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6-08-02   2608

“명의신탁, 법원이 부추겨서야”

참여연대,시민의신문 공동기획-법정 밖에서 본 판결

명의신탁과 부동산실명제에 관한 획기적인 판결

지난 6월 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하급심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2005가단2182소유권이전등기 판결(판사 이종광)에서 부동산실명제법을 위반해 채권변재 회피, 납세 회피 등을 목적으로 자산을 명의신탁해 두었던 원고가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내린 것. 원고는 ‘명의신탁은 법위반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명의 환원을 주장했지만 판결결과는 ‘뜻밖에도’ 원고의 청구를 불법원인급여로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이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았고 부동산실명제 시행 이후에도 끊이지 않던 불법적인 명의신탁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판결을 높이 사는 법조인들조차 항소심에서 이번 판결이 뒤집힐 것으로 예상한다. 대법원 판결을 신성불가침인가. 명의신탁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소유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피고를 옹호하는 부작용을 낳지는 않을까.

<시민의신문>과 참여연대는 ‘시민포럼-법정 밖에서 본 판결’ 여덟 번째 주제로 명의신탁을 불법원인급여로 인정한 하급심 판결을 정했다. <편집자>

○ 일시 : 2006년 7월 21일(금) 오후3시

○ 장소 : 참여연대 2층 강당

○ 사회자 : 한상희(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 참석자 :

최영태(회계사,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

최영승(법학박사, 경원대 법대 겸임교수)

이인철(변호사, 좋은날합동법률사무소)

△한상희: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사회에서 재산을 누구에게 어떻게 귀속시키는가는 사회의 근간이 되는 문제다. 어떤 이유인지 우리 사회에선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있다. 금융실명제도 그렇고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부동산실명제법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의 재산을 다른 이의 명의로 포장하는 명의신탁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판결은 아주 특이하다. 판결비평에서 보기 드물게 판결 내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 먼저 이번 판결의 배경을 알아보자. 명의신탁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일까.

△이인철: 한마디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것이다. 부동산에는 등기제도가 있는데 등기 명의와 소유자가 다른 것을 명의신탁이라 한다.

△최영승: 신탁과 명의신탁을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명의신탁은 일본이 1912년 조선부동산등기령으로 조선에 등기제도를 도입하면서 생겼다. 당시 문중은 등기능력이 없었다. 문중 구성원을 내세워 등기하는 편법을 썼다. 나중에 문중도 등기할 수 있는 길이 생겼음에도 과거 관행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한상희: 명의대여로 표현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왜 굳이 그런 방식을 쓰는 것일까.

△최영승: 시작은 미비한 법규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경제개발을 계기로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명의대여는 법을 피해 탈세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부동산투기를 위해 자기 재산을 남의 재산 속에 숨겨 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체로 세금, 강제집행, 채권변제를 피하려는 게 명의신탁을 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친구나 부인 명의로 재산을 옮겨 놓더라.

△최영태: 회사를 만들 때 얼굴마담으로 삼을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업을 하다 보면 제일 중요한 게 자금회전이다. 대표이사나 최대주주가 연대보증을 선다. 명의신탁이 예금에서는 차명계좌로 이어진다. 내 친구 중에는 이사로 취임하면서 자기 재산을 주위에 다 돌려놓은 경우도 있었다. 자기 책임 면하기 위해서다. 사회 각 부분에 그런 관행이 퍼져 있다.

△최영승: 명의신탁은 어떤 경우든 악용될 소지가 있다. 국회는 실체적권리관계를 분명하기 하기 위해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을 1990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제 구실을 못했다. 대법원이 명의신탁 자체는 민사 차원에서 유효하다고 판단해 재산을 명의신탁한 사람이 그 재산을 환원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명의신탁 금지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정부는 형사처벌 뿐 아니라 민사상 무효임을 명시한 부동산실명제법을 1995년 제안했고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명의신탁이 무효라는 점에서 ‘명의신탁이 무효이므로 돌려달라’고 청구할 경우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지금까지 대법원은 이런 청구를 인정해줬다. 결국 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해 만든 부동산실명제법도 유명무실해져 버린 것이다.  (사진 : ◀ (위로부터) 한상희 소장, 최영승 법학박사, 이인철 변호사 , 최영태 회계사)

△이인철: 이번 사건 피고가 원고의 삼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원고와 그의 변호인은 자신이 패소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법원 판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은 성문법주의를 채택한 나라다.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마치 판례법주의를 택한 미국처럼 판례가 법 구실을 한다.(웃음)

△한: 이 사건은 조카가 삼촌을 믿고 재산을 맡겼다가 자기 재산을 빼앗기면서 벌어졌다. 피고인 삼촌의 손을 들어준 이번 판결이 사회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영승: 사유재산권은 물론 헌법상 권리다. 하지만 부동산실명제법의 입법취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법적으로 도박장에서 빌려준 돈은 돌려받을 수 없다. 불법원인에 기인한 거래라고 보면 그 수탁자가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명의신탁을 금지한 것은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한 목적도 크다. 명의신탁은 분명 불법이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는 강제집행을 면하기 위해서 명의신탁을 한거다. 판사도 밝혔듯이 빚을 안 갚으려고 불법을 저질렀다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자업자득이다.

△한: 1심 판결의 취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판결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명의신탁과 관련한 사회적인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

명의신탁이 사회 부조리 부른다

△이: 부동산실명제법이 잇는 걸 국민들에게 홍보를 해야 한다. 법규정이 대단히 엄격하다. 실소유자로 명의변경하지 않으면 과징금이 엄청나다. 형사처벌도 받아야한다. 일단 있는 법부터 활용해야 한다.

△최영승: 대법원이 법에 따라 판결만 똑바로 하면 옥상옥 법을 또 안 만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 대법원을 생각하니 좀 답답하다. 대법원은 왜 명의신탁을 털어버리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 걸까. 법리상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 대법원은 명의신탁의 불법요인을 상당히 좁게 해석한다. 너무 넓게 해석하면 신탁자와 수탁자 가운데 수탁자만 너무 배려하는 게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최영태: 대법원은 명백히 불법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명의신탁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산가들이 저지르는 불법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것을 뜻한다. 명의신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한국 대법원이 얼마나 보수적인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영승: 통계를 보니 2004년 강제집행 면탈이 5036명이었는데 296명만 기소당하고 나머지는 전부 불기소였다. 대법원은 이런 문제에 대해 더 엄격하게 판결해야 한다.

강국진 시민의신문 기자, 사진 양계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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