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5-08-29   1987

[‘경범죄’ 이젠 고치자] ①걸리면 재수없다?

참여연대-경향신문 공동기획

국민 4백22만명을 한꺼번에 사면하는 나라. 대한민국에는 그만큼 죄지은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모호한 법이 자리한다. 그 중 하나가 전국민을 전과자로 몰고 있는 경범죄처벌법이다. 2001년에는 한해 동안 7백72만명이 적발돼 성인 4명 중 1명꼴로 경범죄를 위반했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이 법을 위반하고도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법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 단속도 들쭉날쭉해서 경범죄를 위반하면 “재수없이 걸렸다”고 둘러대고 만다. 정부로서는 대사면으로 생색내기에 앞서, 이처럼 불합리한 법의 정비부터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경향신문과 참여연대는 국민들의 일상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경범죄 처벌법의 문제점과 대안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문제=다음 중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행위는?

①술에 취해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았다. ②여름 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오디오의 음량을 다소 높였다. ③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아파트 쪽문의 전등을 껐다. ④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돼 중국집 및 피자가게 전단을 아파트 단지에 뿌렸다. ⑤지리산 등산 기념으로 산에 있는 돌멩이를 한 개 주워왔다.

 정답은 1~5번, 모두다. 사법 경찰관이 마음만 먹으면 전부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①의 경우 경범죄처벌법 제1조 7항 ‘요부조자(要扶助者) 등 신고불이행’ 혐의로 처벌 받는다. ②는 제1조 26항의 인근소란 등의 혐의가 적용되고, ③처럼 아파트 단지 내 전등을 함부로 껐다가는 제1조 34항의 무단소등 조항에 저촉된다. ④의 경우도 엄격하게 보면 형사처벌의 대상이고(제1조 13항 광고물 무단첨부 등), ⑤도 엄연한 실정법 위법(제1조 20항 자연훼손)이다.

경범죄처벌법에 의하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워도, 술에 취해 횡단보도가 아닌 길을 걸어도, 오물을 방치해도 범죄가 된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했어도 경찰에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 설령 경찰에 적발돼도 ‘마음씨 좋은’ 경찰관을 만나 그냥 넘어가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경범죄로 실제 처벌을 받게 된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일 뿐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원 김모씨(32)는 여자친구와 지난 주말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산책 도중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버리다 현행범으로 경찰에 걸려 벌금 2만원을 냈다. 여자친구 앞에서 사정할 수도 없었다는 그는 “운 나쁘게 걸렸다”며 투덜댔다.

단속 경찰관도 명확한 법 적용 기준이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동대문경찰서 생활지도계 관계자는 “젊은 형사와 노형사의 기준이 다르고, 성격이 깐깐하냐 너그러우냐에 따라서도 다르며, 경범죄 위반자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다”면서 “부모뻘 되는 사람이 한 번만 봐달라고 하면 넘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범죄처벌법이 ‘엿장수 맘대로’ 식의 법이 된 것은 무엇보다 경범죄처벌법 법 조문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제1조 24항의 ‘불안감 조성’ 조항이다.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귀찮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이 조항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이 조항은 요즘 ‘1인 시위’ 등을 처벌하는 데 적용되고 있다.

지난 4월 계약보다 적게 지급된 임금을 달라며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인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 김모씨(39), 서울 종로에서 해골 마스크에 온몸을 붕대로 감은 미라 분장을 하고 레미콘 노조 설립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인 김모씨(38) 등의 경우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이유로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됐다.

경희대 법대 서보학 교수는 “경범죄처벌법이 사회 불안을 야기하지 않은 경미한 위반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고, 법 조항도 모호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국민들을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며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림=위의 ‘경범죄’ 기사 중 2001년 한해 동안 경범죄 위반으로 단속된 7백72만명 가운데 지도장 발부자는 7백1만여명이고, 통고처분 및 즉심 청구자는 71만여명이라고 경찰청 생활지도과에서 알려왔습니다.

경향신문 오창민·심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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