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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감시紙
  • 1995.10.02
  • 1147
시민발언대 l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사법처리를 보면서
다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춰낸다고 불평할 혹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법처리 과정에서 서울지방검찰청이 우성건설측 형틀반장직을 맡았던 김 아무개 씨에 대하여 두번씩이나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서울지방법원은 이를 두번 다 기각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사 검사들이 큰 낭패나 당한 듯 발끈하여 영장기각 판사에게 전화에다 대고 원색적인 언사까지 써서 마구 야단쳤다. 그래서 야단맞은 판사는 [사법권 침해]라면서 울근불근 했다고 한다.

조석으로 바뀌고 손질되는 우리네 법과 제도이니까 혹여 검사가 판사의 업무까지 지휘할 수 있는 법이 간밤에 새로 생겼는지 어쨌는지는 모를 일이다. 판사가 하는 일까지 검사가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하는 말이다.

아무튼 그것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몫이니 그 사람들끼리 잘 알아서 할 일이라고 치자. 그러나 건설업을 평생 생업으로 삼고 살아온 필자로서는 이 사건을 놓고 한가지만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공사현장에 있어서 형틀반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사람의 권한과 책임에 관해서 인데 그가 과연 얼마만큼의 책임 있는 결정권을 쥐고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살펴본다면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형틀반장이란 기술적인 면에서나 재정적인 면에서나 아무런 책임도 권한도 없는 직책이다. 현장소장의 지시에 따라 형틀목공분야의 기능공이나 막인부를 동원하고 그 동원된 인부들이 농땡이를 치지 못하도록 감독, 독려하여 작업시키는 일을 할뿐이다. 더 하는 일이 있다면 인부들의 일당을 셈하여 현장소장에게 보고하고 돈을 타내서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한다. 삼풍백화점 정도의 큰 공사장에서 형틀반장 따위가 감히 자기 책임 하에 기둥의 굵기를 설계보다 가늘게 만들고 더구나 자기 분야도 아닌 철근 가닥까지 빼 먹고, 콘크리트 양을 줄이는 일에 가담하여 책임을 질 만한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설득력이 없는 상식 밖의 일이라고 하겠다. 그가 백화점 주인영감이나 우성건설 사주(社主)의 아들이거나 조카뻘이라도 된다면 또 몰라도.

다시 말하여 형틀반장을 전투시에 군대의 위계(位階)에 비유해 본다면 분대장 격도 못되는 자동화기 사수 정도의 직위일 뿐이다. 그런데 그에게 사단장이나 할 수 있는 부대의 작전 지휘권에 대한 책임을 꼭 물어야 되겠다고 빡빡 우겨댄다면 누가 웃지 않고 배길 재간이 있겠나. 그가 혹여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은 아닌가 부쩍 의심이 든다.

형틀반장은 회사가 부실시공을 해서 돈을 많이 벌든, 정밀시공을 해서 손해를 보든 간에 아무런 이득도 손해도 없는 직책이다. 그저 속칭 [노가다 십장]으로 불리는 그로서는 인부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때에 따라서는 걸직한 욕지거리도 내뱉어 가며 그렇게 일 한 만큼의 임금을 받고 일상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일뿐인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형틀 목공분야에 한해서이다. 지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세무 인건비 처리의 편의를 위하여 임시로 무면허 형틀목공 하도급 업자를 회사 직원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형틀반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욱이 모든 범죄는 목적이 있어야 성립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형틀반장 김 아무개 씨가 '삼풍'공사를 부실시공해서 달성할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조사 기록되어야 할 것이고 이로 인하여 그가 어떠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었는가도 철저히 조사되고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뒷받침해 줄 설득력 있는 충분한 증거도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큰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정작 책임져야 될 자들은 성긴 그물에 미꾸라지 빠져나가듯이 다 빠져나가 버리고 죄 없는 피라미들만이 희생양으로 만들어졌던 경험을 우리는

수도 없이 겪어 왔다.

죄 있는 자가 죄를 받지 않고 죄 없는 자가 죄를 뒤집어쓰게 해서는 절대로 안되겠다. 이는 곧바로 사법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일이 되는 것이며 부실시공을 부추기는 일이 되는 것이고 또다른 삼풍사고의 씨앗을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희생양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죄를 모면한 자는 법을 절대로 무서워하지 않고 다시 같은 범죄를 또 저지를 것이다. 이러한 사법처리 결과를 구경한 다른 자들도 다들 그 요령대로 부실시공을 하고 만일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런 요령대로 처리하려 들 것이 '대형참사'는 또다시 우리를 노릴 것이다.

과거 모든 사건들의 희생양으로 보였던 사람들, 그들의 사법처리 결과를 돌이켜 보기로 하자.

그들은 구속기소 되었다가도 모두가 금방 석방되고 말았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희생양들이란 이름 그대로 희생양일 뿐이지 원래 죄가 없거나 죄가 있다 하더라도 잡아 가두어 둘 정도의 큰 죄를 범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소되어 법원으로 넘겨서 재판을 진행하다가 보면 당연히 무죄판결이 선고되거나 가벼운 처벌밖에는 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석방될 때쯤이면 이미 사건은 세인들의 망각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고 시끌시끌 입방아를 찧던 사람들도 새삼 사건의 책임에 대해 따지기를 귀찮아하며 누구 하나 이들의 죄상에 대해서 시비하는 사람도 없다.

이러한 희생양을 만드는데 있어서 수사기관이 한통속이 된다고 가정해 본다면 희생양이야말로 봐 주고 싶은 자와 빠져나가려는 자의 어느 쪽에도 이쁜 인물이다.

그가 구속되어 구치소에 들어간다 해도 모든 것을 수사 지침대로 순순히 자백(진위는 불문하고)해 주어 수사기관의 비위를 한껏 맞추어 주었으니 [불러뻥](검찰에서 미운 수감자를 골탕먹이기 위해 소환하여 조사도 별로 안하면서 하루 종일 검찰청 건물 안에 있는 반평도 안되는 토끼장 같이 좁은 감방에 넣어 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구치소로 돌려보내어 수감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는 인권유린 행위)도 없을 것이다. 그의 구치소 안에서의 생활도 사용자 측에서 적극적으로 뒤를 봐주고 있으니 충분한 자금지원이 되어 수감자가 누릴 수 있는 최대 특전인 [용털]이나 [범털]이라는 수감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칭호를 받으면서 몇 개월간만 잘 지내다가 석방되어 나오면 회사나 사용자 측에 의해 영웅대접을 받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희생양이란 당사자는 물론이고 필요로 하는 자나 만드는 자나 모두를 만족시켜 준다.

이번 삼풍참사의 사법처리만은 이따위 희생양 잔치를 벌여서는 절대로 안되겠다. 그런데 시공회사의 말단직원에 불과한 인물이고, 법원에서도 구속요건이 안된다고 판단하여 구속영장을 두번씩이나 기각한 형틀반장 한 사람의 구속영장을 기어이 받아 내어 보려고 검찰이 그렇게 염치불구하고 열을 올릴 필요성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가 구속되지 않으면 모든 수사체계에 구멍이라도 난단 말인가. 아니면 그가 삼풍사건의 모든 증거를 인멸해 버릴 수 있는 중요한 비밀문건이라도 숨기고 있단 말인가. 그게 아닌데도 그를 꼭 처벌하고 싶다면 불구속으로 기소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법'을 직업으로 하고 사는 검사들이 이번 '삼풍참사'에 있어서 피라미 급으로 보이는 시공회사의 형틀반장 한사람의 구속영장을 받아 내기 위하여 '법'을 무시하고 체면도 염치도 덮어 버리고 영장담당 판사에게 불학무식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자행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혹여 이것이 희생양 만들기 작업은 아닌지 묻고 싶다.

필자의 이런 의심이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잠재된 피해의식 때문일 뿐이기를 간절히 빌 따름이다.



유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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