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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감시紙
  • 1996.02.01
  • 1720
시험과목 채택여부가 법학교육에 큰 영향 … 과목선택에 신중 기해야
작년 말에 마련된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이 입법예고를 거쳐 곧 확정될 예정이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우리 사법제도와 법률문화의 근본적 개혁의 근간이 된다. 사법시험은 판사·검사·변호사라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이들 법조인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국민을 위한 사회적 공복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일반 국민에게도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온갖 지혜를 다하여 준비되었다고 믿어야만 할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이 법학교육과 법률서비스 측면에서 합리성과 균형을 상실하고 있어 크게 우려된다.

대표적으로 문제된 사법시험과목은 일부 내용이 제외된 민법과 민사소송법, 다른 기본 법학과목과는 달리 2차 필수과목이 되지 못하고 있는 국제법, 국제거래법과 더부살이를 하도록 강요된 국제사법 및 1차는 물론 2차 과목에서도 완전히 제외된 국제경제법 등이다. 이번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법학계에서 전반적으로 검토되지 않고 있으며 위에서 언급된 특정 과목을 전공하는 일부법학교수들 사이에서만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큰 문제는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법학교수들의 중지가 반영되었다고 보이지도 않지만 이 개선안이 채택된 후에도 법학계에서 전반적인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의 가장 중요한 시발점은 사회에서의 법학과 법조의 역할일 것이다.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우리 사회의 현재는 물론 미래의 모습도 충분히 반영하였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표적으로는 국제화, 평화, 첨단 등으로 특징지워질 것이다.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이 훌륭한 것이라면, 위에서 언급된 법학과목의 문제점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사회에서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사법시험과목은 법학교육과 법조인의 양성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됨을 주목해야 한다. 전문법과대학원의 설립이 무산되고 대학에서의 법학교육 평가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시점에서 특정 법학과목이 사법시험과목으로 채택되는지의 여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생들은 사법시험과목으로 채택된 과목만을 열심히 공부하며 학교당국도 이들 과목에 대하여만 전임교수를 두려 하기 때문이다. 사법시험과목으로 채택되지 않은 법학과목은 자연스럽게 교육과 연구에 있어서 냉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이렇게 대학교에서 연구와 교육이 소홀하게 된 법학과목을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법조인들이 정부.기업 등에게 오늘날 일상적인 법 문제에 대하여 효과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될 것도 자명하다.

사법시험과목 개선안 중에서 본래의 개선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가장 문제가 된 분야는 국제법과 국제경제법이다. 국제법은 전통적으로 법학계에서 기본과목으로 연구.교육되고 있다. 그러나 웬일인지 사법시험과목에서는 기본과목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국제화 또는 세계화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지만 이번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국제법을 여전히 다른 특수과목들과 같이 1차 선택과목으로 머물게 하였다. 국제법의 교육과 연구는 그 자체로서도 국제사회의 이해에 기본적으로 요구되지만, 다른 법학과목의 올바른 이해에 필요한 기본 법학과목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오늘날 민사 분야, 상사 분야, 형사 분야는 물론 행정 분야에서도 국가간 협력이 요구되고, 그러한 협력은 국제법의 기본 연구 대상인 조약을 수단으로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어느 한 부처도 예외없이 또한 어느 한 기업도 예외없이 국제관계가 중요한 업무분야로 부각되고 있는 이때, 법과대학에서 국제법을 올바로 교육받지 않은 공무원이나 기업인의 능력의 한계는 더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에 국제경제법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사법시험과목 개선의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1994년에 종결된 우루과이라운드협상 (UR협상)에 있다. UR협상이 타결될 당시에 국내에서는 통상법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인식 부족이 통상국가로서의 우리의 지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된다는 국민적 공감이 있었다. 그런데 통상법인 국제경제법이 사법시험의 1차 선택과목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다. 최소한 이 점에서만 보더라도 이번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은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흥미로운 점은 정부의 행정공무원을 선발하는 행정고시 (국제통상직)와 외무고시에는 통상법인 국제경제법이 국제법의 일부로서나마 2차 필수과목으로 채택되어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의 통상업무에 직접.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할 법조인을 선발하는 사법시험에 국제경제법이 채택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올바르게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 새로이 포함된 '국제거래법'이 통상법으로 잘못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의미에서의 통상법은 결코 국제거래법이 될 수 없다. 국제거래법은 기업의 국제거래에 관련된 법적인 문제를 대상으로 한다. 통상이라는 것이 결국 기업의 무역활동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기업의 국제거래에 관한 법인 국제거래법이 통상에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제거래법이 통상과 관련은 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통상법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통상법인 국제경제법은 국제경제관계에서의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으로서 국제거래법의 영역과는 결코 혼동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나 전문가의 입장에서 국제거래법과 국제경제법 모두가 함께 연구될 수는 있고, 능력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이러한 학문의 자유는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법시험과목은 물론 교육 대상으로서의 법학과목은 학생의 입장에서 또한 교육적인 차원에서 타당성을 가져야 한다. 이 점에서 학문의 특성과 체계에 따른 독립성은 분명히 이해되어야 한다. 다만, 국제경제법이 독립된 과목으로서 사법시험과목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국제거래법이 사법시험과목에 포함된 사실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국제거래법이 사법시험과목에까지 포함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판단되었을 취지는 그것대로 존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가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국제사법이 국제거래법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개인과 기업의 국제적 교류가 빈번한 현실을 고려할 때 국제사법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한 법학분야이다.이런 국제사법이 신예 국제거래법에 포함된 배경이 궁금하기만 하다. 학문체계상 국제사법이 국제거래법의 일부라고 판단되었을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제거래법과 국제사법을 합치는 것이 다른 시험과목과 양적인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법학계에도 '편의주의'라는 것이 도입되었다는 징표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아직 사법시험과목의 개선에 관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남아 있다. 총무처가 사법시험과목 개선안을 사법시험령으로서 확정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의견수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령 원래의 개정취지인 대학교육 내실화와 전문법조인 육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제법, 국제사법, 국제경제법 등에 대한 문제점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이들 법학과목은 1차 제1선택군의 법학과목이 아닌 과목들과 비교하여도 초라하기만 하다. 위와 같은 사법시험과목의 문제가 올바로 해결되어 우리 법조.법학계가 다른 사회·학문분야와 함께 국제경쟁력 제고에 제 몫을 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노형 l 고려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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