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0-10-01   1803

[15호] '한 사람의 무고한 자'를 위한 단상

TV뉴스시간에 국정감사에 관한 보도를 듣고 보노라면 올해의 국정감사를 비춰주는 것인지 아니면 작년 것의 재방송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을 것처럼 혼란스럽다. 준비 안된 국회의원, 한 건 잡기식 질의, 피감기관의 무성의한 답변, 국민을 대표한다는 자들의 욕설이 난무하는 국감장, 여야간의 불필요한 언쟁으로 질의 한번 제대로 못하고 끝나는 국감, 피감기관을 감싸는 발언 등은 작년에도 그랬고 또 늘 보아왔던 장면 그대로다. 그래서 이런 식이라면 국정감사가 무슨 소용인가라고 낙담하고 개탄하면서 몇 년 후의 선거에서는 분명히 표로 응답하리라고 다짐도 해본다.

그러나 그게 그것인 국정감사지만 불필요하거나 절망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시민단체의 감시의 눈초리에 조금씩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모니터를 통해서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평가된다니 더욱 조심하는 눈치들이다. 평가자료가 공개되고 나중에 유권자에게 국회의원 입후보자에 대한 판단기준의 하나로 제공될 것이라니 변신의 몸부림이 여기 저기 보이는 듯하다. 국민들은 국정감사를 통해서 국정운영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으니 꼭 필요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피감기관은 1년의 국정운영을 정리하고 되새기는 기회로 삼을 수 있고, 지적된 사항들은 내년의 국정운영의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거쳐야 할 연례행사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또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검사나 판사가 고의나 중대한 실수로 사실오인이나 법적용의 오류를 범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벌해야 할까, 처벌규정이 없다면 규정을 만들어야 할까, 설사 처벌규정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까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형사법을 전공하는 나에게 눈에 띄는 국정감사자료가 있었다. 바로 무죄가 선고된 사건 중에 검찰의 잘못에 기인하는 사건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검찰통계자료이다. 이에 의하면 98년 무죄평정건수 1610건 중 253건(15.7%), 99년 2465건 중 454건(18.4%), 2000년 상반기 971건 중 203건(20.9%)이 검찰과오로 인한 것이다.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물론 검찰의 주장처럼 무죄평정건수를 모두 억울한 옥살이나 검찰과오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죄평정건수 중 단 한 건이라도 검찰의 과오로 돌릴 수 있는 수사미진이나 법리오해가 있었다면 그냥 있을 수 있는 실수쯤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검찰이기에 무고한 시민을 피의자로 둔갑시키는 실수는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구속이나 기소를 곧 유죄나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피의자에게는, 특히 구속된 피의자에게는 치명적인 기본권침해이다. 사건은 이미 언론에 공개되어 피의자는 유죄자인 것처럼 보도되고 그로 인해 피의자는 직업도, 가정도 잃게 되었다면 나중에 무죄로 판명된 들 어떻게 원상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1년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무죄로 풀려나면서 이삼천만원의 형사보상금을 손에 쥔들 무슨 소용인가.

물론 밀려드는 범죄 사건의 홍수속에서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모든 사건을 공정하고 실수 없이 처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법조인력을 늘려주면 해소될 문제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피의자의 인권옹호기관으로 자부하는 검찰은 업무가중만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수사권과 공소권을 행사하여야 할 검찰은 그에 걸 맞는 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피의자가 유죄자라는 선입견을 갖고 시작하기보다는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실도 조사한다는 자세로 수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비추어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무분별한 언론보도로 피의자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도록 피의 사실이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 불필요한 인권침해를 방지해야 한다는 법치국가적 요청을 항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만에 하나 구속된 피의자가 무죄확정판결을 받았을 때에는 금전적인 보상이나마 충분할 수 있도록 형사보상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현재의 형사보상액은 피의자의 빼앗긴 자유와 명예, 잃어버린 직장과 가족 및 친구 등을 다시 찾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형사보상은 국가의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미결구금상태에서 소송수행을 하면서 입게 된 고통과 경제적 부담은 보상되지도 않는다. 원판결에 대하여 검사만이 상소하여 그 상소가 기각 또는 취하되어 원판결이 확정된 경우 피고인이 상소심의 과정에서 지출한 소송비용의 보상도 되지 않고 있다. 소송비용의 보상으로라도 피의자의 억울함을 달래주어야 한다.

형사절차의 과제는 국가형벌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적법절차에 의해서 객관적 진실을 발견하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범죄를 발견하고 범인을 잡아 그에게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가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무고한 시민을 범죄의 혐의에서 벗어나게 해주어 정의에 반하여 형벌을 부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국감자료를 보면서 열 사람의 죄지은 자를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자를 유죄로 해서는 안된다(It is better that ten guilty persons escape than that one innocent man schuld suffer)는 법치국가적 명제가 더욱 강조되어야 할 형사절차의 과제임을 인식하길 기대해 본다.

하태훈(고려대 법학과 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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