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3-05-26   1488

[성명] 현수막게시 불허관련 대법원 판결 비평 논평 발표

-기본권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헌법 일반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논증의무 회피, 논증순서마저도 지키지 않은 판결은 비판받아야 마땅-보수적인 대법원 인적구성의 문제점 노출, 대법원 개혁 필요성 절감

1. 대법원 1부(주심 박재윤 대법관)은 23일,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한 현수막을 금지광고물로 규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나 모씨가 춘천시장을 상대로 낸 옥외광고물등표시신고수리거부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법률의 제시를 일관되게 주장했던 원고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 극히 미진한 판결이며, 기본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헌법상의 기본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권퇴행적인 판결임을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반하느냐는 점이 주된 쟁점이 아니라 원고가 설치하고자 한 광고물의 내용을 실정법인 옥외광고물등관리법이 제한하고 있느냐 였음에도 불구하고, 필요이상으로 국가보안법의 필요성과 합헌성을 강조하여 본질을 흐리고 있다.

또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같은 사실관계를 놓고도 원심(고등법원)이 인용한 헌법재판소 결정례와는 다른 결정례를 인용하는 등 판례인용에 있어서도 자의적인 측면을 드러내어 재판불신을 스스로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미 몇 해 전의 하급심과 이 사건 원심(고등법원)은 물론 헌법재판소에서도 옥외광고물등관리법이 제한하고자 하는 바는 광고물의 내용이 아니라 설치장소, 게시형식, 게시방법 등이라고 하여 언론출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취지의 판결 및 결정을 하고 있어,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하급심보다도 못한 인권의식을 가졌으며 또 다른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해석을 무시하는 매우 부끄럽고 오만한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헌법재판소 1998.2.27. 96헌바2 ,인천지법 1998.9 98구666 참조)

2. 현행법상 기본권 보장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제한이 가능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는 법률로써 하도록 하여 기본권의 자의적인 침해를 방지하도록 하였으며, 이 경우에도 본질적인 제한은 역시 금지하고 있다.

언론·출판의 자유라는 기본권 역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이 가능하나 그 제한은 법률로써 가능하도록 했으므로 원고는 이러한 제한법률이 과연 존재하느냐는 점을 다툰 것이다.

그리고 옥외광고물등설치법이 광고물의 내용까지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대법원 판결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을 자세히 보면 원고가 주장한 사실에 대해, “그 주장의 내용과 표현 방법 및 수단을 종합하여 볼 때 옥외광고물등설치법 제5조 제2항 제 3, 4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라고 하여 앞 부분의 장황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알맹이는 전혀 없는 ‘종합하여 볼 때’ 라는 한마디로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에도 대법원 판결이 구체적인 논증을 생략한 채 단순히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라는 식의 비논리적인 것이 많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도 역시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법리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등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음은 판결의 논리성·신뢰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

이에 비해 이 사건 원심(고등법원)은 “원고가 이 사건 현수막에 표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다소 급진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옥외광고물등관리법 제5조 제2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내용을 표시하고 있음이 그 표현 자체로서 외관상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라고 하거나 ” 언론·출판의자유에 대한 제한으로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광고물 등의 표현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 해석·적용에 있어 행정기관에게 판단의 재량을 부여할 경우에는 자칫 언론·출판에 대한 사전허가·검열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하여 대법원판결에 비해 기본권 관련 법리 및 이해도가 앞서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3. 설령 백보를 양보하여 대법원처럼 옥외광고물등관리법 관계규정이 표현하려는 광고물의 내용까지도 제한하려는 입법목적을 가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논증순서가 뒤바뀐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판시이유에서 원심의 사실관계를 정리한 후, 헌법 제21조 제4항, 제37조 제2항을 언급한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국가보안법 제1조를 원용하며 다소 장황히 현재의 분단상황 등을 거론하고는 국가보안법이 마땅히 존재의의가 있으며 이 법이 반인권·반통일·반인권적인 악법이라고 비난되어서는 안된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어서 이 사건의 핵심적인 쟁점이라고 할 옥외광고물등관리법 제5조 제2항 제3, 4호는 광고물의 내용까지도 제한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이해되는 매우 짧은 설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원고는 옥외광고물등관리법이 광고물의 내용까지도 제한하려는 입법목적을 가진 것인지를 묻고 있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위 법이 광고물의 내용까지도 제한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선 명확히 밝힌 연후에, 국가보안법이 여러 현실로 미루어 아직은 합헌이며 따라서 광고물로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야 논증순서에 맞다.

이점에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기본적인 논증순서도 지키지 못한 수준이하의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제37조2항은 물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조항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동 조문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중요한 제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바로 법률유보원리이다.

즉, 동 조문은 기본권 제한의 필요가 있더라도 법률이 없으면 제한할 수 없다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현행법의 무수한 제한과 금지의 목록들 가운데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사유라면 그것은 허용되는 행위인 것이다.

가치관에 따라서 제한의 필요를 느낄 수도 있지만, ‘법률이 없기 때문에’ 제한할 수 없다는 결론이 헌법 제37조2항에 대한 정당한 해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제한의 필요성에 대하여서만 강변할 뿐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명백한 논증의무의 회피이며 마치 박정희 시대 대법원의 판결문을 보는 듯하다.

법의 취지에 비추어 금지된다고 하는 지극히 애매한 이유로 제한을 하기 시작한다면, 예를 들어 호주제 폐지의 경우에도 호주 및 호주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민법의 취지에 비추어 호주제 폐지 플래카드를 내거는 것은 금지된다고 하는 논증을 해야 옳을 것이다.

4. 위에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헌법상 기본권은 최대한 보장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본권의 발전역사에 반하는 점에 대해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이 번 판결은 하급심과 헌법재판소의 법률해석에도 반하는 퇴행적인 판결이어서 매우 수치스런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 최고법원인 대법원은 기본권의 최후보루라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판결로 인해 대법원은 전혀 기본권 보장이라는 기본적인 기능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기관이 되고 말았다.

법원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매우 높다. 그러나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고 지극히 보수적인 현재의 대법원 인적구성으로는 이러한 개혁열망이 요원함을 이 번 판결을 통해 절감하게 된다.

본 사건과 관련된 혹은 유사한 사례에서 후배법관들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내린 판결을 아무런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일언지하에 무시해버린 이 사건 판결로 인해, 대법원은 그 논리의 빈약함을 드러내었음 물론 후배법관들에게 부끄러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끝.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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