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09-01   1300

[06호] 안기부의 손에 달린 헌법상 권리

안기부의 손에 달린 헌법상 권리

지난 7월 초 외국인 출신으로 우리나라에서 왕성한 연구활동을 했고 그 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인정받고 있는 무하마드 깐수 교수가 북한의 정보원으로 밝혀졌다는 안기부 발표가 있었다. 깐수 교수의 부인으로부터 변호인 선임의뢰를 받은 김한수, 박원순 변호사는 7월 16일과 7월 18일 두차례에 걸쳐 안기부에 전화를 걸어 변호인접견신청을 했고 18일 세곡동 안기부에 도착하여 접견을 기다렸다. 그러나 안기부의 태도는 의외였다. ‘깐수 교수는 종래 일반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와 달리 매우 중한 혐의를 가지고 있는 간첩이고 대통령에까지 보고된 중대한 사건이므로 국익차원에서 변호인 접견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변호인들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들어 변호인 접견을 거부할 수 없고 계속해서 접견을 불허하면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밖에 없음을 았렸으나 성명을 밝히기도 거부한 수사담당자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처벌받는 것을 포함하여) 변호인 접견을 허용할 수 없으며 안기부에서 조사받는 동안은 앞으로도 절대 변호인 접견을 시켜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청신 대공수사실장은 수사결과 발표 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변호인들이 양해를 하고 접견을 하지 않은 것’이라는 거짓말까지 하였다.

안전기획부직원으로서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변호인의 피의자와의 접견·교통·수진·구속의 통지, 변호인이 아닌 자의 피의자와의 접견·수진 변호인의 의뢰에 관한 형사소송법 규정을 준수하여 피의자, 변호인 또는 관계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국가안전기획부법 제19조 2항이 무색할 지경이다. 깐수교수의 변호인단은 국가안전기획부장, 안기부 이청신 대공수사실장, 깐수교수 수사담당자(성명 미상)를 ‘국가안전기획부법’ 제19조 직권남용죄로 고소한 상황이다.

바로 다음날인 1996. 7. 19. 16:00경, 지난 6월 문정현 신부와 바르샤바 ⌈남북2차회담⌋에 참가하였다는 이유 둥으로 구속된 이승환(38)씨를 접견하기 위하여 차병직 변호사는 이씨의 부인 김미숙씨와 함께 안기부 세곡동 청사를 찾아갔다.

접견 신청서를 제출한 지 30여분이 지나서 안기부 직원이 승용차로 접견실까지 안내하였다. 그러면서 그 직원은 “매일 접견을 오니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변호사만 다녀가면 말이 달라진다.”라고 불만스럽게 내뱉었다. 접견실 입구에서는 드디어 “접견 시간은 15분간이니 지켜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차변호사가 “변호인 접견에 시간 제한이 있느냐”고 항의하자, “제한이 없는 줄은 알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 엄수바란다”고 대답했다.

접견이 시작된 지 정확히 15분쯤 되었을 즈음에 노크와 함게 직원이 들어왔다.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이었다. 차변호사가 “얘기가 덜 끝났으니 나가주기 바란다”고 하자 불만스런 표정으로 “조금만 더 기다리겠다”고 하며 문을 닫았다. 10여분 정도 접견이 더 이루어지고, 재차 안기부 직원이 들어온 순간 그 날 접견은 종료되었다.

수년간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은 판결을 통하여 변호인접견의 부당한 거부와 제한에 대하여 그 위법함을 거듭 확인해 오고 있으나 공안당국의 태도는 초연할 뿐이다. 피의자들을 잠도 제대로 재우지도 않고 하루 종일 조사를 하는 판국에, 변호인의 몇 십분 또는 한 두시간의 접견이 수사를 방해할 리 만무하다. ‘법원의 결정으로도 제한할 수 없는’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이 안기부에서는 수사의 용이함 저 뒷전에 머무르고 있음을 이번 두 사건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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