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0-10-01   2741

[15호] 삼미특수강 사례을 생각해본다.

몇 달 전 오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참여연대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말에 축하를 해주다가 원고 청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에나 쓰게 된다는 말에 당장 숙제가 떨어진 일이 아니기에 그러마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사실 나라는 인물은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나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노동조합에 와서야 법이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고 그만큼 노동자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활용하여야 한다는 식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서투르나마 <노동과 법>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소박하게 노동자의 입장에서 법의 뒤안에 놓인 노동자의 피와 눈물, 고뇌를 돌이켜 볼 수 있는 부분을 써볼까 한다.

그 첫 번째로 IMF 위기 이후 최초로 쟁점화 된 정리해고 사건이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사건으로서 노동자의 고통과 삶, 그리고 법조인의 자세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삼미특수강 사례를 살펴볼까 한다.

삼미특수강 사건이란?

삼미특수강사건이란 창원에 있던 삼미특수강이 재벌2세의 경영미숙으로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지고 이를 포항제철에서 인수하면서 생긴 문제이다. 포항제철이 삼미특수강을 인수한 것은 기업내의 인적·물적 자원의 일체를 인수하는 것으로, 사실은 '기업(사업 또는 영업) 전체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항제철 회사측은 소위 '자산 인수'라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은 선별적으로 포항제철에 '재입사' 절차를 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 노동조합 활동을 활발하게 하거나 회사측에 '찍혀' 있었던 노동자들은 굴욕적인 재입사 원서를 내고도 채용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무려 5백87명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마무리가 아니라 3년을 넘긴 노동자들의 눈물어린 투쟁의 시작이었다. 당시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평균 근무년수는 15년, 평균 연령은 40대인 가장들로, 가정에서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는 이 사회의 중견층이었다. 이들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만 3년이 넘게 도저히 해고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182명이 십여차례 서울에 상경, 복직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97년 12월17일 중앙노동위원회 복직판정에 이어 지난 해 1월22일 서울 고등법원에서도 포철이 삼미를 매입한 방식은 자산매매가 아니라 명백한 영업양도양수이므로 소송을 낸 182명 전원을 복직하라는 판결이 났다. 하지만 포철은 법원 판결에 따르지 않고 상고했으며, 대법원은 1년 반이 넘도록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해고 이후 열 차례가 넘은 서울 상경투쟁, 44명이 20일에 걸친 아사 단식투쟁, 넉 달에 걸친 서울역 노숙투쟁, 승용차를 이용한 전국대장정, 20만 명의 고용승계 촉구 서명참여, 그리고 집단 장기기증까지…촌에서 서울로 올라와 포철 본사인 포스코, 국회, 여야 당사, 노동부, 포철 김만제 전회장 집, 유상무 현회장 집, 심지어 왜곡보도를 내보낸 언론사 앞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182명 가운데 34명이 구속, 구류, 벌금 등 사법처리의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가출하는 아이들, 이혼, 생계곤란 등으로 결국 복직판결을 받은 한 사람인 이광수씨가 지난 해 6월5일 부당해고에 따른 가정파탄을 비관해 목을 메 자살하기까지 했다.

다시 생각해보는 법조인의 자세

이 사건은 우선 포항제철이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되 어떻게 합법적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방법을 찾으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일부 법률전문가들이 '자산매매'라는 편법을 제시함으로써 발생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여한 법조인들이 이 문제가 무려 1,400일이나 시간을 끌면서 포철의 이미지에 타격을 가하고 장기간 동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오히려 포철이 고용을 승계하고 모든 문제를 순리적으로 처리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비용을 지출 할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은 막대한 기업 이미지 손상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결과적으로 더욱 많은 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 그래서 결국 중앙노동위원회, 고등법원에서까지 패소한 편법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포철은 이미 고등법원에서 패소했고 혹시 대법원에서 승소한다 할지라도 더 이상 민족기업 포철이 아닌 노동자 탄압기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은 이 사건이 고등법원에서 이송된 지 1년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과연 대법원은 이런 장기화로 인해 삼미 노동자들이 부딪치는 이혼, 가정파괴, 그리고 자살이라는 고통과 비극에 대해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이 문제를 비록 정의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노사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양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면 이런 방식으로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법조인이 법률문제를 바라볼 때는 그 뒤에 있는 사회적 관계와 인간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는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법은 인간과 무관한 사회공학이나 테크놀러지가 아니며 사회적 관계를 규율하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 17일 현재, 삼미특수강노동자 20명은 10월 11일 창원을 출발, 9박10일 동안 자전거로 430km를 달려 서울로 달려오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10개 도시를 거치면서 대국민홍보전과 집회를 열 계획이며 마지막날인 10월 20일 ASEM정상회의에 맞추어 과천 정부종합청사와 대법원 앞에서 각각 고용승계 촉구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들이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할 때 "과연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법조인은 누구를 위해서 있는가"의 의미가 되새겨 질 것이다.

김태현 |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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