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2-05-07   5622

[16호] 공소시효 제도의 문제점과 개정방향

공소시효가 완성된 주요 사건의 책임자 처벌을 가능하게 하려는 각계의 움직임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1973년 10월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타살의혹과 1987년 1월 수지 김씨 피살사건 및 그 후 이 사건을 둘러싼 국가권력기관의 조직적 은폐조작의 진상이 점차 모습을 드러나면서 언론, 학계, 시민단체는 관여한 국가공무원들에게 공소시효의 혜택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고, 법조인들도 진실규명과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서도 이 같은 법적 한계에 손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인도적 국가범죄 처벌요구 증가

그러나 정치권과 학계는 입법의 추진방향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함승희 의원은 [살인죄등반인륜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별법]을,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공소시효배제조항의 도입과 공소시효정지조항의 신설이 입법의 주요골자이다. 특별법의 제정을 찬성하는 학자들은 "국가형벌권을 벗어난 중대한 국가범죄가 의도적으로 증거조작·은폐되는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시키는 특별법 제정이 국민의 법감정과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인권단체 및 일부 시민단체들은 여론의 확산과 운동의 효율성 때문에 특별법의 제정을 선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학자들은 "특별법 제정은 국가형벌권의 남용, 법적 안정성 침해 등과 같은 헌법에 위배되는 문제점을 갖게 된다"며 맞서고 있다.

공소시효기간의 연장

현행법상 공소시효의 최장기간은 15년이며, 최단기간은 1년이다(형소법 제249조). 그러나 이러한 공소시효의 기간은 사실 너무 짧다. 20대 초반에 살인을 하고 15년 도피 후 30대 중반부터 정상인으로 생활하거나, 심지어 자기의 부친이나 모친을 살해한 후 도피하여 검거되지 아니한 채 15년이 경과한 범인에 대해서도 공소시효의 혜택이 주어진다면, 정의와 법질서 그리고 법평화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부당하다. 또한 국보급 문화재를 도굴하고 3년-7년을 도피하면 형사소추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법감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처럼 현행 공소시효제도는 실체적 진실발견, 피해자 보호, 범죄예방 그리고 법질서방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독일 형법 제78조 제3항의 공소시효기간은 한국의 공소시효기간보다 두 배나 길다. ①법정형이 무기 자유형인 범죄는 30년이고 ②법정형이 10년 이상의 자유형인 범죄는 20년이며 ③법정형이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자유형인 범죄는 10년이며 ④법정형이 1년 이상 5년 미만의 자유형인 범죄는 5년 ⑤기타의 범죄는 3년이다. 현행 공소시효기간은 1973년 1월 25일 제3차 개정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공소시효기간은 전면적으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공소시효배제조항과 공소시효정지조항의 신설

반인륜적·반사회적 범죄행위는 공소시효의 배제조항과 정지조항으로 양분할 수 있을 것이다. ①헌정질서파괴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례법 제3조 공소시효 배제 조항 ②국가권력기관의 구성원에 의한 고문·상해·살인범죄 ③전쟁과 테러에 의한 민간인 학살범죄 ④직계존속살해와 미성년자 유괴살인범죄 ⑤약취·유인 및 감금에 의한 노예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배제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독일 형법은 제78조 제2항에 형법 제220조의 a(인종학살)의 범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또한 현행 형소법에 규정된 공소시효의 정지사유는 ①공소의 제기 ②재정신청 ③소년보호사건의 심리개시 ④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해외에 있는 경우 ⑤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에관한특칙(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이 있다. 그러나 그 범위가 너무 제한되어 있어서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의 정지규정이나 국가권력기관의 구성원에 의한 증거인멸·조작 및 사실발견의 은폐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의 정지규정이 없다.

입법의 선례로 독일의 경우 독일 형법 제78조의 b의 공소시효의 정지규정은 한국의 공소시효의 정지규정보다 그 범위가 넓다. 독일은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 ①형법 제176조 아동 간음·추행, 형법 제177조 강간, 형법 제178조 강제추행, 형법 제179조 항거불능자 간음행위의 경우, 피해자가 만 18세에 달할 때까지의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② 행위자가 연방의회 또는 주입법기관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형사소추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검찰, 경찰관서 또는 사법경찰관이 범죄사실 또는 행위자를 확인한 날, 행위자에 대하여 고발 또는 고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공소시효의 진행은 정지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행위의 경우, 피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규정을 신설해야 할 것이다. 법정대리인의 고소기간과 관련하여 실효성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소추권에 대한 상징적 의미도 있다고 보인다. 이제 미성년자의 인권을 고려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가권력기관의 구성원에 의한 증거조작 및 사실발견의 은폐행위로 공소제기가 불가능하였던 범죄에 대해서는 그 증거조작 및 사실발견의 은폐행위가 발생한 때부터 그 조작·은폐한 사실이 드러난 때까지 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규정도 신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정의에 부합하도록 공소시효제도 개정해야

공소시효제도는 범인필벌의 요구와 법적 안정성의 타협의 산물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독일 형법에 비해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 비중을 두고 있다. 법치국가의 원리는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를 포함한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과 실질적 정의는 항상 동등하게 다룰 수 없다. 반인륜적·반사회적 범죄행위의 경우 공소시효제도에 내재되어 있는 신뢰보호는 실질적 정의를 통해 제한을 받아야 한다.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는 예외 없이 유효한 것이 아니다. 일정 기간의 경과로 당연히 형벌을 면제받을 것이라는 신뢰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보호받아야 하는 절대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종길 교수 사건과 수지 김씨 사건처럼 국가권력기관을 이용한 고문행위, 상해, 살인행위와 국가권력기관의 구성원(공무원이나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자)에 의한 의도적인 증거조작과 사실은폐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의 특혜를 부여할 정당성이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독일 형법 제78조-제78조 c처럼 공소시효의 배제조항과 정지조항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가권력기관의 구성원에 의한 의도적인 고문살인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시키고, 국가권력기관의 구성원에 의한 증거인멸·조작과 사실발견의 은폐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의 진행을 정지시켜 사건의 조작은폐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를 재진행시켜야 한다. 이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특별법 제정보다는 형소법 개정이 바람직

그러나 살인죄등반인륜범죄의공소시효등에관한특별법의 제정은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헌법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현행 공소시효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재검토하고, 특별법의 취지를 현행 형소법에 반영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해결방안이라고 보인다. 이를 통해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뒷받침하고, 언젠가 다가올 통일 이후의 과거사청산 등을 준비하는 것이 타당하다.

최종길 교수 사건과 수지 김씨 사건처럼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 공소시효를 사후에 연장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은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병합설: 진정소급입법). 형소법 개정을 통해 최종길 교수 사건과 수지 김씨 사건의 관련자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의 적법절차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하며 이는 법치국가의 이념에 중대한 훼손이 된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공소시효에 대해 그 기간을 연장, 배제 그리고 정지하는 것은 소급효금지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병합설: 부진정소급입법). 공소시효제도는 실체적-소송법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공소시효는 단지 순수한 소송장애(Verfahrenshindnis)가 될 뿐이다.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경우는 실질적 정의의 요청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공익과 실질적 정의가 개인의 이익과 신뢰보호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법조치는 법치국가의 이념에 부합하고 국가형벌권의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불법과거사의 청산을 위한 기회

공소시효의 문제는 남북통일 이후의 불법과거사의 청산문제와도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 최근 조성되고 있는 소중한 입법기회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놓쳐서는 안 된다. 격변기 또는 통일이후 공소시효제도를 새로이 토론하고, 급하게 준비하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따라서 현행 형사소송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아직도 공소시효가 진행 중인 국가권력기관의 불법행위는 반드시 밝혀야 하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여,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가함으로써 유린된 인권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치국가는 그 존재가치가 없다.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과거사를 청산하고, 파괴된 법질서를 바로 세우며, 21세기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우리들은 서 있다.

하태영 | 경남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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