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02-01   2251

[03호] 무노동무임금원칙으로 회귀한 대법원 판결에 부쳐

지난 95년 12월 21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는 남만진 씨 등 의료보험조합 노동조합원 15명이 제기한 파업 기간 중의 정근수당 지급 요청 사건에서 그 동안 임금2분설에 기초하여 생계보장적 임금은 지급하라던 판례를 번복하고 "노사간의 단체협약 등 자율적 협의나 임금 지급에 관한 관행이 없는 한 쟁의 기간 중의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하는 무노동무임금(No Work No Pay)의 원칙"을 선언하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한 목소리로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혔다. 노동계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근수당을 비롯한 생활보장적 임금의 액수가 많기때문이 아니라 이 판결이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가로막는 제약으로서 작용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무노동무임금은 88년부터 사용자와 정부가 한 목소리로 주장해 왔던 원칙이며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로 구성된 우리 나라의 노동조합에서는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관철된다면 실제로 파업을 감행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서구의 노동조합은 산업별로 구성되어 노동조합이 풍부한 파업 기금을 적립해 놓고 파업시 임금을 지급하고 일부는 실업보험 등에서 지급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파업하더라도 근로 관계는 유지되고 있으므로 실업보험이 나올 리가 없고 임금을 지급할 정도로 노조의 파업 기금이 존재할 리도 없다. 따라서 무노동무임금이 적용된다면 생계의 위협으로 조합원의 파업 참여는 급격히 줄어들어 단체행동권에 중대한 제약이 가해질 것이며,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교섭력을 약화시켜 대등한 교섭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

이번 판결은 기존의 임금이분설에 대해서 근로자가 받는 모든 임금은 근로의 대가로서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를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보수"를 의미하므로 현실의 근로 제공을 전제로 하지 않고 단순히 근로자로서의 지위에서 발생한다는 이른바 생활보장적 임금이란 있을 수 없고, 근로자의 쟁의행위의 경우에는 결근 등과 달리 근로자의 노무 제공에 대하여 노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므로 결근, 조퇴, 지각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성질, 형태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존의 임금이분설에 기초하여 정귀호, 이돈희, 이용훈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제출하고 있는데 이에 전적으로 찬성하면서 현 판례를 비판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이번 판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속 노동으로 인해 발생한 임노동관계를 민법상의 고용계약과 같이 근로와 임금의 교환관계로 바라보고 있는 민법적 시각-사회과학적으로 말한다면 부르조아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근본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전인격적인 노동력의 처분에 관한 권한 사용자에게 맡겨 놓고 있기 때문에 종속노동이 발생하며 노사의 대립이 생기며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이 요구되는 것이다. 만일 대법원의 다수 주장대로 근로와 임금의 교환관계로만 임노동관계가 구성되어 있다면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없었을 것이며 노동기본권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둘째, 따라서 노동자는 구체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이 담긴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며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 제공의 대가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이 임금을 '근로의 대가'라고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표시하지 아니하며 '근로의 대상(對償)'이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한데서도 드러난다.

셋째, 이에 따라 노동자는 파업을 벌이더라도 구체적인 노동의 제공은 하지 않지만 종업원으로서의 지위는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지위에서 발생하는 임금은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것이 바로 생활보장적 임금이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존재하는 가족수당, 주택수당, 학자금보조수당, 물가수당 등은 구체적인 근로의 제공에 따라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전인격적인 노동력을 제공한데 대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생계비를 유지하기 위해 제공되는 것이다. 대법원의 논리대로 노동이 있어야 임금이 있다면 예를 들어 우리 근로기준법상의 유급 주휴, 월차, 생리, 년차, 산전산후 휴가 등이 존재하는 것도 해명이 안되며,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가족수당, 근속수당도 노동의 제공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없어져야 한다. 다수 의견은 이런 수당도 근로제공과의 밀접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대가로서 지급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배척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근로를 제공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근로제공의 중지는 파업 기간 중의 일시적인 시점에 한하는 것이며 그 전후의 전체에 걸쳐서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근로를 제공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다수 의견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잘못된 논리이며 객관성과 불편부당성을 벗어난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돈은 저절로 돈을 낳는데 …

최근 노동자와 관련된 법원의 판결은 87, 88년의 판례보다 훨씬 후퇴한 것으로 우리 노동자에게 비쳐지고 있으며 노동자는 분노하고 있다. 법원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권력의 시녀로서의 모습으로 우리 노동자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며 이는 법의 권위와 사회 안정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만일 다수 판결에 동의한 대법관이 제대로 논리일관성을 가지고 무노동무임금을 주장하려면 그들 자신의 정근수당, 가족 수당, 체력단련비 등 생활보장적 임금부터 받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무노동무임금 원칙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거액의 불로소득을 벌고 있는 금리생활자, 임대소득자부터 없애야 하지 않느냐고 노동자들은 항변하고 있다. 노동자는 무노동무임금이면서 자본가와 금리생활자의 무노동유소득은 자본주의의 원리상 지고지당한 것으로 인정된 것인가? 돈은 저절로돈을 낳지만 노동자는 힘겨운 노동을 제공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인 것이다. 과연 다수 의견을 주장하는 대법관들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김태현 l 민주노총 총무기획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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