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법원개혁 2012-05-24   4377

[좌담회 정리] 대법관의 다양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지난 22일 저녁 “대법관의 다양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습니다. 사실 ‘대법관이 누가 되느냐’가 내 삶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까, 싶은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법원만 안 가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대법원에 의해 결정이 되고, 내가 법원에 갈 일이 없다 해도 이런 것들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요.

 

좌담회에서는 대법원이 결정하는 많은 것들을 꺼내놓고, 그런 결정은 법원 속에 살고 있는 비슷한 판사들만이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좌담회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올립니다. 이 글은 좌담회의 일부만을 발췌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얘기들이 오고갔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동영상도 함께 시청하시면 좋겠습니다.

 

 

[좌담회] 대법관의 다양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일시  2012년 5월 22일 저녁 8시 30분~10시 20분

장소  참여연대 카페통인

 

사회  한상희 교수(참여연대 운영위원장)

패널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서기호 전 판사(통합진보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장) 임지봉 교수(서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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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가

7ff50a4ebd5e3476ec2eaa290fa269f7.jpg한상희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참여연대 좌담회 ‘대법관의 다양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시민들이 정부나 정치인 또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집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해야 할 필요가 생기고요. 정치가 민주화되면서 그동안 억눌려있던 우리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그것을 법의 형태 또는 정치의 형태로 바꿔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정치인의 열린 마음이랄까요, 또는 정부나 관료의 귀기울임이 우리 기대에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말할 통로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억울한 면이 있어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들의 목소리는 어쩔 수없이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전략적으로 법원을 향하게 되는데요. 법원은 통상적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최후의 보루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법원, 특히 대법원은 지난날 권위주의 체제 하의 형식적인 법의식, 경우에 따라서는 일반 국민들의 생활과는 유리된 형태의 동떨어진 사고방식을 유지한 채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국민들의 목소리를 법정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국민이 원하는 바에 따라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는 시민들의 하소연이나 안타까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법원의 ‘갇혀있음’,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또 다른 시민들의 목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대법원은 중대한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13명의 대법관 중 4명이 7월에 교체되게 됩니다. 대법원에서는 이미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후임인선 절차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바라는 대법관, 시민들이 원하는 대법원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시민들과 소통하고 물어보는 절차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몇몇의 추천위원이 밀실에 모여서 자기들만의 기준과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우리 정치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대법원의 구성을 결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이런 갑갑하고 닫혀있는 대법관 추천절차를 살펴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열린, 민주적인 절차가 될 것인지, 나아가 대법원을 어떻게 구성해야 우리의 삶이 더욱 윤택하고 행복하고 자유로워 질 것인지, 그리고 우리 정치가 보다 열리고 민주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대법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기계적으로 적용한다?

02e319655ac061b2c2930bbe778519de.jpg홍성수  고등학교 때 많이 배웠던 고전적 3권 분립론에 따르면, 입법부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사안에다가 그 법을 그대로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했었죠. 법관은 법을 말하는 기계다, 라고 얘기하기도 했었는데요. 더 이상 그런 테제를 이야기 하는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입법이란 건 법률이란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고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해 준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고요. 구체적 상황에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실체적으로 법이 무어다, 라고 확인해 주는 역할은 사법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대법관은 그런 판단에 있어 최종적인 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분들이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봅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좋은 법을 만들어 놓았다 해도 대법관이 그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선거를 잘해서 국회의원만 잘 뽑으면 된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경험해본 여러가지 정치체제가 있습니다만, 가장 최적은 민주주의다, 이렇게 많이 말씀들을 하십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에도 일정한 결함이 있을 수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다수결로 모든 문제를 결정하다 보니까 소수자의 견해가 잘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소수자의 견해를 민주주의 틀 내에 수용하기 위한 여러 보완장치가 있습니다만 사실 사법부가 하는 기능 중의 하나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민주주의 절차에서의 위법성을 사법부・대법원에서 판단하는 것이고요. 또 한가지는 구체적 법률 해석을 통해 소수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관의 재량을 발휘함으로써 보호하는 기능도 하는 것입니다. 사법부는 선거로 뽑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다수이익으로의 부담 없이 소수의견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

 

대법관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그런 점이 많이 반영되어야 하는데요. 대법관 구성 절차를 보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을 하고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사실 위원회 내에도 시민의 몫은 3명에 불과하고요, 3명의 선출과정도 대법원장이 지명하다시피 진행되기 때문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대개 절차가 문제가 있으면 결과도 바람직하지 않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도 그런 것 같습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14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제가 평균 나이가 어떤지 직접 계산을 해봤는데요, 해봤더니 57.9세가 나왔습니다. 50세 후반에서 60대 초반 분들이 대부분이고 성별을 봐도 14명 중 2명만이 여성이고요. 대부분은 평생 법관만 하다 대법관이 된 케이스였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대법관들의 절대 다수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연수원을 다니고, 역시 비슷한 시기에 법원에서 근무를 하다가 한 50대 중반쯤 되서 사법부의 최고 자리에 오른 남성들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한국의 남성 기득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그 자체로 문제 있다기보다는 어쨌든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까, 예를 들면 사실 어려움도 좀 겪어보고, 애들 교육시킬 때 집 살 때처럼요. 그분들 아픔도 겪어보고, 그분들 입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볼 수도 있고 이런 분들도 들어가서 대법원을 구성해야지만 판결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소수자의 권리도 보호될 것 같은데, 지금 사법부 구성은 내부에서만 충원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평균 나이 57.9세, 남성, 엘리트 판사

 

사실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구성이 다양하다고 해서, 예를 들어 출신성분에 따라 판결이 그대로 인과관계가 있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제 전공이 법사회학인데, 영미권에선 이런 연구가 굉장히 많거든요. 자신의 계급적・계층적 기반에 따라서 실제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연구들이 많은데요. 그런 연구들에 따르면 대체로 이런 견해가 있습니다. 법관은 대개 ‘공공이익’ 무엇인지를 기초로 판단을 합니다. 문제는 법관의 배경과 지위에 따라 ‘공공이익이 뭘까’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똑같이 공공이익을 기초로 판단을 하는데, 그 ‘공공이익’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겁니다.

 

영국 같은 경우는 특히 사립학교, 옥스브릿지 출신이 법관이 많이 되는 나라인데요. 이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는 것이 공공이익이다” “사적소유는 가능한 한 보호되어야 된다” “노조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소수의견이라던가 집회・시위, 정부의 정책과 충돌하는 입장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 또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있고,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고 전통적 도덕관념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이 물론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린 소수의견을 많이 냈던 대법관들도 항상 소수의견 편에 섰던 건 아니거든요.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었던 것이고요. 어쨌든 대법관 구성이 좀 다양해야지만 법원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고, 대법관 임명과정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반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적 소유는 가능한 한 보호되어야 한다” “노조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상희  대체로 보면 법관이 특정가치나 정파를 지지해서 판결을 하기 보단, 출신이나 사회경험에 따라 가치판단 기준이 달라지는 거죠. 자기도 모르게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살아왔던 경험 반영하고 그 속에서 판결을 하다보니까 법관의 출신배경이 한쪽으로 치우쳐있으면 자연스럽게 판결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그래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나 인권의 발전에 경우에 따라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나 인권의 문제 차원에서 대법관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의 문제에서도 법원 판결이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한 경제질서를 만들기 위해 우리 대법원 구성은 어떤 식으로 되야 할까요?

 

5d2dff6a28d7be30a44a4864b4418a75.jpg신인수  저는 소속이 민주노총 법률원인데 경제민주화는 너무 큰 영역이라, 우리사회의 노동이나 근로의 권리로 한정을 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언론파업입니다. KBS, MBC, YTN 그리고 국민일보, 연합뉴스.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이렇게 많은 방송사들이 파업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MBC파업은 114일째입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가 백일 넘게 파업을 했다고 하면 쇼킹한 일인데,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 벌어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사측에서는 MBC・KBS・YTN에서도 파업하면 업무방해로 고소를 합니다. 그러면 한창 파업 중에 노동조합 집행부가 경찰에 가서 왜 파업하는지 설명을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게 과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나, 에 대해 사진들을 통해 설명하겠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프랑스의 판사들이 파업하는 장면입니다. 왼쪽은 우리나라인데, 작년에 민주노동당에 만원 후원했다고 해서 기소된 학교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어떤 나라는 판사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파업할 수 있고, 어떤 나라는 공무원이 진보정당에 만원 후원했다는 이유로 재판정에 서고 징계를 받는 상황이 같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판사가 파업하는 나라 vs. 정당 후원했다고 공무원을 기소하는 나라

 

또 하나 재밌는 사진인데요. 해외여행 가면 많이 보실 것 같은데 프랑스나 런던 같은 곳은 파업을 하면 굉장히 심하게 합니다. 지하철, 버스, 항공사 등이 공동으로 해서 완전 마비를 시키고, 시민들은 자전거나 자가용을 타거나 택시를 타려고 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어떠냐. 왼쪽 사진을 보시면 전주 순천 찜질방인데요. 이른바 ‘찜질방 사건’으로 부르는데요. 지금 민주노총 위원장인 김영운 씨가 당시 철도노조 위원장일 때 파업을 했습니다. 파업을 하면 잡아가니까, 산개투쟁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중 일부가 전주 순천에 찜질방에 간 겁니다. 그랬더니 경찰들이 찜질방을 둘러쌌습니다. 이것도 어떤 나라에서는 버스・지하철・택시 모든 것이 다 멈춰도 그것을 시민의 권리이고 보편적 권리로 존중하는 반면에, 어떤 나라는 파업하고 찜질방 갔다고 그 사람들을 끄집어내는 나라, 전 이건 글로벌 스탠다드에 안 맞는다, 라는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의 재밌는 사진은 작년 프랑스에 이백만명 모여 시위를 한 건데요. 파업의 목적은 연금법을 개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살펴보면 민주노총이나 여러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악법 개정해라, 복수노조 악법 개정해라, 이렇게 동맹파업을 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입니다. 대법원의 입장에서 정치적 파업이기 때문에 불법입니다. 왜 이런 나라는 되고 우리나라는 안 되는가, 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부연하면, 전세계 160여개 국가 중에서 파업을 처벌하는 나라는 딱 두 나라였습니다. 일본하고 대한민국이었는데, 일본도 1970년대 이후 파업을 처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세계적으로 파업을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이런 기막힌 현실에 대해서 그것들이 계속 대법원에 의해 확립되고,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약간 바뀌긴 했지만 파업이 형사처벌되는 관행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파업을 형사처벌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

 

또 하나 고민이 되는 판결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쌍용차 노동자 중에서 22분이 돌아가셨는데요. 쌍용자동차 노조에서 주장했던 것이 정리해고 철폐였습니다. ‘같이 살자’는 건데요. 대법원의 판결이 뭐냐면 정리해고, 구조조정, 지점의 이동, 이런 것들은 경영자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의 목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근로자들이 파업을 한다는 것, 쟁의행위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취지는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한다고 노조법에 딱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정리해고라는 것은 그 바탕이 되는 근로조건 자체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위해서 파업을 할 수 있는데 그 조건 자체가 없어지는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을 못한다, 이것은 외람되지만 언어도단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판례는 아직도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파업, 노동조합, 이러면 뭔가 과격하고 잘못되고 파업은 자제되고 금지되어야 하는 것으로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것 그대로 시민적 권리로서 보장하고, 파업한다고 구속결단식 하고 경찰에 끌려갈 것을 각오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루 빨리 개선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법원의 구성이 다양해져서 너무나 불합리한 모습을 변화시켰으면 합니다.

 

파업한다고 구속되고 경찰에 끌려갈 것을 각오하는 나라

 

한상희  우리나라도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이 되어 있고 그렇다면 파업에 대해서도 글로벌스탠다드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이 된 거잖아요. 그런데도 파업을 처벌하는 전세계적으로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면 듣기가 좀 그러네요.

 

신인수  네. ILO가 해마다 우리나라에 권고를 합니다.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지 말아라, 그리고 작년에 교사・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정당 후원한 것으로 형사처벌하지 말아라 이런 걸 계속 권고하는데, 안 듣습니다. 저는 그게 바로 우리나라의 국격 자체를 떨어뜨리는 거다, 우리가 자동차를 많이 팔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고 할 때만, 다른 나라에 가서도 말할 명분 있지, 그런 차원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상희  신변호사님께서도 판사생활 하셨는데, 법관들 중에서도 노동이나 전문영역을 개척하는 분들도 계시죠. 이런 분들이 대법원에 가서 노동에 관해서 열린 마음이나 글로벌스탠다드에 맞게 판결하면 이런 문제는 좀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신인수  그렇죠. 퇴임하는 김지형 대법관 같은 분도 노동법에 관한 대가이고 학문적 깊이가 있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면 저는 판사생활을 좀 하다 민주노총법률원에 왔는데요. 제가 판사생활 짧게 때 이해 못했던 것 중 하나가 ‘왜 법정에 올 때 조끼를 입고 오는지’였는데요. 노동자들은 보통 조끼를 입고 오잖아요. ‘단결투쟁’ 쓰여 있는. “이 사람들 뭐야, 법정을 뭘로 보고… 아웃” 그러면서 메모를 하는데요.(웃음)

 

그런데 노동자들이 이렇게 입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의 하나거든요. 여기 계신 변호사나 교수님이 법정이나 강의할 때 양복을 입는 것처럼요. 그것 자체를 삐딱하게 보고 ‘왜 저렇게 입었지’하는 시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저는 민주노총법률원 오고 느끼게 되었거든요. 아주 사소한 거지만 이런 것들을 편견 없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법정에 조끼를 입고 오는 거야”라는 편견

 

224a74707d9819212644f74b83e3357c.jpg임지봉  홍성수 교수님 말씀처럼, 과거 대법관 인선은 주로 기수와 서열 중심으로 현직 고위 법관들, 법원장 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에서 뽑았습니다. 오십대 중반 정도에 특정 대학(서울대)을 졸업한 남성이고, 성적이 좋은 즉, 서열이 높은 고위 법관 중에서 판사를 승진시키는 방식으로 임명되어 왔습니다. 배경과 출신이 비슷한 분들이 되다 보니까 오십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 남성이 가지는 보수성을 가지고 판결성향 면에서 동일동색이고 기본적으로 보수성을 가진 판결이 나왔다고 봅니다.

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 사법적 최종판단을 하는 곳임에도 보수 일변도로 갔던 것이고, 국민 각계각층 의사를 대변하는 기능은 전혀 못하고 말았습니다. 대법원이 엘리트 집합소로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국민들과 절연되어 있었던 것이죠. 이런 획일적 구성에 대해 2000년대 넘어서면서 시민단체들이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후보추천 운동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최초 여성 대법관으로 김영란 씨가 임명됐고, 진보적 판결성향을 가진 이홍훈 대법관과 종래 기수와 서열 파괴하여 비교적 젊은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도 나왔지요. 이후 두번째 여성 대법관인 전수안 씨를 포함해 이 다섯분을 ‘독수리 오형제’라고 부릅니다. 기존 대법관 인선 관행을 탈피해서 성별, 연령 등 다양화를 추구한 결과였습니다. 판결성향 또한 굉장히 진보적이고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기존 대법관들과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판결 쏟아냈지요.

 

이러한 독수리 오형제로 대표되는 새로운 대법관들이 실제로 어떤 판결들을 내놓았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동안 판결을 분석해보면 전원합의체 판결이 많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법원에 사건을 접수시키면 보통 4인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판결이 이루어지는데요. 지난 6년간 18만건의 사건이 소부에서 다뤄졌거든요. 이 사건들은 대부분 4인이 합의해서 끝나고, 합의가 안 되는 경우 전원합의체로 넘어가게 됩니다. 전원합의체 재판이 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과거에는 소부사건에서 반대의견이 거의 없었거든요. 이전인 최종영 대법원장 때 63건에서 이용훈 대법원장 때는 95건으로 1.5배 정도 증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부에서도 독수리오형제로 대변되는 대법관들이 반대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전원합의체 판결이 많이 늘어났다, 다른 의견을 가진 대법관이 있기 때문

 

국가보안법이나 노동쟁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권리와 관련한 판결에서 대법관의 이념성향 드러나는데, 여기서도 반대의견이 많이 제시됐다는 것 알 수 있습니다. 독수리 오형제 대법관들이 소부판결에서 주심을 맡은 사건에서 피의자의 방어권이나 표현의 자유, 환경권, 노동권,  국민들의 소비자로서 기본권, 여성・청소년이나 성소수자들을 옹호하는 판결이 많이 나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서기호  판사의 지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서기호 전 판사입니다. 신인수 변호사는 한참 됐죠.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판사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었는데요. 판사들 입장에선 대법관이라고 하면 선망의 대상이 되고, ‘나도 대법관 돼봤으면’하는 희망 처음에는 가집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접게되는데요. 저같은 사람도, 하위 2%도 대법관 구성이 다양화 되면 해볼 수 있겠다.(웃음) 미리 체념하는 게 아니라 희망을 갖게 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고요.

2008년부터 무죄판결이 많이 증가하게 됐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무리한 기소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하급심 판사들이 좀더 자신있게 무죄판결 혹은 소수자 보호 판결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왜냐면 대법관 구성이 다양하지 않으면 기존 판례에서 약간 벗어나는 판결을 했을 때 ‘어차피 대법원 가서 뒤집어질 것’이라고 체념하고 판결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대법관 구성이 다양화되면 기대를 해볼 수 있는 거죠.

미네르바 사건이라던지 피디수첩 사건, 정연주 KBS사장에 대한 배임죄 무죄판결이라던지 이런 과감한 무죄판결들이 하급심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이 대법원 구성 다양화에서도 영향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들이 자발적으로 연구하는 모임이 많이 있습니다. 노동법연구회, 환경법연구회, 사법정보화연구회 같은 것들인데요. 이런 것도 많이 활성화된 것 같습니다. 특히 환경법연구회 같은 경우는 환경법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그런 부분에 전문적 연구해보고 싶어 하는 판사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대법원 구성이 다양해지면 이런 전문성을 갖춘 판사들이 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는 거니까요. 김지형 대법관도 노동법의 대가이신데 이런 연구회들이 활성화된 측면도 있습니다.

  

기존 판례에서 벗어나는 적극적 하급심 나올 수 있는 이유

 

임지봉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동료입니다.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이지요. 세계 어느 나라도 대법관 제청을 대법원장이 하게 한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 헌법이 거의 유일하게 62년 헌법부터 사법부 인사에 대한 독립성, 자치성 준다는 취지에서 했죠. 그런데 62년 헌법에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사실상 대법원장의 제청은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그 후보추천위원회가 대법관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는데 이것이 71년 유신헌법에 와서 ‘대법관추천위원회의 추천’ 이 부분이 싹 빠지고 대법원장 제청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것이 나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대법원장이 자기 입맛에 맞는 자기 후배법관, 키워주고 싶은 엘리트법관들을 대법관으로 제청하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사법부의 관료주의와 맞물려서 더욱 강화시키는, 대법원 내에서도 ‘대법원장 밑의 대법관’ 하는 식의 수직적 상하관계가 되는 출발이 된 거죠.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통제하자, 국민이 대법관 후보제청에 관여하게 하자는 목소리 높았고요. 그러자 대법원이 부랴부랴 만든 게 바로 대법관추천자문위원회였습니다. 그런데 7명은 당연직이었고, 3명은 사회적 인망이 높은 인사로 되어 있습니다만, 결국은 이제까지 보면 대법원장과 가까운 친법원 인사들이란 말이죠. 그런 분들이 대법원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기구가 전혀 되지 못했다고 봅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동료다

 

또 다른 문제는 위원회 운영의 밀행성, 비밀성입니다. 어떤 단체가 어떤 후보를 추천했는지 대법원규칙에서 밝히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걸 밝히고 추천을 하면 추천된 사람은 배제된다, 그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어떤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겠습니까. 민주적 통제가 가해질려면, 국민들이 “어떤 단체에서 누가 추천됐는데, 그 사람 어떤 사람이지?” 알고 싶어하고, “내가 알기에 그 사람 나쁜 사람이야, 그 사람 되면 안돼” 이런 목소리도 담기고 그러려면 이게 공개돼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공개하면 추천에서 배제한다는 규칙이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 기구를 통해서 민주적 통제를 안 받겠다는 거예요. 또 그 자체가 대법원장의 독단적인 대법관 임명권에 대해서 사실은 무늬만 통제장치이고 사실은 들러리 기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제가 알기로는 법원 밖의 단체들만 추천을 받는 게 아니고, 법원 내에서, 결국은 법원행정처를 통해서 대법원장 추천도 받는 거예요. 그리고 이 위원회가 추천한 3배수 안에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가 거의 반드시 들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위원회가 추천한 3배수 후보 중에 한 사람을 다시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제청하게 된다면 이건 그야말로 있으나마나 한 거죠.

 

후보추천위원회의 밀행성은 민주적 통제 안 받겠다는 뜻

 

한상희  이런 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대법관을 선발하는 기준을 공개하고, “우리는 이런이런 기준에 의해서 후보를 정하려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시민사회는 “이런이런 기준에 따라 뽑아달라”는 것을 서로 공청회 등을 통해서 의견을 수렴할 수도 있고요. 또는 후보군을 폭넓게 잡아가지고 이것을 공청회에서 같이 이야기 한다던지요. 그런 절차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대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닫힌 구조 속에서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질문이 들어왔는데요. “대법관이나 법관을 선출하는 나라가 있는가?” 어떻습니까?

 

임지봉  제가 알기론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고요.

 

홍성수  미국의 일부 주가 법관 선거를 하죠.

 

임지봉  네. 하지만 대법관은 대부분 나라에서 대통령과 의회권력 공조에 의해 임명됩니다. 국민들에 의해 대법관이 선출되는 경우는 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나 재밌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2공화국 헌법 1960년 헌법에서, 우리나라가 대법관 선출제를 규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근데 규정만 해놓고 대법관에 대한 선거는 못 해본 상황에서 5・16 군사쿠데타를 맞아서 선거는 이루어지지 못했는데요.

 

한상희  어찌됐건 7월이 되면 독수리 오남매가 대법원에서 나오게 되는 구조인데요. 연임될 수도 있겠지만요. 우리가 진행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앞으로 오남매가 물러나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나쁜 방향으로 갈지, 어떨까요?

 

임지봉  요즘 와서 대법관 제청이 과거 기수나 서열의 중심의 과거의 기준으로 회귀하는 모습이 약간씩 보입니다. 부정적으로 예견할 경우, 남성 고위 엘리트 법관 2~3명 하고, 여성 1~2명 구색 맞추기로 나갈 우려가 있습니다.

 

대법관 다양화를 추구하다가 과거의 경직되고 획일된 기준으로 회귀하면 절대 안 됩니다. 만약 대법관이 판사출신이어야 된다, 대법원이 사건 수가 일년에 3만건이 넘는데 이걸 처리하려면 고위법관 출신이 되어야 일처리가 된다, 라는 말을 합니다. 다양성을 덜 추구하려는 핑계로요. 그렇다면 효율성을 추구하려면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마십시오. 그럼 대신에 독일처럼 대법관을 백명 넘게 임명하십시오. 다양성을 못 받아들이겠으면 지금 대법관 13명이 아니라 대법관을 획기적으로 증원해서 정말 효율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양성에 대한 노력은 결코 후퇴되어서도 포기되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다양성은 사실상 보수・진보의 이념적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이 이념성향이 출신이나 경험에 따라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 때문에 여성을 뽑아라, 재야변호사를 뽑아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근데 재야변호사 중에도 판사 못지않게 보수적인 분들도 있을 수도 있는 거죠. 출신배경이나 직역을 다양하게 뽑되 결과적으로 이념 성향의 다양성이 가장 일차적으로 중요하게 고려할 기준이라 생각합니다.

 

효율성 추구하려거든 대법관을 늘려라

 

홍성수  저는 좀 현실적인 얘기를 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요. 도대체 누굴 뽑으란 거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조건을 건드리지 않는 상태라면, 어쨌든 현행법은 변호사 자격자를 요구하고 있고, 현재 대법원 업무가 과중한 것도 사실입니다.

 

전문성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소수의견을 내더라도 다수의견에 논리상 뒤지지 않는 그런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다수 대법관을 가끔 설득도 해내고 하려면 당연히 법률적 전문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저 같은 경우도 군대 3년을 포함해서 10년을 ‘현장’에서 떨어져서 인권 연구를 했는데, 다시 와서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헛공부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근데 법원에 계속 계신 분들도 아마 연구나 법정 등을 통해서 많은 경험을 했구나 싶지만, 사실 현장경험이란 건 중요한 부분이 있거든요.

 

실제로 변호사 숫자가 굉장히 많이 늘어난 상태고, 변호사 중에도 현장에서 환경사건 경험해봤다거나 인권문제를 직접적으로 변호해 본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과연 그런 분들 중에 업무 전문성이 갖춰진 분들이 그렇게 없을까. 어떻게 보면 찾으려는 의사가 없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많지 않다는 얘기는 어느 정도 수용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안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건은 현재 있는 변호사들 중에서 이런 다양한 경험을 가진 유능한 변호사를 대법관 후보로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는 게 이번에 가능한 대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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