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6-04-01   2774

[04호] 위자료지급 판결 받고도 인지대 없어 소송진행 못해

13년 법정투쟁의 시작-의료사고

3월 14일 서울고등법원 민사제7부(재판장 이범주 부장판사)는 지난 83년 교통사고로 인해 한양대학병원에 입원했다가 조영제(Pantopaque) 과다투여로 인해 지주막염 등 합병증으로 고생해 온 이난향씨(50세, 다방경영)에게 한양대병원 측에서 7천 7백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난향씨는 한양대 병원에서 강제퇴원을 당한 후 의사 정모씨를 업무상 과실치상 등 혐의로 청와대에 진정을 하고 검찰에 고소하였으나 불기소처분되었고, 항고 및 재항고도 모두 기각당했다. 이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으나 89년 헌법재판소에서는 의료과오는 인정되지만 공소시효가 소멸되었다는 이유료 기각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의료사고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고 현재까지도 정신병원 치료를 받는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90년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심에서 8억5천여만원의 위자료를 청구, 재판부가 두통만을 후유증으로 인정해 이씨 모자에게 7백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다시 항소, 위와 같은 판결을 얻게 된 것이다.

손해배상소송 승리, 그러나 거액의 상고심 인지대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심의 경우 이씨가 영세민임을 이유로 인지 면제신청이 받아들여 졌으나 항소심에서는 면제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씨는 인지대를 위해 빚을 내야만 했다.

3월 14일 판결로 인해 이 사건이 해결된 듯이 보였으나 고등법원의 인용금액에 불복하여 상고하려던 이난향씨는 또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상고심에서의 인지대 문제이다. 3월 26일 항소심에서의 위자료에 대한 가집행명령이 내려졌으나 3월 27일 한양대 측의 강제집행정지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만 것이다. 현재 이씨는 1심의 세배나 되는 인지대를 마련할 방법이 막연하여 또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사소송법은 제118조 이하에 소송비용을 지출할 자력이 부족한 자의 신청에 의하여 소송상 구조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1990년 민사소송법 개정에 의해 소송구조의 요건이 완화되어 '자력이 부족한 자' 그리고 '패소할 것이 명백한 경우가 아닐 것'에 해당되면 재판 비용과 변호사 비용을 지급유예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이용은 1년에 10건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인지 면제신청을 받아들일 것인지 이난향 씨는 안타깝기만 하다.

인지대가 소송의 길을 막는다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데 드는 인지대는 소가에 1,000분의 5를 곱하여 산출한 금액이다. 당사자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더욱이 항소를 하려면 제1심의 배액 상당의 인지대를 납부하여야 하고, 대법원에 상고를 하려면 제1심의 3배 상당의 인지대를 납부하여야 한다.

보통 납득하기 어렵거나 억울한 사정 등이 있어서 항소, 상고를 하는 것인데도 인지대 부담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1심과 항소심 또는 상고심의 인지대 차별을 두는 것 자체가 결코 합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항소와 상고를 남용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구실도 있겠지만 하급심의 심리를 강화하고 충실히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고 일반 시민의 정의감을 만족시키면 남항소와 남상고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인지대 뿐 아니라 이씨가 2심에서야 겨우 신청한 신체감정에만 3∼4백만원이 소요되었고, 항소심의 재판비용도 이씨가 80%, 한양대 측이 20% 부담하도록 판결이 내려지고 말았다. 현재 신체감정 및 정신감정의 경우는 예규에 마련된 감정료 외에 병원에 진찰비 등을 별도로 지급해야 하는데 이 경우 의료보험 혜택도 없는 형편이다.

서민에 대한 법률구조, 제도화 되야

제177회 국정감사 대법원 제출자료에 따르면 지난 94년 9월부터 95년 8월까지 1년동안 인지미첨의 이유로 상고가 각하된 사건이 110여건에 이른다. 이와 같은 인지대의 과다한 책정은 법원에 쉽게 다가가는 것을 막는 또 하나의 장애가 되며, 비싼 감정료 또한 재판에서의 충분한 공격방어를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에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이난향 씨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민사소송법상의 소송구조제도에 의거하여 인지 면제신청을 대법원에 하거나,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조력 의뢰, 대한변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법률구조위원회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 있다.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항소심에서도 아들에 대한 위자료가 원하는 만큼 인정되지 않아 억울하지만, 인지대가 없는 지금 한양대 병원측의 상고가 기각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지 않냐는 이씨에게 힘을 북돋워 줄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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