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4-09-06   1126

<안국동窓> 셰익스피어와 국가보안법

헌법 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대부분 합헌 판결을 내렸다. 또 며칠전에는 대법원에서 판결문을 통해 이례적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 그 판결문을 재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스스로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조치에는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국가 안보에는 한치의 허술함이나 안이한 판단을 허용할 수 없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자유까지 허용해 스스로를 붕괴시키고 자유와 인권을 모두 잃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므로’ ‘체제수호를 위하여 허용과 관용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에도 법률에 대한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 중 두 가지 장면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여기서 보는 <장면 1>은 폭압에 들고 일어난 일반인들의 이야기이다.

디  크 :  우리가 우선해야할 일은 모든 법률가를 죽이는 일이오.

케이드: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이오. 죄없는 양가죽을 만들어 그 위에 무엇을 휘

           갈겨 놓지 않소, 그리곤 그 휘갈긴 것이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너

           무 심한 것이 아닌가요?

(셰익스피어 헨리 6세』제2부 4막 2장)

만일 법률이 이런 것이라면, 또 그 법률로 배를 채우는 자들이 법률가들이라면 법률에 한이 맺힌 무지랭이들은 우선 법률가들을 모두 죽이고 싶을 것이다. 일단 법률 자체는 일상생활에서 동떨어진 먼곳에 있고 그 법률로 자신들한테 피해를 주는 자들이 법률가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을 보자. 헨리 5세라는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사극 중 근대적인 군주의 모습을 세밀하고,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헨리5세: 소위 살리크 법전이 프랑스 왕권에 대한 짐의 주장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인지…… 밝혀주기 바라오.

켄터베리 대주교: ……‘살리크국에서는 여자는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

            ……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살리크 법전을 높이 내세워 국왕폐하

            의 여계의 의한 왕위 계승권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헨리5세: 짐은 정당한 권리로서 양심의 가책없이 이 요구를 할 수 있겠소?

켄터베리 대주교:……폐하의 정당한 권리를 위하여 떨쳐 일어서서……

(셰익스피어 『헨리 5세』 1막 2장)

헨리 5세의 아버지 헨리 4세는 무력으로 선왕 리챠드 2세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 후 정통성에 시비가 끊이지 않아, 오랫동안 내전을 겪었다. 아들 헨리 5세는 상대적으로는 정통성에 문제가 적었지만, 그래도 내부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프랑스 침공을 결정한다. 이 때 침공의 가장 큰 근거가 되는 것이 자신의 왕위 계승권인데, 이것이 법률적으로 타당한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대답을 하는 켄터베리 대주교 역시, 국왕의 개혁적인 정책이 교회의 많은 재산을 몰수할 수 있음으로, 이러한 국내의 정책보다는 국외원정에 국왕이 관심을 돌리면 자신의 기득권이 인정될 것으로 생각하고, 프랑스 침공의 법률적 근거에 확신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뽑은 두 장면은 실제로 법률 자체의 타당성이나 정당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하지만 <장면 1>에서 법률의 피해를 본 무지랭이들의 입장이나, <장면 2>에서 법률을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략은 시대를 떠나 우리도 무수히 경험했다. 장면 2에서 법률을 논하면 대목은 실제로는 대법원 판결문만큼이나 더 길다.여러 가지 논리로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면서도 벗어나지 않고 애초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기에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야기로 <장면 3>을 가상해보자. 어떤 착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정부는 그 사람이 너무 싫다. 왜냐하면 옳곧은 소리를 줄기차게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의중을 아는 ‘법률가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파멸시킬까를 고민한다. 그 때 종이에 휘갈긴 것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었다. 그 사람이 세계의 고전으로 인정되는 고리끼의 ‘어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쉽게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아는 사람들도 ‘불고지죄’로 파멸시킬 수 있었다. 고리끼의 ‘어머니’는 검찰 공소번호 67-223915, 법원판결 2심 67노402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확정된 세계의 명작이다.

이제 우리는 법률을 법률자체로 살펴보자는 것이다. 위의 <장면 1, 2, 3>이 아니라, 그 법이 법으로서 타당성이 있으며, 실제로 인간을 위한 법률인지를 심각하게 보자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그렇게 보면, <장면 1, 2>에 너무 맞는 법률로서 역할을 해왔다. 그 와중에는 <장면 1>에 언급되는 법률가들, <장면 2>에 나오는 대주교와 국왕들이 수없이 등장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을 보니 갑자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연상되다니, 시대가 거꾸로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혼란이 생긴다. 혼란은 법률자체와 일반국민들의 법감정에 기초하면 너무나 쉽게 해결된다. 역시 결론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 협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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