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09-01   4050

[06호] “무죄추정원칙 확인시켜준 판결이었다” -치과의사 모녀살해사건 담당 김형태 변호사 인터뷰

전망・김형태 변호사 인터뷰

“무죄추정원칙 확인시켜준 판결이었다”

치과의사 모녀살해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선고(96년 2월 24일 선고,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합의부, 재판장 손용근 부장판사)를 받은 이모씨가 지난 6월 26일 항소심(서울고등법원 제4형사부, 재판장 강완구 부장판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사형에서 무죄로 사법부의 판단이 바뀌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2심에서 변론을 맡은 덕수합동법률사무소의 김형태 변호사를 만나 보았다.

이번 무죄판결의 의의가 매우 크다고 생각됩니다. 관심이 높은 만큼 언론에 보도도 많이 되었는데 판결의 중요성이 제대로 반영되었다고 보시는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최근 들어 가장 중요한 인권이 형사절차에 있어서의 피고인의 인권 같습니다. 정치범이나 양심수의 문제가 이전에는 매우 중요했고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개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형사절차에서의 인권이라는 것은 아주 광범위합니다. 1년에도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조사를 받는다고 보면 우리 사회 누구나가 겪는 것이 형사절차인데, 검사가 판단하기에 좀 의심스럽다 하면 처벌을 하는 경우가 많아 억울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양산된다고 봅니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만 유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인데, 여태까지 우리 법원의 관행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가 아니고 그럴 수 있다는 정도만 검사가 증명하면 유죄를 선고했다고 보여집니다. 이번 판결은 사람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에 법원이 심사숙고해서 고민을 한 것인지 모르지만, 사람 목숨과 관련 없는 사기, 폭력, 절도와 같은 일반 사건에서는 좀 의심스럽다는 것을 검사가 밝히면 유죄판결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러한 원칙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판결입니다. 앞으로 이런 판결이 몇 개만 더 나오면 수사기관에서 조심할 수밖에 없고, 정말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기소나 처벌을 할 수 없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언론에서는 마치 “죄는 있어도 증거가 확실한 것이 없으면 풀려난다”는 식으로 보도하였습니다. 그에 대해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몇몇 판사와 검사의 인터뷰 내용도 그렇듯이 형사소송법의 원칙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태도에 대해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형사소송법 제일 앞장에 보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법언이 있습니다. 교과서에나 나온 말로 생각지 말고 정말 범인 같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아닐 가능성이 있으면 풀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범인이 이 사회를 걸어다니라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정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범인이 걸어다니면 물론 안되지요. 그렇지만 증거가 확실하지 않을 때 풀어주라는 것은 범인 아닌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받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입니다. 우리 법조계나 수사기관이 형사소송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고, 이번 판결은 그것을 확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언론의 보도태도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누가 범인이냐, 누가 진범이냐 아니냐를 언론이 캐낼 수는 없습니다. 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언론이 섣불리 나서서 범인이다 아니다, 범인인데 풀려났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면 우선 법원에 대한 모독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 세상에서는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증거를 가지고 재판하는 것이지요. 누가 범인이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면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나 검사, 변호사, 피고인만큼 그 지식을 완전히 취재한 다음에 판단해야 하는데, 제대로 취재도 안하고 그런 식의 보도태도를 취해서는 안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낸 데는 변호인의 법의학 지식이 뒷받침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시간 이전에도 법의학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나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의학 전반에 대해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망시간 추정에 대해서는 좀 알게 되었지요. 깊은 지식도 아니예요. 합리적인 의심, 끝없이 의심해 나가다 보면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쉬운 과정이었습니다.

일본 법의학책도 참고화고 인터넷을 통해 법의학 논문을 활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시반, 시강, 위음식물에 관한 것을 우리 사무실 이석태 변호사가 서울의대에 가서 자료를 찾아왔습니다. 복사를 해서 하나 책으로 만들었고, 그 다음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서울의대 교수들한테 계속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분들은 법의학자들은 아니고, 가령 위음식물 하면 소화기 내과, 이런 식으로 전문가들을 찾았지요.

법의학자라고 하면 각 분야에 있는 최신 의학자료로 계속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데, 18세기, 19세기에 나온 자료만 가지고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참고로 한 법의학서는 193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법의학책이었습니다. 온도가 뜨거울 때는 더빨리 시강이 진행된다는 내용이 책에 나와 있는데도 우리 나라 법의학자들은 그 상관관계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강의 진행속도는 온도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데, 이 사건의 경우 시체가 여름보다 더 뜨거운 42도 정도 되는 물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통 17도, 18도를 기준으로 7~8시간 걸린다는 의견을 내고 그것 때문에 사람이 하나 죽는다니…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이지요.

수사와 감정의 과정은 어떻게 연관되는 것이지요?

감정에는 전제되는 여러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 전제가 틀려버리면 이후 감정도 모두 틀려버리는 것이지요. 그 전제는 법의학자들이 설정하는 것이 아니고 경찰이나 수사기관에서 하는 겁니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아침을 먹었느냐 안먹었느냐 라는 데 대한 경찰의 의견에 따라서 감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감정의 전제가 있고, 그것이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법의학적 결과도 다 틀려버리는 것이지요. 컴퓨터를 무조건 믿는 것처럼 법의학자들의 견해를 모두 믿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인풋(input)이 틀리면 결과도 틀리기 마련이지요.

1심과 2심에서 증거에 대한 판단이 어떻게 달랐습니까?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우유병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우유병 세 개 중에서 하나만 먹었느냐, 두 개를 먹었느냐가 사망시간 추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하나만 먹었으면 저녁에 죽었고 두 개 먹었으면 아침까지 온 것이라고 1심에서도 보았고, 우유병 하나가 우유가 좀 담겨있는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2개의 우유병을 안썼다는 것인데 제가 현장 사진을 잘 보니까 우유병 하나는 젖꼭지가 붙어있고, 다른 하나는 분리되어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끓는 물에 삶아서 마개를 막아 가져온 그대로 있었다는 것인데, 안 썼다면 젖꼭지가 분리되어 있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현장검증할 때 저는 다른 것은 안보고 우유병만 봤습니다. 과연 아래에 우유 찌꺼기가 하얗게 있었습니다. 두 개를 먹은 것이지요. 먹고 대강 물로 씻어서 마개를 분리해 놓아둔 것이었습니다. 수사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 우유병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말라붙어 있으니까 당시에는 더 많았을텐데, 검사가 우유병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 봤으면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유병 두 개는 사용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소하고 1심 재판부가 선고를 했으며,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사과정에서 또다른 문제점은 없었습니까?

굉장히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커튼줄의 경우에도 목에 남은 흔적을 보면 커튼줄 한 가닥으로 감아서 죽였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있는 커튼은 줄이 세 가닥에다가 서로 매듭이 되어 있었어요. 20㎝ 간격으로 매듭이 이어져 있는데 그걸 잘라서 목을 졸랐다고 하면 세 줄이 나오고 매듭이 목에 찍혀야 하는데, 매듭 흔적도 없고 한 줄이었습니다. 그것도 항소심에서 커튼 설치업자를 불러서 질문하다가 밝혀진 것입니다. 검사는 그제서야 깜짝 놀라서 매듭이 왜 있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 커튼줄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수사를 엉터리로 했다는 것이 우유병과 커튼줄 두 개로 밝혀지는 것이지요.

거짓말 탐지기도 그렇습니다. 탐지기를 다루는 사람 자체가 지극히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변호인들한테 ‘당신들이 범인을 풀어주는 것은 업보다’ 이렇게 얘기한 것이 조서에도 쓰여 있습니다. 4시에 죽였다는 것에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하는데 출근 한 것이 7시이니까 3시간 후에 나간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검사결과에는 4시간 후에 나간 것에도 양성반응이 나와있었습니다. 그 사람 말이 자기들이 판에 4시, 5시, 6시, 7시라고 썼기 때문에 수자가 4개이니까 4시간이라고 나온 것이라고 변명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더 이상 질문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이번 판결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리해 주시지요.

요약하자면 이번 판결은 형사소송법상의 대원칙을 확인했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앞으로 잘못된 수사관행에 확실하게 제동이 걸려야 한다고 봅니다.

‘과학적 변론, 팀웍 변론’의 모범으로 소개되는 이번 사건의 변론은 다름 아닌 바로 성실변론이었다. 인터뷰 장소를 떠나 바쁜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충분한 얘기를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판결문과 변론요지서를 꼭 참고해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 다음은 2심 판결문의 결론 중 일부이다.

“…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생기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위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이자 우리 대법원 판결이 일관되어 견지하는 입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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