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2-05-07   2286

[16호] '반인권적 국가범죄'와 공소시효의 정지·배제

사법감시센터는 지난 2월 5일 대한변호사 회관에서 '반인도적 국가범죄의 처벌과 재발방지대책'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글은 토론회에서 발표한 주제글을 요약한 것이다.-<편집자 주>

근래 들어 이근안씨의 민주화운동가들에 대한 고문사건,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한 김옥분씨(수지 김) 피살의 은폐조작사건의 진상 등이 밝혀지고,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으로 중앙정보부에 의한 최종길 교수 고문살해 및 은폐사건 등 각종 의문사사건에 국가권력이 개입하였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공소시효 때문에 이러한 국가의 범죄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법률적 부조리'가 문제가 되면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배제·정지의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먼저 국가권력의 인권유린범죄에 대한 개념정리를 하고, 이러한 범죄의 처벌을 위하여 공소시효를 배제·정지하는 것이 소급효금지의 원칙과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를 정리하도록 한다.

'반인권적 국가범죄' 용어가 바람직

현재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범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반인도적범죄', '반인륜적 범죄', 또는 '반인권범죄' 등이 혼용하여 사용되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개념정리는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국제법적으로는 1946년 '뉘렘버그 헌장' 제6조 제3항, 1993년의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소 규정' 제5조, 1994년의 '르완다 전범재판소 규정' 제3조, 1998년 '국제상설형사재판소를 위한 규정' 제7조 등에서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범죄를 지칭하는 용어로 국제법상의 '반인도적 범죄' 개념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민족 또는 인종분규 속에서 자행되는 대규모적 인권침해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나라에서의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상황과는 그 배경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반인권적 국가범죄'(state crimes against human rights)라는 개념을 새로이 만들어 사용하고자 한다. 즉, 우리는 '반인권적 국가범죄'를 국가기관이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시민을 살해 또는 고문하는 등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시민의 인권을 중대하고 명백하게 침해하거나 이 침해행위를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한 행위로 정의하면서, 이를 '반인도적 범죄' 개념 대신 사용하고자 한다.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정지·배제와 소급효금지의 원칙

공소시효는 '정의'의 이념이 '법적 안정성'의 이념에 양보를 한 결과 생겨난 제도로서, 특별한 예외가 없다면 모든 범죄인에게 차별 없이 적용된다. 그런데 현재 인권·사회단체는 물론 여야 정당의 일각에서 국가권력의 인권유린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특별법 제정은 과거 '5.18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있었던 위헌논의, 즉 공소시효배제의 특별법 제정은 형법불소급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을 다시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학계의 다수설과 판례는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시효를 연장시키거나 공소시효의 진행을 정지시키는 것-'부진정소급효'-은 허용되지만, 이미 시효가 완성된 다음 소급적으로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정지시키는 것-'진정소급효'-은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반인권범죄'의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특별법은 '반인권범죄'에 대하여 '진정소급효'와 '부진정소급효' 양자를 모두 인정하는 경우이므로, 법이론적 논란은 필연적이다.

먼저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경우 '부진정소급효'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통설과 판례를 따를 경우 어렵지 않다고 보인다(이 문제는 공소시효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적 대립과 같이 논해져야 하나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즉, 공소시효는 '소송조건'의 하나이므로 실체형법의 경우와는 달리 소급효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행위 당시 행위자의 모든 판단과 신뢰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안전 및 법적 생활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보호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행위자의 판단과 신뢰만을 보호하는 것이다. 일정 기간의 경과로 당연히 형벌을 면제받을 것이라는 신뢰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보호받아야 하는 절대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 상대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요컨대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고 진행 중인 동안 그 기간을 연장하는 특별법 제정은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사실상 공소시효기간을 사후적으로 연장한 1995년의 '5.18특별법'이 가까운 예이며, 비교법적으로는 1946년 5월 29일 독일 헤센 주가 제정한 '나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1969년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전범과 반인도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1965년 4월 13일의 '공소시효에 관한 특별법', 모살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다시 30년 연장하는 1969년 8월 4일의 제9차 형법개정, 모살죄의 공소시효를 완전히 없애는 1979년 7월 16일 제16차 형법개정 등이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공소시효의 '진정소급효'의 경우는 학설과 판례가 통상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므로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진정소급효'는 '부진정소급효'와는 비할 바도 없이 자신의 안전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능성을 뒤흔드는 것이기에 '진정소급효'를 가지는 공소시효특례법규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원칙도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를 상정한다고 보아야 한다.

헌법상 기본권 중의 기본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이며, 국가와 헌법은 이를 신장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국가기관이 살해와 고문 등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이를 은폐하였다면 이는 헌법정신에 대한 정면부정으로 이는 우리 헌법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의 처벌의 경우도 '정의'가 '법적 안정성'에 대하여 양보할 것을 헌법은 상정하고 있지 않다. 1995년 '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이 '헌정질서파괴범죄' 및 '집단살해죄'의 공소시효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은 이러한 취지에서 이루어졌던 바, 이러한 범죄 이외에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중대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경우도 형사소송법 개정 또는 특별법 제정을 통하여 공소시효를 배제·정지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공소시효의 존재이유와 관련하여 보더라도,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경우 범행 후 장기간이 경과하였으나 증거가 엄존하고 있고 범죄에 대한 사회적 처벌욕구 역시 강하게 존재하고 있으나, 범죄인의 경우는 형벌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기는커녕 권력을 향유하고 있었던 상태이다. 사실 국가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피해자를 보호해주기는커녕 '빨갱이', '간첩', '공안사범' 등의 낙인을 찍으며 이들의 범죄피해주장을 완전히 묵살하였던 반면, 고문기술자 이근안씨에게는 16차례의 표창 외에도 79년 청룡봉사상, 81년 내무부 장관 표창, 82년 9사단장 표창, 86년 옥조근조훈장 등을 수여했다. 그리고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경우 해당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형사사법기관의 진지한 노력이 조직적으로 방기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형사사법기관 자체가 범죄를 저지르고 그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함은 물론, 이후 계속적으로 범죄피해자는 억압하고 범죄인은 고무하는 상황 아래에서 형사사법기관에 의한 반인권 범죄인의 수사와 공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였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진정소급효'의 경우 원칙적으로 '부진정소급효'에 비하여 훨씬 엄격하게 금지되지만, 진정소급입법을 통하여 얻는 공익이 범죄인 개인의 신뢰이익 보다 현저히 우월한 경우에는 한하여 예외적으로 소급효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입장은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서 채택된 선언문 제60조의 연장선에 서 있다: "국가는 고문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책임자를 불처벌로 이끄는 법률을 폐기하고 그러한 침해를 기소해야 하며, 이를 통하여 법치주의는 확고한 기초를 갖게 된다" 비교법적인 예로는 1993년 3월 26일 제정된 '독일통일사회당의 불법행위에 대한 시효정지법'이 있다. 그리고 국제법적으로 1968년 유엔총회는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시효부적용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였고, '유럽의회'도 1974년 동일한 내용을 갖는 협약을 채택한 바 있다. 또한 상술한 1998년 '국제상설형사재판소를 위한 규정' 제29조도 공소시효배제를 명문화하고 있다.

공소시효 예외인정은 헌법이념에 반하지 않는 것

'민주화' 이후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실상이 밝혀졌음에도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이 범죄인들이 처벌되지 않는 현상 앞에서 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깊어갈 수밖에 없다. 형법상 소급효금지의 원칙은 국가의 부당한 형벌권 행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근대 민주주의 형법의 대원칙이지만, 이 원칙은 헌법의 기본이념과 시민의 기본권이 다름 아닌 국가권력에 의해 침해되고 조직적으로 은폐·조작되는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는 자신의 예외를 승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대하고 명백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경우 그 공소시효가 진행 중이거나 만료한 이후에도 사후적 입법을 통하여 공소시효를 배제하거나 또는 범죄종료일 이후 국가권력의 사건은폐·조작으로 공소제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던 기간 동안에는 공소시효를 정지시키는 입법은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본다.

조 국 |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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