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4-10-29   1409

<안국동窓>‘헌재 쿠데타’와 한나라당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9명의 재판관 중 단 한 명을 빼고 나머지 8명이 이같은 판결에 동의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희한하다. ‘관습헌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법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관습헌법’이라니? 이 나라가 ‘관습헌법’ 국가였단 말인가? 말이 ‘관습헌법’이지 그것은 그저 ‘관습’이 아닌가? ‘관습’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데, 어떤 관습으로 헌법을 무시한다는 말인가? 헌법재판소가 인용한 조선 때의 관습에 따르자면, 헌법재판소며 국회 자체가 ‘위헌’이 아닌가? 그렇다면 ‘위헌’인 헌법재판소가 내린 ‘위헌’ 판결이 어떻게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이 판결은 당연히 원천적으로 무효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이 판결을 가리켜 ‘헌재 쿠데타’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판결은 독재세력에 의해 숱하게 유린당하기는 했으나 저 1948년의 제헌국회서부터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헌법의 정신을 완전히 유린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을 지키라고 만들어 놓은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지키기는커녕 아예 죽이기로 작정하고 나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유린한 것은 헌법만이 아니다. 헌법은 이 나라의 근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국회에서 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동의를 얻어 제정된다. 지금 우리의 헌법도 국민투표를 통해 제정되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 헌법을 무시했다. 이렇게 해서 헌법재판소는 결국 국민의 주권 자체를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엄연히 존재하는 헌법을 무시하고 존재하지 않는 ‘관습헌법’을 들먹이며 ‘위헌’ 판결을 내린 까닭은 무엇일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거꾸로 읽는다면 ‘신행정수도특별법’은 ‘합헌’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말해서 헌법재판소는 어떻게 해서든지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위헌’으로 몰고 싶었는데, 도무지 ‘위헌’ 판결을 내릴 수가 없자 ‘관습헌법’이라는 꽁수를 찾아낸 것이다.

이번의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존재의의 자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의 주권을 무시하는 곳이 헌법재판소라면 그런 기관이 도대체 왜 있어야 하는가? 그러나 아기의 목욕물을 벌리면서 아기까지 함께 버려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번의 판결은 아무리 좋은 제도일지라도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시냇물을 소가 마시면 젖이 되지만,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 이번의 판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독사들이 헌법재판소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헌법을 유린하고 국민의 주권을 무시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요컨대 국민들에게 ‘관습헌법’이라는 독을 내뿜는 독사들로부터 헌법재판소를 지키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헌법과 주권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번의 판결과 관련해서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한나라당의 문제이다. 잘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16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로 만들었으며, 이 때문에 박근혜 대표는 ‘사죄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악어의 눈물’이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라는 희한한 논리로 헌법을 유린한 것에 대해 가장 먼저, 가장 열렬히 환영하고 나선 집단은 바로 한나라당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과연 한나라당을 제대로 된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더욱 깊어졌다.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신행정수도특별법’은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 만든 법이기 때문이다. 잠시 2003년 말로 돌아가 보자. 한나라당은 치열한 당내 싸움을 벌인 끝에 결국 ‘최틀러’의 판단에 따라 이 법을 통과시키기로 했다. 그 결과 2003년 12월 29일에 여야합의로 이 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당시 국회는 한나라당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결코 국회를 통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 법은 열린우리당이 발의하고 한나라당이 제정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가 만든 법이 ‘위헌’ 판결을 받았는데도 한나라당은 화를 내기는커녕 열렬히 환영하고 나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집단을 제대로 된 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 심각한 문제는 조선시대의 <경국대전>까지 들먹이면서 만들어진 ‘관습헌법’이라는 억지논리가 헌법을 무리하는 논리라는 사실에 대해 한나라당이 우려를 밝히기는커녕 쌍수를 들어 환영한 사실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헌법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저버렸고, 따라서 입법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저버렸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관습헌법’이라는 억지논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개혁 자체를 저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무시무시한 계획이다. 그러나 무섭기에 앞서서 혐오스러운 계획이다.

이번의 판결에서 우리가 참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신행정수도의 건설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기왕의 신행정수도건설계획은 사실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었고, 국가균형발전은 이 계획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추진될 수 있다. 우리가 참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기득권세력이 개혁을 막기 위해 언제라도 헌법을 유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개혁의 과제는 산처럼 쌓여 있고, 개혁을 막는 친일ㆍ독재 기득권세력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들은 결코 반성하지 않으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똑똑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두 눈 똑바로 뜨고 아랫배에 단단히 힘을 줘야 한다.

홍성태(상지대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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