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9-16   2729

[판결비평] 법도, 제도도, 노동조합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택배서비스 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점점 늘어가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추세에 맞춰, 국제노동기구(ILO)도 간접․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촉구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이러한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을 노동자로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했던 법원의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혔습니다.  노동계에서는 과거로 후퇴했다고 비판받고 있는 이번 판결에 대해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 김남희 변호사의 비평문을 소개합니다.

 

법도, 제도도, 노동조합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부인한 서울고등법원 판결 유감

서울고등법원 제 6행정부 2014. 8. 20.자 2012누37274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판결

판사 윤성근(재판장), 노경필, 손철우

 

김남희 팀장

 

 

           

                        김남희 /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 (변호사)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기사, 레미콘차량기사… 사실상 노동자처럼 특정사업자에게 종속되어 일을 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특수고용노동자’ 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고 부른다. 최근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신고해 화제가 된 골프장 캐디도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의 한 유형이다. 문제는 어떠한 법도 제도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해고, 산업재해, 실업 등 각종 위험으로부터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습지교사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부인한 서울고등법원 판결(2012누37274, 이하 “이 사건 판결”)은 더 나아가 노동조합도 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 사건 판결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재능교육은 학습지교사인 원고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년 단위로 반복하여 체결하던 위탁사업계약의 해지를 통보하였다. 이에 원고들은 위 계약해지가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이자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하였으나 기각당하였고, 이에 법원에 소를 제기한 사건이다. 

 

 

이 사건 1심 판결은 학습지교사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보고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법은 ‘노무공급자들 사이의 단결권 등을 보장해 줄 필요성이 있는가’의 관점에서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근로기준법과 입법목적이 다르다는 점, 노조법상 근로자의 정의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보다 넓은 개념으로 특정기업에 대한 귀속을 전제로 하지 아니하고 고용 이외의 계약 유형에 의한 노무공급자까지도 포섭할 수 있다고 보이는 점, 그동안 회사에서 노동조합과 수회에 걸쳐 단체협약을 체결하기까지 한 점 등을 근거로 원고들의 노조법상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하였다.

러나 2심인 이 사건 판결에서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학습지교사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닐 뿐 아니라 노조법상 근로자라고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판결은 1심 판결을 뒤집은 데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형식논리에 얽매여 구체적 타당성도 결여한 판결로 대단히 유감스럽다. 우선 이 사건 판결은, 학습지교사들이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닌 이유로 학습지교사들은 업무 수행과정에서 최소한의 지시만 받았을 뿐 상당한 지휘, 감독을 받지 않았다는 점, 학습지교사들이 재능교육으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이행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것으로 임금이 아니라는 점, 겸직 제한이 없고 수수료가 유일한 수입원이라고 단정할 충분한 증거가 없는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재능교육에 전속되어 있지 않다고 보고 따라서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노조법상 근로자란 특정 사업자에 전속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최근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다78804 판결)는 노조법상 근로자성 판단 기준은 인적 종속성 보다는 업무의 종속성 및 독립사업자성(경제적 종속성)을 평가요소로 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때 말하는 경제적 종속성이란 “취업자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사업주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로부터 얻는 보수가 그의 생존의 근거를 이룬다는 점”을 말한다.

 

그런데 이 사건 판결이 학습지교사들의 종속성을 부정한 근거로 제시한 회사의 최소한의 지시나 이행실적에 따른 수수료 등은 회사가 근로관계를 부정하기 위하여 선택한 것이지 근로자들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 보기 어려우며, 주 3회나 존재하는 사무실 조회나 능력향상과정에 대해서는 참석강제가 아니라고 하며 다른 증거 없이 겸직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 사건 판결은 근로관계를 부정하기 위한 회사 측의 꼼수는 모두 받아들여서 이를 근거로 학습지교사들이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개인사업자와 마찬가지라고 판단하고 노동조합의 존재이유를 부정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건 판결이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조법과 같은 노동관계법이 존재하는 이유조차 간과한 판결이라는 점이다. 근대법의 근간을 이루는 계약자유의 원칙은 노동법의 등장으로 크게 수정을 받게 되는데, 사용자와 노동자 관계를 계약법과 달리 특수하게 규율하고 노동자들에게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과 같은 노동3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실질적인 평등관계가 성립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대부분 고용이 불안정하고 노동조건도 열악하며 사회보험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자발적으로 근로자이기를 포기하고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지위를 선택했을까? 사실상 20년 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이유는 노동관계법을 회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선택이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선택은 아니다.

 

 

이러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비자발성을 고려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보험모집인, 학습지교사, 골프장캐디, 택배기사 등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하여 산재보험의 대상자로 포함시키고 있으며(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25조),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및 고용보험 확대는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였다.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는 시대적 요청이자 과제인데도, 이 사건 판결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누구도 대신하여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판결은 말하고 있다. 법도 제도도 노동조합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가 혼자 힘으로 닥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당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을 고발한 캐디가 골프장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의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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