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2-09-05   799

[기자회견] 공소시효배제입법 촉구 기자회견

139개 사회단체, 공소시효배제 입법 촉구 기자회견

최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984년 군복무 중 숨진 허원근 일병이 군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자살이 아니라 상급자에 의한 타살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조작·은폐한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울 길은 막혀있다. 이미 관련자들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현행법상으로는 기소와 재판이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 외에도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사건, 수지김 간첩조작사건, 청송교도소 박영두 고문치사사건 등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 속속 실체를 드러냈지만 가해자 중 누구도 그로 인해 법정에 불려나간 이는 없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은 국민의 법감정에 위배된다는 비난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5일, 139개 사회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반인도적 국가범죄 공소시효 배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서를 국회에 전달하였다.

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무고한 국민을 고문·살해한 자들과 사건조작 및 은폐에 관여한 자들은 그 동안 승승장구했고, 심지어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버젓이 공직에 남아 처벌이 불가능함을 이용해 진실규명을 방해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현행 공소시효제도가 인권범죄자들의 방패막이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로 인해 진실과 정의는 실종되고 법의 권위는 벼랑 끝으로 추락하고 있다”며 “국민들은 번번이 ‘공권력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등식 앞에 무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회단체들은 선진국들이 앞다퉈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배제 원칙을 채택한 사실에 주목하며 이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청산을 통해서만 정의로운 오늘과 미래 건설이 가능함을 깨달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제2, 제3의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국회가 추악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률의 제정에 즉각 착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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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 씨

한편, 기자회견장에는 故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 씨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기자회견 후 故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 씨를 비롯한 사회단체 대표 6인은 국회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민주당 신기남 최고의원을 면담해 공소시효 배제 입법이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앞장 서 달라고 당부했다. 이들은 당초 민주당 이상수 의원을 면담할 예정이었으나 이 의원의 일정상 문제로 대신 최근 법사위로 자리를 옮긴 신 의원과 자리를 함께 했다.

신 의원은 “저의 가치관과 심정은 여러분과 같지만 현실적으로 여전히 기무사, 보안사, 국정원의 요직을 점거하고 있는 관련자들이 삼청교육대 등 비인권적 행위의 진실을 밝히고 싶어할 리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재 국회에는 공소시효 배제 입법과 관련하여 2개의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지난 5월 21일 인권·사회단체들이 입법 청원한 ‘반인도범죄등의시효등에관한특별법’과 5월 24일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 등 24명이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민주 양당이 대선과 관련한 공방에 골몰한 나머지 두 법안은 아직 국회 법사위(위원장 함석재 의원)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 법안은 모두 국제법상의 ‘반인도적 범죄’, 국가공권력에 의한 살인·고문 등의 중대한 인권침해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 또는 정지시키고자 마련되었다.

이들 법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인권·사회단체의 입법안이 형사상 공소시효 및 민사상 소멸시효를 공통적으로 배제·소급적용하려는 데 대해 이주영 의원측 안은 법적용 범위를 형사상 공소시효 배제에 국한시켰고, 부칙을 통해 소급효 배제 규정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민변의 김인회 변호사는 “(두 법안의) 입법 취지는 유사하므로 큰 틀에 있어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절충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중대한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이를 사후적으로 적용하려는 인권·사회단체의 주장과 관련하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죄형법정주의의 소급효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향후 국회의 논의과정에서도 이 부분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사회단체들은 △공소시효는 ‘소송조건’이므로 소급효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 △소급효금지원칙은 보호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행위자의 판단과 신뢰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 △일정 기간 경과로 당연히 형벌을 면제받을 것이라는 신뢰는 절대적 가치를 갖고 잇는 것이 아니라는 점 △1996년 5·18특별법과 관련, 헌법재판소 등 법조계 내부에서도 합헌이라는 견해가 제출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배제를 소급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역설했다.

이인향 사이버 참여연대 자원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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