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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감시紙
  • 2002.05.07
  • 2548
사법시험!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를 누리는 시험이다. 합격자수가 1천 명대에 이름에 따라 시험에 걸린 특권이 다소 약화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 위력은 대단하다. 3월 1일에 치러진 제44회 사법시험 1차 시험의 응시자가 처음으로 3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올해는 사법시험법이 제정되고 주관기관이 법무부로 이관되고 출제과목과 형식이 조정되는 등 여러 변화를 겪은 후의 첫 번째 시험이라 수험생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 듯한 사법시험에 대해 유감스럽게도 그 발전을 축하하기보다는 사법시험이란 제도가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는 소신을 다시 피력할 수밖에 없다. 사법시험의 폐해를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법학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법시험이 없어져야 한다는 측면만 말하고자 한다.

사법시험은 현대판 과거시험

먼저 시험과 교육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면 한마디로 시험과 교육은 상극이요,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다. 시험이 교육과정의 이수에 대한 평가로서 교육내용의 일부가 아니라 교육 바깥에서 권위를 누리고 서있을 때에, 특히 그 시험에 결정적 이권마저 결부되어 있다면, 교육이 대응할 길은 단 한가지다. 본래의 정상적인 교육을 포기하고 시험에 대비한 교육을 하는 것뿐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교육자는 교육기관을 외면할 것이고 그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장사꾼들에게 몰려갈 것이다. 따라서 사법시험이라는 제도를 존치 시키는 한 어떠한 법학교육 개선의 노력도 다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시험이 교육을 압살한다는 것은 우리의 전통교육이 잘 말해준다.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유일한 출세길이었고 양반이라는 신분유지의 관건이었던 왕조사회에서 모든 지적활동의 유일무이한 목적은 과거합격이었다. 유학의 나라 조선의 최고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이 잡초가 무성한 절간과 같았다거나 과거합격 후 선비들이 공부와 담을 쌓는 것이 문제라는 등의 옛 기록들은 시험과 교육과의 관계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래서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수많은 개혁가들이 교육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여러 조치를 취했으나 번번이 과거라는 시험제도에 먹혀버린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학생들의 역할모델은 사법시험 합격자뿐

사법시험은 현대판 과거시험에 다름 아니다. 이 과거시험이 버티고 있는 한, 그리고 이 시험이 정규법학교육의 이수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는 한, 정규법과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은 존재할 기반이 없어진다. 거추장스런 학문이니 교육이니 하는 굴레를 벗어 던진 고시촌과 사설학원가의 수험대비강좌가 수험생들에게 더 어필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오늘날 수험준비기관으로 전락한 법과대학 교육의 참상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낯뜨겁다. 매년 사법시험 발표 날만 되면 법과대학들에는 희비쌍곡선이 겹치고 시험합격자 수에 따라 법과대학의 서열이 매겨진다. 대학은 고시지원을 대학차원의 거대한 프로젝트로 삼아 막대한 투자를 하고 동문회에서도 상당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곳이 많다. 학생들은 교수에게 신림동에 들어가겠으니 결석하더라도 학점을 달라는 요구를 거침없이 한다. 합격생이 많지 않은 대학들에서는 합격자들은 학교의 영웅이 되고 영광스런 이름이 적인 플래카드가 교정을 도배한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어느 교수는 너희 중에 시험에 합격하는 친구들을 보고 배아프지 않으려면 열심히 시험을 목표로 공부하라는 훈시를 해댄다.

며칠 전 신입생 수련회에 따라갔는데 신입생들과 교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선배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학생들의 관심과 질문은 오로지 시험에 관한 것뿐이었고 교수들은 머쓱하여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들에게 대학에서 교수와 학문 등은 별로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고 일찍 시험에 붙은 선배만이 역할모델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우리의 중등 공교육을 압살하고 학생들을 학원가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법시험이라는 존재는 법과대학의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교수들의 학자로서의 자존심마저 잃게 한다. 그저 국가시험의 출제자로 불려가서 용돈이나 얻어 쓰는 것에 만족하거나 출제위원이라는 것을 큰 명예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사법시험이 정말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미래의 유능한 법조인력을 선발해내는가도 의문이다. 시험이란 모름지기 단지 '시험적합성' 만을 지닌 자을 선발할 수 있을 뿐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오히려 정형적인 시험대비 훈련을 받은 자들이 유리하다. 대학입시에서 고품질(?)의 과외훈련을 받은 부유층 자제들이 일류대학 입학을 독점하는 것과 마찬가

지로 수험준비에 있어서도 경제력의 요소가 더 커지고 있다.

시험과 교육은 상극이다

이미 이웃 일본도 시험제도로는 세계화의 시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법조인들이 자발적으로 결의하여 2004년도부터 법학전문대학원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미국식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험제도를 이제 교육이 대신한다는 큰 방향에 있어 부인할 수 없는 진보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법시험령을 사법시험법으로 승격시켜 더욱 강고한 시험체제로 몰아가고 있다. 나는 이것의 바탕에는 역시 천 년여를 버텨온 우리의 과거제도에 기인한 시험문화가 깔려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시험이란 하나의 신성한 의식이다. 매년 가을로 접어들면 절마다 자녀의 수능시험성공을 기원하는 백일입재 기도가 시작되고 교회마다 백일작정 기도회가 열리는 것을 보라. 그리고 이 치열한 경쟁시험을 통과한 자들은 마치 지성소를 통과한 제사장들과 같이 거룩해지는 종교적 중생을 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특권과 인정을 독점하는 것이 당연한 제사장계급이 되는 것이다.

시험이란 단지 승복의 기제일 뿐이다. 일정한 게임으로 승자와 패자를 갈라 패자의 입을 다물게 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사회의 한정된 재화와 기회의 배분에 있어 시험제도에 과도히 의존하는 사회일수록 아직 미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험과 교육은 상극이다'라는 명제가 갖는 의미를 숙고하는 지점에서 모든 법학교육개혁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김동훈 |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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