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12-01   1265

[07호] 미국의 대법관인준 청문회

미국의 대법관인준 청문회

–Robert H.Bork 판사 인준거부를 중심으로

다음 소개의 글은 1987.9.9 미국시민권연맹이 작성한 를 기초로 한 것으로서 이 자료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미국시민권연맹의 협조로 단독 입수한 것이다. 필요로 하는 독자에게는 첨부자료를 제외한 본문에 한해 복사비와 송료 부담하에 제공될 수 있음을 밝혀둔다.

미국에서의 대법원판사 인준청문회

미국의 고위공직자 인준문제는 미국의 헌법 제2장 제2조의 규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대통령은 상원의 조언(advice)과 동의(consent)에 의해 – – -대법관 등을 임명한다”는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온전한 삼권분립정신이 낳은 하나의 타협물이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주면서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상원이 동의라는 조건을 달게 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대법원으로 기능하게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흔히 대법관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으로 불리워진다. 대법관이 어떤 성향의 사람으로 선출되느냐에 따라 한 사회의 방향이 달라지게 된다. 법치주의가 확립된 나라에서는 모든 사회적 분쟁과 갈등이 결국 대법관들의 손에 의해 어느 한쪽을 손들어주게 마련이다. 실제로 미국 대법원의 역사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에서 서로 엇갈려 왔고 이럴 때 한 대법관의 의견은 결정적으로 한 시대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사회세력간의 쟁투를 하나의 전투라고 표현하곤 한다. 낙태를 지지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 동성연애자의 권리를 위한 단체, 여성단체, 인권단체, 기업과 노동조합등 모든 계급과 계층, 이해집단, 공익단체들이 나서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한다. 전국이 대법관 임명시마다 홍역을 앓게 되는 것이다.

Robert H.Bork 판사와 인준거부사태

1987년 7월 1일 레이건 대통령은 Powell대법관의 퇴임으로 공석이 된 대법관 자리에 Robert Bork판사를 지명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군 Robert H, Bork판사의 임명에 관한 인준과정은 하나의 드라마였다. 예일대학교수와 미국연방항소심판사 등을 지낸 Bork판사는 자유주의 지성인들과의 끊임없는 논쟁을 벌여온 ‘전투적’ 판사이기도 하였다. 레이건대통령에 의해 Bork판사가 후보자로 지명되자 전국에 걸쳐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이미 레이건대통령에 의해 수명의 대법관이 임명된 상태에서 미국의 대법원이 보수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던 상태였다.

이러한 가운데 하바드 법대 헌법학 교수였던 Tribe는 그 반대운동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는 미국 국민들이 잘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대법관이 쉽게 인준되는 과정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가장 열렬히 이 운동에 뛰어들었다. 1985년에 이미 그는 행정권과 사법권의 균형, 대법원의 위기에 관하여 “신이여, 대법원을 구하소서”(God Save This Honorable Court)라는 책을 쓰기도 하였다.

전국의 수많은 인권·시민·여성·노동단체들이 들고 일어났고, 이들은 Bork판사의 부적격 사유에 대해 꼬치꼬치 물고 늘어졌다. Bork판사의 그동안의 모든 행적과 사상이 이 과정에서 제시되고 지적되고 논란되었다. 이 문제는 거의 매일 텔레비젼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였고 곳곳에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상원에서의 인준청문회는 여러 방송사에서 중계방송을 하였고 때로는 재방, 삼방되기도 하였다. 국민들은 자신의 선거구에서 선출된 상원의원에게 전화로 자신의 견해를 말하여 압력을 가하기가 일쑤였다. 결국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도 대법관의 임명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었다. 마침내 1987년 6월 상원 사법위원회는 9:5로 Bork판사의 대법관인준을 거부함으로써 이 긴 논쟁은 끝맺었다.

미국시민권연맹(ACLU)의 보고서

미국시민권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하 연맹이라고 함)은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답게 대법관인준과정에서 과장 활발하게 대응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준대상이 된 대법관 후보의 인권기록(civil liberties record)에 대한 소상한 항목을 두어 거기마다 나름대로 정한 평가기준에 따라 채점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를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후보에 대한 자료가 수집되어야 한다. 이 수집대상에는 판결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 그 후보가 쓴 논문과 기고문,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등이 포함된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자료들이 WESTLAW, LEXIS 등의 컴퓨터정보시스템에 입력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수집이 손쉽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ACLU의 담당자뿐만아니라 법률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이 작업에 자원봉사(pro bono)활동으로 참여한다. 참고로 Bork판사보고서에 수록된 평가목록을 살펴본다.

A.평등보호(여기서는 주로 인종간의 평 등을 말한다) 및 투표권(voting rights)

B.남녀 차별

C.교회.국가

D.언론자유

E.프라이버시

F.형사법

G.법원에 대한 접근

a.연방법원에 제소할 권한의 제한

b.정부의 면책의 확대

c.관할조항의 협소화

H.행정부의 권한

이상과 같은 항목마다 Bork판사의 행적과 인식, 세계관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다. 이 항목은 대체로 한 판사가 여러 판결과 저작들을 통하여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 국가·교회·개인의 상호관계, 사법절차에 대하여 어떠한 법적 인식과 견해,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지 충분히 파악하게 해 주고도 남음이 있도록 망라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항목마다의 점검을 통해 그가 대법관으로 임명되면 평소의 소신과 성향으로 보아 개인의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되고 미국의 대법원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예측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그런 다음,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우리는 이 보고서가 우리에게 접근가능한 모든 그의 저작과 판결 등에 기초하여 Bork판사의 견해, 그 뒤에 있는 그의 사법적 철학을 제대로 범주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기록에 의해 우리는 Bork판사를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일치하는 사법적 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확인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를 수용하는 광범한 범주안에 위치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Bork판사를 Felix Frankfurter, John Harlan, 최근의 Lewis Powell판사들의 예와 같은 보수적 사법전통 내에 위치시킬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Bork판사는 강한 지적 신뢰를 가질만하지만 충분치는 않다. 상원은 후보자의 사법철학을 검증하고 그것이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대법원의 기능과 일치할지를 결정할 헌법상의 책임을 지고 있다. 그 기준에 비추어볼 때 Bork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거부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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