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5-10-02   1677

[01호] 법관의 편의주의와 권위주의

몇 주전 남부지원 민사 단독법정에서 이 변호사가 목격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원고는 당사자가 직접 나왔고 피고는 대리인인 변호사가 출석하였다. 소송의 대상이 된 분쟁 내용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첨예하게 이해와 감정이 대립되고 있어 기필코 해결이 되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판사가 보기에는 소송의 대상으로 반드시 적합한가에 의심이 들었는데다, 기재된 청구취지 등도 법률의 요건에 제대로 맞지 않아 짜증이 날 판이었다. 판사는 즉시 원고에게 재판의 대상으로는 적합치 않은 듯하니 다른 방법으로 잘 해결하도록 하고 소는 취하할 것을 권유하였다. 원고가 자신의 주장을 거듭 내세우자 판사는 친절하게, 때로는 근엄하게, 또는 단호한 어조로 장장 20분 가까이 설득하여 결국 소를 취하하도록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자 난데없이 피고 대리인이 소취하에 동의를 못하겠다고 나섰다(민사소송법상 피고가 변론을 한 이후로는 동의가 있어야만 소취하가 가능하다). 피고 변호사는 원고가 후일 다시 제소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판결로써 종결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사건을 쉽게 한건 떼려던 판사는 변호사에게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성공보수 때문에 그러시는가요?"

비슷한 시기에 같은 법원의 형사 단독 법정에서 발생한 법정구속 사건은 이미 보도가 되어 잘 알려져 있다. 해고 근로자들 4명이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다 업무방해 등으로 약식기소되어 벌금형이 선고되었으나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였다. 첫번째 공판기일(7월 21일)에 피고인 4명이 모두 출석하였고 (그 이전에 공판기일이 한 번 지정되었으나 피고인들에 대한 통지가 적법하게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번째 공판(8월 25일)에서 피고인 2명만 출석하고 2명은 결석하였다. 이유를 묻는 판사에게 출석한 2명은 나머지 2명의 개인사정을 변명하였다. 기소된 범행의 내용이나 피고인들의 태도가 사뭇 투쟁적이라고 느낀 판사는 재판을 피고인들 편의대로 진행하는 것이냐고 힐난하였고, 그에 대하여 출석한 피고인들은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맞받았다. 그리고 출석한 피고인 2명은 즉시 법정구속이 되고 재판은 다음 기일로 속행되었다.

전자는 다소 희극적인데 반하여 후자는 심각하다. 두 가지의 예가 모두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전후의 복잡한 사정들이 생략되어 있고 전해진 이야기들이라, 소송 당사자나 법원 쌍방에 반론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 정도로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단순화한 두 사례는 우리 법원의 소송 진행상 편의주의와 권위주의의 전형으로 보아 크게 무리가 아니므로, 이야기를 진전시킬 수 있다.

두 법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소송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소송절차상 판사의 편견에 기한 일방적 진행으로 크게 불이익을 입었다고 보는 반면, 법원을 비롯한 법조 안팎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법조인들 다수가 경우에 따라서 그럴 수 있는 적어도 위법하지는 않은 일로 생각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법치국가의 시민과 법원 사이에 일어나는 중대한 시각차이요 의사불소통의 현상이다.

민·형사를 불문코 소송절차를 원활하고 신속히 진행시킴과 동시에 심리를 적절히 행하여 소송을 종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재판장에게 주어진 권한이 소송지휘권이다. 민사법정에서 법관은 불명료한 소송자료를 보충하고 정리하기 위해 석명권을 행사할 수 있고, 가장 간편한 방법에 의한 분쟁의 종결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명백히 반대의사를 표시함에도 불구하고 재판 외의 종결을 고집하고 강권하는 것은 재판권을 침해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소취하 뿐만 아니라 조정절차와 화해기일에 있어서도 유사한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신이 있으면 각하나 기각의 재판을 하면 될 것이다. 형사법정에서의 법정구속은 고유의 의미의 소송지휘권이나 법정경찰권의 행사가 아닌 피고인에 대한 강제처분으로서의 구속일 뿐이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상 구속의 일반적인 요건을 엄격히 갖춘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법정 태도가 불량하다든지 법원을 무시하는 언동을 보였다는 주관적 판단으로부터 도주의 우려 등 구속요건을 추단하여 불구속 피고인을 구속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그러한 경우 필요하다면 법원조직법상 법정경찰관을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위의 사례와 아울러 형사법정에서 법관의 반말, 신경질적인 어투, 피고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권위주의적 진행은 피고인의 법정무시적 태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모두 명심하여야 한다.

종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던 편의주의·권위주의적 법관의 태도는 시민들이 법치주의적 감수성을 갖추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서두에 든 한 편의 희극과 한 편의 비극은 고쳐야 할 그 첫번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준다.

차병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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