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9-07-08   3120

[판결비평154] 병역법은 인간의 의지를 부술 수 있는가?

1년 전,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은 헌법에 맞지 않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평화적 ·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대체복무제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체복무제 도입이 국회에서 미뤄지면서, 여전히 어떤 병역거부자들은 유죄를 선고받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법원은 평화적 신념으로 병역 거부를 선언한 두 사람에게 그들의 신념을 인정할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신념을 법원은 어떻게 알고 판단하는 것일까요? 양심을 ‘보호’하기보다 스스로 ‘판별’한 법원판결에 대해, 병역거부 활동가 안악희가 짚어보았습니다. 

 

병역법은 인간의 의지를 부술 수 있는가?

[광장에 나온 판결] 평화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 유죄 판결
2018노1086, 서울서부지법 형사2부 최규현 부장판사
2019고단845, 수원지법 형사6단독 이종민 판사

 

안악희 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활동가

 

지난 5월 두 명의 병역거부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한 명은 2심에서 항소가 기각되었고, 다른 한 명은 1심에서 징역 1년의 판결을 받았다. 전자(1심 서울서부지법 2018고단1256, 2심 서울서부지법 2018노1086)의 경우, 재판부가 그의 양심이 “유동적이고 가변적이어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기에 법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후자(수원지법 2019고단845)의 경우 그는 이전까지 외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표출한 일이 없어 병역거부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는 희대의 판결들이다. 전자의 경우, 양심을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신념’이라고 했다. 그러나 같은 판결에서 확고한 신념을 “그것이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면서도 바로 다음 문장은 이것이 “반드시 고정불변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모순되는 두 입장을 동시에 전개한다.

 

이 판결에 대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담당 검사가 피고인에게 광주항쟁의 시민군을 사례로 들면서, “당신이라면 그 때 총을 들지 않았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아마도 총을 들었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고, 이것은 그를 병역거부자가 아니라고 보게 된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

 

징역 1년을 받은 후자의 경우, 입영일까지 “자신의 신념을 외부로 표출하는 등의 활동을 한 사실이 전혀 없는 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과거 병역거부자들에게 1년 6개월 형을 선고함으로 사실상 병역을 면제해 준 판례를 보아, 이 사람은 1년간 수감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다시 입대해야 한다. 이는 매우 악질적인 판결이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두 가지다. 법원 조차도 양심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음에도 아직 확립되지 않은 대체복무 심사를 법원이 자의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심은 인간의 내면이고 실존이다. 근대 이후 인간은 자유 의지를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만약 우리에게 자유 의지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소리인 양심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법도 국가도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타율로 움직이는 동물이 아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도록 탄생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체적으로 때로는 전쟁을 반대하기도 했고 찬성하기도 했으며, 그 후 전쟁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하기도 했다. 또한 개개인의 양심은 사회의 신뢰와 합의를 도출하게 한 중요한 원천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매번 서로의 양심을 의심한다면, 그 어떤 종교도 서로 공존할 수 없으며, 상업활동 또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양심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여러 병역거부자들이 다양한 이유로 군대를 거부했다. 2차 세계대전에는 찬성했지만 베트남전에 반대한 병역거부자들도 무수히 존재했고, 폭력적으로 보이는 운동인 복싱 선수지만 인종 차별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한 무하마드 알리도 있다. 이들의 양심은 과연 가변적인가? 애초에 양심이 어느 순간까지는 진실하고, 어느 순간부터 진실하지 않다는 판정이 가능할까?

 

양심은 표출해야만 인정받는 객체가 아니다. 만약 표출해야만 양심이라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므로 우리는 북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잠재적 종북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술을 거부하여도 유죄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법칙도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개 한국인들은 대체로 정치적으로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는 촛불 집회에 참여하거나 선거에 투표하는 것을 정치적 행동의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인데, 특별히 평화주의적 행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한 사람의 신념을 부정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게다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다른 사건에서 법원은 특정 종교나 단체의 가입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양심의 자유야 말로 개인의 자유인데 병역거부자가 반드시 특정 집단에 속할 이유도 없고, 집단을 기준으로 개인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 병역은 양심에 앞서는가? 병역법은 인간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넘어서는가? 병역법은 의지를 부술 수 있는가?

 

‘대체복무제가 없는 현행 병역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위헌 취지의 불합치 결정을 했지만, 지금 대체복무제는 심사 방식 조차도 알 수 없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대체복무제를 2019년 12월 31일까지 도입해야 하지만, 법을 만들겠다는 사람들 중에 대체복무의 의미를 명확히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그래서 36개월 교도소 합숙 복무나 40개월 군사시설 복무같은 황당무계한 안들이 국회와 행정부를 떠돌고 있다.

 

이러한 법안들은 대체복무제를 잘 만들려는 의도보다는 특정 정치적 지지세력의 기대에 맞추려는 의도로 보인다. 어차피 병역거부자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대중은 관심이 없고, 징벌적 대체복무제는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역 장병들의 불만이라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현재 병역거부자들은 2020년 1월 1일까지 입영이 보류되었다. 그러나 헌재 결정 이후의 병역거부자들 중 병무청이 조건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한 경우는 대체복무 심사를 받지도 못하고 기소되고 있다. 이는 제도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병역거부자들에게서 심사를 받을 권리를 빼앗는 것이고, 권한 없는 기관이 국민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권리를 곡해한 판례가 누적되면 차후 병역거부뿐만 아니라 양심에 대한 해석도 편의적으로 흐를 수 있다. 아직 대체복무의 윤곽이 나오지도 않은 지금, 굳이 판결할 이유가 없다. 대체복무제 확립 전에는 병역거부자들이 법적 판단을 받을 필요가 없다. 법원은 이런 재판을 멈춰야 한다.

 

만약 어느 병역거부자가 병역법 위반으로 법정에 섰다고 하자. 이 병역거부자가 “나는 병역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현행 법으로는 내가 병역거부자로서 인정받을 방법이 없으므로 나는 기꺼이 감옥에 가서 나의 진정성을 증명하겠다”고 했을 때, 이 사람은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

 

감옥으로 보낸다면 이 사람은 결국 입영을 거부하게 되어 병역 거부자임을 증명하게 된다.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한다 해도 그들이 병역거부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낡은 법의 잔해만이 남게 되어있다. 이제 사법부는 보다 상식적인 선택을 할 때가 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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