽히고 친숙하게 다가갈 비평문이 다수 실렸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혜안이 돋보이는 지점입니다.

 

우리도 진정으로 좋은 법원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좋은 판사가 많은 법원이 좋은 법원입니다. 시민들마다 좋아하는 판결 하나, 좋아하는 판사 한 명쯤은 기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요직과 경력을 좇기보다 좋은 판결 남기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판사들이 출현할 것입니다. 그들이 주류가 될 때에야 비로소 법조계에 새 질서가 자리 잡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새로운 사법 권력 형성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2019년 8월 6일, 2015년부터 2019까지 나온 <판결비평_광장에 나온 판결>에서 골라담은 판결비평선집 『현재의 판결, 판결의 현재』(북콤마)을 출간했습니다.  『판결비평 2005~2014 : 공평한가? 그리고 법리는 무엇인가』(북콤마)에 이은 두 번째 단행본입니다. 

 

참여연대는 15년 전부터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_광장에 나온 판결> bit.ly/2YIqxs4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현재의 판결, 판결의 현재』 단행본은 시중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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