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우리는 어떤 대법원장을 기대하는가 (8/23 참여연대)

우리는 어떤 대법원장을 기대하는가

양승태 대법원 평가와 차기 대법원 과제 모색 좌담회

2017. 8. 23(수) 10:00 참여연대 아름드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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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가 오는 9월 24일 만료될 예정이며, 새로운 대법원장 후보자도 지명되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대법원장의 권한은 ‘제왕적’이라 불리며, 대법원 판결이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과연 어떤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어야 하는지, 대법원장이 추진해야 할 법원개혁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과 공론화가 풍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이에 참여연대와 한겨레21은 다양한 시각의 패널들과 양승태 대법원 평가와 차기 대법원 과제를 모색하는 좌담회 “우리는 어떤 대법원장을 기대하는가”를 개최했습니다.

사회 임지봉 서강대 교수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패널 오지원 변호사 (전 판사), 윤나리 변호사 (전 판사), 한상희 건국대 교수, 황예랑 기자

공동주최 한겨레21 참여연대

우리는 어떤 대법원장을 기대하는가 웹자보

* 다음은 공동주최측 한겨레21에 게재된 좌담회 관련 기사입니다. (바로가기)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양승태 코트) 앞에 입버릇처럼 붙는 수식어가 있다. ‘제왕’. 사법부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법관을 종속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헌법, 법률 그리고 자신의 양심뿐이다.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의 최고법은 어떤 권위와 권력에도 법관의 독립을 해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제왕적’이란 수식어는 헌법이 부여한 법관의 소명이 뿌리부터 흔들렸다는 평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참여연대와 <한겨레21>이 8월23일 공동 주최한 좌담회 ‘우리는 어떤 대법원장을 기대하는가’에 나온 두 전직 판사 역시 ‘양승태 코트’를 제왕적이라고 칭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판사 출신인 오지원·윤나리 변호사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황예랑 <한겨레21> 기자가 패널로 참여했다. _편집자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 2층에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오지원 변호사는 2005년~2011년 6월, 윤나리 변호사는 2005년~2017년 2월까지 법원에서 일한 ‘전직 판사’다. 두 변호사는 ‘양승태 코트’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임지봉 교수의 요청에 “책임지지 않는 제왕적 대법원장, 이제는 안녕”(오지원), “사법부 마지막 제왕”(윤나리)이라고 말했다.

‘코트넷’, 양승태 코트의 단면

구체적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현재 법원 내부의 분위기는 어떨까. 윤 변호사는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의 분위기로 양승태 코트의 단면을 설명했다. 때는 2014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이 나왔다. 당시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이 판결을 ‘지록위마’라고 비판하는 글을 코트넷에 올렸다. 윤 변호사는 “김동진 부장이 글을 올린 지 하루, 이틀 만에 코트넷에서 직권 삭제됐다. 그리고 김 부장판사는 (법관 품위 손상이라는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그 일 이후 코트넷에 1~2년 이상 일상적 잡담이 올라올 뿐 정책 비판 같은 의미 있는 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희귀하지 않다는 점이다. 2015년 4월 서울중앙지법 박노수 판사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는 글을 코트넷에 올렸다. 당시 박 대법관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 담당 검사로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박 판사는 코트넷에 “1987년 6월항쟁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자신이 공개글을 적는 이유를 밝혔다.

윤 변호사는 “(박 판사가) 워낙 확실하게 의견을 표명하는 글을 남겨 직접 뭐라고 말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후배 판사들이 아무도 지지한다는 댓글을 못 썼다. 그러다가 한 판사가 지지글을 올렸다. 그 글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핍박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 글을 쓴 판사가 스스로 글을 지웠다”고 말했다. 물론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삭제’가 아니었다. “알아보니 그 글을 쓴 뒤에 (해당 판사가) 바로 법원장 호출을 받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위협이 있었다면 글을 안 지웠을 거예요. 그런데 ‘같은 법원에 있는 다른 판사들이 부담스러움을 느낀다’는 말로 설득했다고 들었습니다.” 윤 변호사는 “한 고위 법관이 어떤 판사는 인품도 좋고 실력도 좋은데 (코트넷에) 댓글만 안 쓰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걸 직접 들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제왕은 홀로 제왕이 될 수 없다

오 변호사는 양승태 코트가 시작되기 전에 법원을 나왔다. 밖에서 바라본 양승태 코트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법관인사제도 개혁 모색’ 학술대회를 연기 및 축소하라고 압력을 넣은 사실이다. 오 변호사는 “(대법원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축소를 지시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것이 양승태 코트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료 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게시판에 댓글만 달아도 전화가 온다고 해요. 그런 분위기에서 (학술대회 축소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에 문제제기를 하려는 집단(국제인권법연구회)을 상대로 이뤄진 일입니다. 제왕적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을 제왕적 대법원장의 힘으로 막은 셈이지요. 하지만 이 문제에 지금까지 대법원이 책임지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외부 학계의 시선은 더 싸늘하다. 양승태 코트를 ‘반동적 쿠데타’로 정의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한상희 교수는 “대법원은 법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경제적 약자들의 권익을 내팽개치고 어렵게 이뤄낸 과거사 청산 문제까지 되돌리는 판단을 해왔다”고 말했다. “가장 적나라한 반동 체제와 반동 정치의 중심부에서 양승태 코트가 나왔습니다. 박근혜와 이명박이 법질서를 외치면서 (시민들을 억압하는) 통치 방법을 행사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양승태 코트입니다.” 한 교수가 ‘반동’의 예로 든 것은 2006년 해고된 고속철도 KTX 승무원들에 대해 코레일 직원으로 볼 수 없고 불법파견이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도 없어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사건, 박정희 대통령이 내린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지만 피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이나 국가 배상의 의무는 없다는 판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반대한다며 2009년 진행한 시국선언을 ‘공무 외 집단 행위’로 보고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인정한 판결 등이었다.

양승태 코트의 문제는 물론 양 대법원장의 탓만은 아니다. 제왕은 홀로 제왕이 될 수 없다. 제왕의 뜻을 파악해 이를 집행하는 통로가 필요하다. 대법원장이라고 해도 판결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넓은 우회로가 있다. 승진·전보 등 인사와 예산을 쥐락펴락하는 사법 행정이다. 매년 2월 있는 법관 정기인사에서 대법원장의 의향이 드러난다. 그 키를 쥔 것은 법원행정처다.

오 변호사는 “법원은 서열문화가 심한 조직이다. 서열대로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게 사법부랑 군대뿐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코트넷 전산망에 전국 법원의 순서가 뜨고 판사들은 그 순서를 서열로 받아들인다. 오 변호사는 “법원 인사가 나오면 판사들은 서열순으로 누가 어디에 갔는지 찾아본다. 특히 자기가 인사 대상이 아니라도 대법원 행정처에 누가 갔는지 찾아보게 돼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행정처는 판사 사회에서 요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실력이 출중한 이들이 모이는 것도 사실이다.

“대법원 판결 보면 숨 막힐 때 많다”

뛰어난 판사들이 모인 행정처는 판결 대신 사법 행정 업무를 한다. 법관으로 ‘독립’ 의무를 질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참모’로서 대법원장의 영향력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리고 다시 일선으로 돌아가 판결한다. 윤 변호사는 “행정처에 있는 판사들은 이후 각 법원의 중요 보직으로 간다. 서울중앙지법의 형사합의부나 영장전담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판단을 하는 중요 보직으로 발령이 나 판결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수한 판사들이 앞다퉈 행정처에서 대법원장의 강력한 영향 아래 근무하다 다시 주요 보직으로 흩어지는 구조다. 그 때문에 사회적·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을 하는 주요 재판부의 구성원들은 대법원장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판사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임지봉 교수도 같은 지적을 했다. 임 교수는 “법원은 사건이 너무 많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재판 잘하는 판사 수십 명을 행정처에 데려다놓고 행정을 시킨다. 그리고 재판에서 멀어져 있던 판사를 복귀시킬 때는 승진시킨다. 대법원도 사건이 폭주한다면서 대법관인 대법원장이랑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을 안 한다. 사건이 많으면 그들도 당연히 재판해야 하지 않나.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법원의 태도를 꼬집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하면서 사법 개혁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좌담회 참석자들이 말하는 개혁의 방향은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윤 변호사는 “임명권자한테 잘 보이는 판사가 아니라 재판을 충실히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판사가 상급 법원에 가는 구조가 됐으면 좋겠다. 사법부 독립이 아니라 판사 독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대법원 판결이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판결이 진보적이라는 말은 이상한 이야기다. 다만 다양해야 한다. 13 대 0의 결과가 나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의미가 없다. (소수의견이 나오는 등) 각양각색의 의견이 (판결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 변호사가 강조한 것도 결국 인사였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사 제도예요. 김명수 후보자는 춘천지법에서 (민형사 재판부 배치 등) 사무 분담을 하는데 판사 회의를 열어 의견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대법원장이 되면 인사 권한을 내려놓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이 시민들에게 더 열리고 당사자들의 말을 더 경청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상희 교수는 “법관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재판 과정의 정보를 국민이 쉽게 얻고 판단할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국민참여재판의 확대나 법원 운영에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 역시 “대법원 판결을 보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실제 삶과 괴리돼 있어서다. 기록만으로 사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재판 당사자들의 말을 직접 듣는 시간을 많이 가져서 기록 재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법관 독립을 지킨 더 나은 일화를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1887~1964)에겐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인 서민호 의원이 자신을 죽이려던 군인을 사살했다가 재판에 넘겨졌으나 1심에서 정당방위로 무죄가 나왔다. 이 대통령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김병로 선생은 맞받아쳤다. “판사가 내린 판결은 대법원장인 나도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무죄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면 되지 않는가.”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사법부의 독립이 아닌 법관의 독립이 대통령과 맞서는 근거였다.

김병로 선생이 1957년 12월 대법원장에서 물러나고 꼬박 60년이 흘렀다. 그 뒤로 14명의 대법원장이 새로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권력에 맞서 법관의 독립을 지킨 더 나은 일화를 찾지 못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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