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09-01   1241

[06호] 「미네르바」제 9호에 실린 ‘설문조사 유감’에 대한 항의서한

사법감시 통신문

⌈사법감시⌋ 5호에 실린 사법연수생들에 대한 설문조사결과가 일간 신문에 기사화된 후 사법연수원에서 발행되는 ⌈미네르바⌋(사법연수원소식지 제9호, 96년 6월 27일 목요일자)에 ‘설문조사 유감’이라는 기사가 사법연수원 기획교수실 명의로 게재되었다. 이 기사에 대한 ⌈사법감시⌋ 편집위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7월 20일 가재환 연수원장에게 보낸 서한의 전문이다.

수신 : 가재환 원장

열람 : 사법연수원 기획교수실 일동, 「미네르바」 편집인 신영철 교수

「미네르바」제 9호에 실린 ‘설문조사 유감’에 대한 항의서한

안녕하십니까.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는 참여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1994년 9월 결성된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이 입법, 행정은 물론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분야에서도 관철되어야 한다고 믿고, 참여연대의 중심 센터의 하나로 사법감시센터를 출범시켰습니다.

사법의 영역에서도 국민주권의 원리가 관철되어야 하며, 민주사법 · 책임사법 · 시민사법 · 참여사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사법감시와 사법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사법현실을 단순히 지적 · 비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국민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법조는 물론 국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재의 부정적 양상을 비판할 때조차, 우리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 머물지 않고 항시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그동안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각종 토론회와 자료집이 이를 잘 보여줄 것입니다.

이러한 관심과 감시작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우리는 <사법감시>를 격월간으로 간행하고 있으며, 1996년 6월 현재 제 5호를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제 5호의 내용 중에는 21세기 법조계를 끌고 나갈 예비법조인으로서 사법연수원생들에 대해 사법현실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 공표한 바 있으며 그 내용의 일부가 일간지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귀 연수원에서 내는 소식지 「미네르바」 9호 10쪽에는 ‘설문조사 유감’이란 ‘기획교수실’ 명의의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내용을 접하고 우리 단체와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심각한 편견과 예단을 보여준 데 대하여 당혹감과 충격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몇차례의 내부논의를 거쳐 분명하게 항의를 표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설문조사 유감’에 게재된 내용을 낱낱이 비판하고 항의하고자 합니다.

“최근 이름도 괴상한 모 재야단체에서 27기 연수생들을 상대로 우편 설문조사라는 것을 하여 그 결과를 언론에 공표한 바 있는데”

우리는 표현의 천박함에 대해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난 2년간 활동해오면서 여러 시민들과 학계, 언론계, 심지어 실무 법조계의 많은 인사들이 참여하여 활동해온 단체를 이유없이 그 이름을 들어 ‘괴상’ 운운함은 법조인다운 사려가 결여된 표현이라 생각하고 유감을 표합니다.

또한 법조인의 모든 활동을 실명화하여 공과를 분명히 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우리 단체에서 우리의 활동을 익명으로 한 적이 없는 데도 ‘모’ 단체라 하여 불순한 어감으로 표현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재야단체’라는 말속에 내포되어 있는 듯한, 일각에서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건전한 시민의 양식 속에 뿌리내리려는 노력을 한번도 게을리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일간언론에 공표하기 위해 이런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법조인과 법조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연수원생’의 시각에서 본 우리 사법의 현주소를 적시함으로써 자성과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언론에 일부 내용이 공표된 것은 그만큼 미래의 법조인인 사법연수원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불순한 익명의 단체가 연수원생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펴고자 하는 것인 양 오도함으로써 우리 시민단체의 명예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 설문 중에는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도 있어 문제가 되었다”

설문조사는 특정 집단이나 국민전체의 의사를 파악하는 데 있어 공인된 조사기법의 하나이며, 민주주의가 진전될 수록 설문조사가 활발해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현재 전국민적 관심사인 5·18 피고인에 대한 재판 역시 그간 수많은 설문조사가 이루어져 왔으며, 우리의 해당 설문도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연수원생들의 의견을 알아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여론재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론에 재판부의 판결이 왔다갔다 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담당재판부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설문이 왜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법과 권력의 유착이 심한지 여부를 (연수원생들이) 어떻게 알아서 응답을 하였는지 법조선배들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다수 전달되었다”

모든 국민들은 사법과 권력의 유착이 있는지 없는지 나름대로의 경험과 정보에 의거하여 판단할 수 있습니다. ‘법조선배’들이 보는 측면도 한 단면일 것이며, 연수원생들의 판단도 충분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법조현실을 ‘아는’ 선배의 목소리에 자기 의견이 위축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자칫 법조선배들의 우려 속에 보이지 않는 권위로 예비법조인의 목소리를 억누고자 하는 미필적 의사라도 있다면, 그야말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라 믿습니다.

“사법연수원생들은 일반 시민과는 다른 지위에 있으므로 그 집단적 의지표출은 법조와 사회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이 문장의 후반부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설문조사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응답내용도 매우 다양합니다. 아마도 기획교수실에서 우려하는 ‘집단적 의지표출’은 공동성명서나 집단 시위 같은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설문조사를 가지고 집단적 의지표출 운운하는 것은 침소봉대이거나 솥뚜껑을 보고 자라인 양 놀라 예방책을 세우는 판단상의 우(愚)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법연수원생들이 일반 시민과 다른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법조인 역시 그러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사법연수원생들과 법조인들은 자신들에게 특권의식을 주입하려는 외부의 유혹을 이겨내면서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품성을 함양하고 자기절제를 할 것이 요청되는 직책입니다. 아울러 전문가로서의 직업윤리에 투철하여 공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여야 하겠지만, 그것도 ‘다른 지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시민’의 건전한 양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재야단체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만 달성되면, 사법의 독립이나 법치주의와 같은 것은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은 무책임한 집단인 경우가 많으므로”

이 구절은 직접 우리 단체를 직접 겨냥한 것이든지, 그렇지 않더라도 그러한 무책임한 집단 속에 우리를 포함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정반대입니다. 즉 ‘정치적 목적’을 맹목적으로 추구하여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집단에 대해, ‘사법의 독립과 법치주의’를 지켜야겠다는 시민적 각성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시민의 사법감시와 참여가 굳건해질수록, 사법독립을 방해하려는 세력들의 영향력 강화기도가 분쇄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는 결코 정치단체가 아니라, 어떤 정치단체가 등장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시민적 감시와 참여’를 활성화하자는 데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정치목적 달성을 위해 무책임한 비판을 일삼는 집단이 아니며, 혹은 맹목적인 비판만 하는 조직도 아닙니다. 아울러 재야단체 일반을 이렇듯 무책임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그러한 단체들의 설립취지와 활동방식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편향된 인식일 수 있음을 우려합니다. 아마도 현직 판 · 검사이기도 할 기획교수실 소속교수들의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민주사회의 법조인이 가져야 할 상에 부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설문에 대한 응답을 함에는 신중을 기했어야 하는 비판이 많다.”

우리의 설문조사에서 315명 전원의 가정으로 설문을 발송하였고 이 중 75명이 응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4명에 1명꼴로 응답한 사실은 우편조사 중에서 높은 응답율을 기록한 것이며, 이러한 사법연수원생들의 높은 참여의식과 시민단체에 대해 보여준 신뢰에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설문에 응하지 않은 분도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있을 것으로 믿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응답자의 수를 분명히 밝혔던 것입니다. 연수원생들의 응답이 신중을 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은 법조선배들의 기우에 기인하는 것인지, 기획교수실의 노파심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자유롭게 행사하는 데 대해 질책하는 듯한 어조는 매우 잘못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몇마디 고언(苦言)과 요청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법조인을 키워내는 산실로서 사법연수원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교수진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간에서 보여지는 시민단체 및 재야단체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누구보다 언행에 신중하여야 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편견이 교육생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스스로를 되돌아 보아야 할 교육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품위에 어긋하는 표현을, 그것도 연수원생을 대상으로 한 소식지에 쓰고 있는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내는 모든 매체에 최대한의 신중을 기하고 있으며 반론권을 무제한으로 보장하고 있음을 공언하였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글을 관련 당사자의 반론권 행사의 차원에서 「미네르바」의 다음 호에 실어줄 것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앞으로 우리 참여연대와 사법감시센터는 「사법감시」지를 통하여, 그리고 법률관련 활동을 통하여 시민적 입장에서 우리 사법의 현실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만들어내는 데 진력할 것입니다. 사법 100주년을 넘어서 제2의 재혁신을 이룩해야 하는 이 때,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며 국민에게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연수원 교육을 담당하는 여러분들이 높은 식견과 열린 마음으로 최상의 교육을 해줄 것을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별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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