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법관 인사 관행의 모순

대법관 인사 관행의 모순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C%9E%84%EC%A7%80%EB%B4%89_01.jpg

세계 각국은 예외 없이 최고사법기관으로 대법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대법원의 역할과 관련해 크게 두 유형이 존재한다. 첫째,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의 최종적 교정기관으로 기능하면서 다수 사건의 재판에 개입해 분쟁 해결을 통한 소송 당사자의 권리구제에 치중하는 ‘권리구제형 대법원’이 있다. 그리고 둘째, 대법원이 사회의 규범적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소수의 중요한 사건에 치중하면서 판결을 통해 일종의 정책형성을 행하는 ‘정책법원형 대법원’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중에서 선진 외국의 대법원들은 대부분 ‘정책법원형 대법원’을 지향한다. 다수 사건의 분쟁 해결을 통한 소송 당사자의 권리 구제는 하급심 법원에서 끝내고, 최고법원인 대법원은 중요한 사건들의 판결에 집중하고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새로운 가치기준을 제시해 사회의 발전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책법원으로서 역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법원형 대법원’을 운영하기 위해선 대법관 구성에서 ‘출신 직역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러 다양한 직역에서의 경험과 지식이 국가 전체를 위한 정책형성형 재판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선진 외국들은 대법관 구성에서 ‘다양한 출신 직역’을 예외 없이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판사 출신 이외에 법학교수나 법무부 관료 등 행정가, 주지사나 심지어 대통령 출신의 정치인들도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으로 곧잘 임명된다. 워렌 대법원장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이었고 태프트 대법관은 전직 대통령이었다. 우리와 사법제도가 많이 닮아 있는 이웃 일본에서도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15명의 대법관들 중 판사 출신은 40%인 6명에 불과하고 60%인 나머지 9명은 비법관 출신의 행정관료나 법학교수, 외교관 등에서 충원된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대법원이 더 이상 민·형사상의 법 이론 지식이나 법 실무 경험에 입각해 하급심 판결에 대해 좁은 의미의 ‘법률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 아니다. 법률적 판단을 넘어서서 다양한 경험에 기반해 균형된 감각을 갖추게 된 대법관들이 판결을 통해 일종의 정책결정을 행하는 명실상부한 ‘최고법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정책법원형 대법원’을 꿈꾸고 심지어 헌법재판소를 대법원 내의 ‘헌법부’로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면서도, 실제 대법관 구성에 있어서는 ‘다양성’에 역행하는 인사를 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평생을 판사로 일해 온 50대 중·후반 남성인 법원장급 현직 판사를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하는 관행이 거의 반복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획일화된 대법관 구성 하에서 대법원이 다양한 시각과 가치관에 입각한 대법관들 간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정책형성적 판결을 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필자는 대법관들 사이에서 평의과정을 통해 반대의견이 활발히 개진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은 적이 없다.

 

지난 25일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 대법관으로 조희대 대구지방법원장을 임명 제청한 것도 이러한 인사 관행에서 별로 벗어나 있지 않다. 물론 필자가 조희대 대법관 후보 개인의 대법관 적격 여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국회의 인사청문회 과정을 통해 철저히 검증될 것이다. 문제는 주로 현직 고위 남성판사들 중에서만 대법관을 임명 제청하는 답답한 인사 관행이다. 대법원측에서는 대법원이 일 년에 3만 6천여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판업무의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대법관 인선에서 ‘다양성’보다는 법관으로서의 ‘전문성’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는 모양이다. 정말 그런 이유로 다양성보다 전문성을 더 고려해야 한다면, 대법원은 이제 정책법원의 기능은 단념하고 국민들 앞에 ‘권리구제형 대법원’이 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일 년에 3만 6천여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권리구제형 대법원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국회 일각의 대법관 증원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책법원형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은 헌법재판소가 담당하면 될 것이고,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는 헌법재판관 인선에서 이루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2014년 1월 29일 ‘내일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