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1-07-25   3865

[2011/07/20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②] 7월 20일 417호 법정에선…

이 글은 2011년 7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합의26부) 서관 417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참여연대 인턴(8기) 여러분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함께해요 국민참여재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배심제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배심원이 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지켜본 방청자들의 경험을 통해 여러분도 함께 배심원단이 되는 간접체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방청기를 보내주신 최수연 님께 감사드립니다.

최수연 (참여연대 인턴 8기)
생명은 소중하다. 어린 시절 유독 집안에 사고가 많았던 나로서는 ‘생명이 소중하다’라는 말을 평생 가슴 속에 새기며 살았다. 지난 3월 소중한 생명하나가 잔인하게 살해됐다. 피의자는 30년 지기 고등학생 동창이었다. 친구를 살인한 사실에 대해 피의자가 인정을 하고 있던 터라 양형만을 결정하는 재판이 사건 발생 4개월이 지난 7월 20일에 열렸고 난 인턴친구들과 함께 이날 재판을 방청했다.
 
“법조인도 아닌 배심원들이 무얼 아십니까, 내 동생이 어떻게 죽은지나 제대로 아십니까” 30년 지기 친구의 흉기에 잔인하게 살해된 피해자 큰 형이 법정에서 한 말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심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배심원들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방청석의 분위기는 달랐다. 배심원을 모독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형의 심정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동생이 죽었다. 그것도 믿었던 30년 지기 친구의 칼에. 배심원이 자신의 동생을 위해 올바른 판결을 어떻게 내려줄 수 있냐고 외쳤고 형은 배심원을 신뢰하지 않았다.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20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평결을 내리는 재판이다. 피해자 형은 이 점에 대해 불편해했다.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인들이 어떻게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 또한 이 점에 대해선 피해자 형과 같은 생각이었다. 또 재판을 지켜보는 내내 기존의 재판과 달리 피의자나 증인들의 증언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피의자’, ‘내장까지 드러낸 채 잔혹하게 죽어간 하나뿐인 남동생’ 등의 말이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사 측에서 수없이 오고갔다. 재판의 성격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에 너무 치우쳐있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이런 재판에서 제대로 된 판결이 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재판을 지켜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양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쟁점은 하나였다. “30년동안 자신을 괴롭힌 친구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했다”는 피의자 주장과 “동업을 하는데 있어서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돈을 주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저지른 살인이다”는 검사측의 해당 재판의 쟁점이었다. 만약 피의자 주장대로 오랜 시간동안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면 정상 참작돼 피의자의 구형기간이 다소 줄어들 수 있는 중요한 점이었기에 재판 내내 이를 소명하기 위해 검사와 변호사측은 법정에서 대립했다. 출석한 증인 9명이 차례대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다. 그런데 증언에서는 피해자가 피의자를 학대하고 괴롭혔다는 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 피의자 부인 차례가 됐다. 부인은 피의자가 피해자로부터 학대받은 광경을 목격했다고 했다. 목격했던 시간과 장소, 그 밖의 주변 사물에 대해 진술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은 자신이 한 진술을 번복하고 당황해했다. 피의자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결정적인 증언을 한 부인의 진술이 신빙성을 잃어 갔다.
 
괴롭힘으로 인한 살인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 측에서는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피의자의 계좌 추적 결과였다. 동업 과정에서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건네준 9억6000만 원의 흐름으로 피의자는 피해자를 죽인 지 3시간 도 안 지났을 무렵 증권계좌에 남아있던 3억4000만 원을 자신의 동생들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받은 돈을 주식에 투자해 1억 원의 손실을 본 사실을 검사는 증거로 제출했다. 구치소 접견실에서 ‘주식 손실 때문에 죽였다고 그러면 나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이야’ ‘주식 손실금 1억 때문에 죽였다 그러면 안 되니까 공탁을 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도 공개했다.
 
정오에 시작됐던 재판은 다음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법원은 피의자에게 살인 혐의로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배심원단의 징역 23년 형 선고 결정을 존중한 결과였다. 판결이 선고 된 후 유가족은 통곡했다. 비로소 30년 동안 친구를 괴롭혀 죽임을 당했다는 동생의 누명이 벗겨져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재판이 끝난 후 재판 처음부터 배심원과 국민 참여재판의 성격에 대해 가졌던 내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됐다. 재판을 시작할 무렵 재판장은 “배심원의 평결과 법원이 평결이 90% 일치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저렇게 확언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비록 무기징역을 생각한 재판장과 징역 23년을 생각한 배심원의 평결은 달랐지만 피의자가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괴롭힘으로 살해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생각이 일치했다는 사실을 보면서 배심원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 새삼 부끄러웠다. 피해자 형도 어느 정도는 나처럼 배심원과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의심과 불편함이 어느 정도 해소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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