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7-08-01   1335

[09호] 미국 현 '보수' 대법원의 '진보'적 판결

해외통신문 – 28

미국 현 '보수' 대법원의 '진보'적 판결?

조 국

본지 통신원·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법과대학원 박사과정

1. 국내에서 형사실무에 종사하는 분들의 공통된 질문 중의 하나는 "과거 60년대 '진보파' 워렌 (Warren) 법원이 형사피의자, 피고인 '편향'의 많은 판결을 하였다 하나, 그 원칙들은 70년 이후 '보수파' 버거(Burger), 렌퀴스트 (Rehnquist) 법원이 등장한 이후에 유명무실해지거나 또는 폐지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은 현재 한국 학계에도 '통념'화되어 있는 사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의문의 배경에는 미국도 '보수화'되어 가고 있는데 한국 형사절차개혁은 너무 '진보적'으로 되어 가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다분히 깔려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버거, 렌퀴스트 법원에 대한 일면적 이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보수법원에서도 이어지는 원칙

60년대 워렌 법원은 Mapp, Miranda 그리고 Massiah 판결로 대표되는 일련의 "혁명적" 판결을 통하여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확립하였다. 즉 영장주의를 위반하고 수집한 증거물은 아무리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할 수 없으며, 또한 묵비권, 변호인접견권 등 피의자의 권리를 고지하지 않거나 그 행사를 방해하고 받아낸 자백의 경우 그 자백이 자발적이고 또한 법집행기관이 강압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증거로 제출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움으로써 경찰의 불법수사관행을 원천봉쇄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집행기관 측은 그 법칙이 범죄인은 풀어주고 법집행기관의 손을 묶고 있다면서 격렬히 비판하였고, 이러한 비판들은 버거, 렌퀴스트 법원 등장 이후에 각종 예외가 만들어지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예외를 만들어 내면서도 '보수' 버거, 렌퀴스트 법원은 미국 내 '보수파' 정치세력의 기대와는 달리 워렌 법원이 확립한 주요 원칙 자체는 폐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법칙을 더욱 진전시키는 '진보적' 판결을 내려왔다. 이번 통신문에서는 70년대 말 이후 형사피의자, 피고인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관련된 미국 '보수' 대법원의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보수' 대법원의 판결은 아마 한국의 '인권변호사'의 입장보다도 더 '진보적'이라도 평가될 만 하며, 한국의 수사기관을 낙담시킬지도 모르겠다.

미란다 준칙의 강화

미국에서는 보통명사가 되어 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는 Miranda 준칙을 보자. 워렌 대법원은 Miranda v. Arizona, 384 U.S. 436 (1996)에서 미국 헌법 수정 5조의 "자기부죄금지의 특권"(privilege against self-incrimination) 조항에 기초하여 Miranda 준칙을 만들어내었다. 즉 경찰관은 피의자에 대한 심문을 개시하기 전에 "(i) 당신은 묵비권을 가진다, (ii) 당신의 진술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 (iii) 당신은 변호인을 배석시킨 채 심문을 받을 권리가 있다, (iv) 당신이 변호인을 선임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된다"는 네가지 사항을 받드시 고지해야 하며, 그 때 피의자가 묵비권이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호소하면 그 즉시 모든 심문을 중단되어야 하고, 위의 준칙을 어기고 획득한 피의자의 진술은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혁명적" 내용의 판결을 하였다. 그런데 이후 등장한 '보수' 대법원은 Miranda 준칙의 예외를 만들어내면서도, 그 준칙 자체는 계속 견지하고 있다. 먼저 Edward v. Arizona, 451 U.S. 477 (1981)을 보면, 이 사건에서 경찰관은 피의자에게 Miranda 권리를 읽어 준 후 심문에 들어 갔다. 피의자가 변호인과 만나고 싶다고 말하자, 담당 경찰관은 심문을 중지하고 피의자를 유지장에 구금하였다. 다음 날 아침, 두명의 다른 경찰관이 유치장을 방문하여 Miranda 권리를 다시금 피의자에게 읽어주고 심문을 하였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너무도 절차를 잘 지키는 모범 경찰관의 행동에 대하여 미국 '보수' 대법원은 다시 제동을 걸었다. 즉 피의자가 일단 Miranda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말한 이상, 피의자에게 변호인의 접견이 제공되거나 피의자가 먼저 대화를 재개하지 않는 이상 모든 심문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Arizona v. Roberson, 486 U.S. 675 (1988)에서 '보수' 대법원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피의자가 일단 Miranda 권리를 호소하겠다고 말한 이상, 그 어떠한 다른 범죄—피의자가 Miranda 권리를 호소한 범죄이건 아니건–에 관련해서도 심문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Minnick v. Mississippi, 498 U.S. 146 (1990)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의자가 Miranda 권리를 호소한 이상, 그가 변호인과 상담을 하였다 할지라도 변호인이 배석하지 않으면 심문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한 폭넓은 해석

미국 헌법 수정 6조상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한 판결을 보자. Brewer v. Williams, 430 U.S. 387 (1977) 사건에서 살인 용의자 Williams는 자신의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자수를 하였는데, 그의 자수 당시 변호인은 담당경찰관에게 피의자를 이송하는 도중 심문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담당경찰관은 피의자를 이송하는 도중 "성탄절이 내일인데 피살된 소녀의 부모가 좋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는 취지의 말을 피의자에게 하였고, 이에 피의자는 동의하여 사체가 있는 곳으로 경찰관을 인도하였다. 한국 법집행기관의 시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는 사건이겠으나, 미국 '보수' 대법원은 그 경찰관의 발언은 피의자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은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설시하여 하급법원의 유죄판결을 파기하였다. Michgan v. Jackson, 475 U.S. 625 (1986) 사건에서, 피의자들은 자신들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호소하였다가 이후 포기하고 자백하였다. 그런데 담당 경찰관이 피의자들이 그들의 변호인과 상담하기 전에 심문을 개시하였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미국 '보수' 대법원은 피의자가 일단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호소하기만 하면, 그 피의자가 먼저 대화를 개시하지 않는 이상, 경찰관은 더 이상 피의자를 심문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버거 및 렌퀴스트 대법원의 기본입장이 워렌 대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비판적임은 분명하고 그 "혁명적" 판결들을 수정하려고 노력해온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왜 '보수' 대법원이 '진보' 대법원의 원칙 자체는 폐기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 연구가 진행되어 왔는데, 현재의 다수설은 다음과 같다: (i) 실증조사의 결과 "위법수집배제법칙"의 실시 초기에는 법집행에 차질을 주었으나 곧 그 부정적 효과는 "주변적"(marginal)인 것이 되었고 수사기관들도 새로운 절차에 적응하게 되었다, (ii) 그 "법칙"의 시행으로 인하여 경찰과의 "인권의식"과 동시에 "법집행의 정당성" 또한 높아졌으며 법집행기관의 수사기관으로서의 "전문화" (professionalized)가 이루어졌다, (iii) "위법수집증거"를 배제하는 것 외의 다른 방법—담당 경찰관에 대한 손해배상, 수사기관 내부징계 등—으로는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실질적으로 억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등이다. 과거 미국의 전국 검사(District Attorney) 협회나 경찰간부협회가 Miranda 준칙을 폐지하자는 법무장관의 주장에 합류하지 않았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보수' 법원의 '진보'적 판결에 대하여 "미국의 판결이라고 다 좋은 것이냐, 우리는 우리식의 법관념과 관행이 있다"는 주장이 예상된다. 이 주장은 그 자체로는 틀린 것이 없다. 필자 역시 미국 것이 무조건 우월한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 반문자가 고수하려는 현재의 법관념과 관행이 무엇인가가 문제이다.

근래 언론매체에서 한보 청문회의 증인이 자신의 변호인과 상담하고 답변을 한 것, 모 연예인과 뺑소니 운전사에 대하여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구속전 피의자심문제도을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범죄통제, 구속위주의 형사사법관행이 수십년 동안 한국을 지배하다 보니, 피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형사절차, 불구속 위주의 형사절차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사태일 것이다.

피의자에게도 국선변호를

먼저 우리는 "범죄인에게 무슨 권리고 변호인이냐? 그 놈들은 일단 구속시켜 놓고 수사를 하면서 혼 좀내주어야 한다. 안그러면 불지도 않는다"는 식의 법관념과 결별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관념은 독재의 잔재이다. 민주적 형사절차는 "실체진실발견"을 방해하는 복잡한 여러 장치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놓고, 수사기관에게 이를 지키라고 요구한다. 일견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나, 그것은 민주주의가 받드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피의자의 진술거부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흉악범이건 파렴치범이건 '간첩'이건 쿠데타의 주범이건—보장되어야 하는 헌법상의 권리이다. 그 권리행사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영장실질심사제도"를 둘러싼 논쟁도 이와 관련이 있다. 법원은 구속전에 피의자를 직접 심문하고 영장발부 여부를 판단함으로써 현재 유명무실하게 된 불구속재판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파악하면서 이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에 검찰은 피의자 구속여부는 수사기관의 고유권한이며 이 제도는 영장심사 외에 또 하나의 절차를 만들어 수사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실 그 제도 때문에 범죄인이 도망가는 사태가 발생하고 수사기관의 수사효율이 저하되며 피해자의 권리는 무시된다는 등 수사기관에서 제기하는 비판은 분명 현실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경찰심문시 변호인배석권 도입해야

경찰심문시 변호인배석이 수사를 방해할 뿐이라는 생각은 Miranda 판결 이후 30여년의 미국 경험을 볼 때 잘못된 것이다 (영국의 경우는 변호인배석권 대신에 경찰심문 전 과정의 녹음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의 경찰은 우리보다 훨씬 강도높은 피의자 보호장치 속에서도 경찰업무를 진행하고 있지 않는가? 또 각종 통계에 의하자면 그 효율 또한 높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한국의 변호사의 양식과 법관념을 생각하였을 때 그들이 자신의 고객이라고 하여 무조건 부인하라고 또는 허위진술하라고 조언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경찰심문시 변호인배석권"이 도입된다면 "경찰조서"의 증거능력이 바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기에, 검찰단계에서 처음부터 새로이 조서를 작성해야 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컨대 "경찰심문시 변호인배석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철야수사" 등의 강압적 수사방식을 원천봉쇄하여 피의자의 인권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경찰조서의 신빙성을 높임으로써 수사의 효율과 정당성을 높이는 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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