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2-05-07   5741

검찰수사, 입회계장이 다한다?

박모씨는 검찰직원의 불법청탁수사로 무고한 옥살이를 했다며 참여연대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같은 피해는 입회계장 단독수사 관행이 빚어 낸 것이다. 이런 관행은 “담당검사 얼굴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민원인들의 희망을 낳고 이는 검찰에 대한 불신의 단면이기도 하다.-<편집자 주>

억울한 옥살이

6개월간의 옥살이 끝에 무죄확정판결을 받은 30대 사업가가 검찰직원의 불법청탁수사에 의해 무고하게 구속되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인천일보 2001년 4월 19일자) 억울한 사연의 주인공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37세의 박모씨. 박씨는 지난 97년 12월 곽모씨(59세)에 의해 횡령혐의로 고소되어 인천지검에 의해 구속기소되었는데, 이때 고소인 곽씨는 사건을 담당한 인천지검 김00 검사실의 정봉규계장에게 2차례에 걸쳐 8백만원을 건네며 사건수사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피해자 박씨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속기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1심판결이 선고되기까지 6개월간 옥살이를 하는 동안 건설회사가 도산하는 등 수십 억원대의 재산을 날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명백한 뇌물수수이며 검찰권의 남용이다.

정 계장은 그 후에도 자신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기 위하여 박씨 구속 후 4개월이 지난 98년 4월 6일 오후 7시쯤 구치소로 찾아와 옷을 모두 벗기고 갖고 있던 서류와 가족들의 편지까지 읽어본 뒤 ‘선처해줄 테니 재판에서 죄를 시인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소인 곽씨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곽씨는 ‘돈을 줬는데도 사건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고소인이 무죄를 받았다’며 정 계장에 대한 진정서를 인천지검에 제출했다고 한다. 인천지검은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진정서를 낸 곽씨와 수원지검으로 발령이 나 근무중인 정 계장을 각각 소환해 조사를 벌였으며 정 계장은 지난 1월 22일 대검찰청으로부터 파면 당했다. 검찰은 정 계장이 돈을 받은 것은 “청탁수사의 대가가 아니고 빌린 것”으로 진술했다며 파면조치에 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해자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 계장의 행위는 수뢰 및 직권남용 등의 범죄에, 고소인 곽씨 역시 뇌물공여 및 무고혐의 등에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정 계장 및 곽씨에 대한 구속수사와 철저한 진상의 규명은 물론이고 피해자 박씨에 대한 명예회복 및 피해보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한가?

입회계장 단독수사 관행이 원인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그것이 검찰직원의 일탈적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우발적 피해가 아니라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또한 발생할 우려가 높다는 점에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계장단독수사의 관행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수사의 주체로서 검사만을 규정하고 있다. 검찰청 직원은 독립된 관청인 검사의 국가형벌권 행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업무보조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은 마치 검찰 계장이 수사의 주체인 양, 행세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중요사건의 경우는 그러하지 않지만,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소위 “계장” 또는 “주임”이라고 불리는 7급 내지 8급의 검찰직원(정식직급은 “주사”, “주사보”에 해당한다)이 고소인조사와 참고인조사를 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으며 심지어는 공소장을 작성하기까지 한다. 검찰조서를 보면 “검사 아무개가 검찰주사(보) 아무개를 입회하게 하고 OOO를 조사한다”고 부동문자가 적혀있으나, 사실상 검찰주사가 묻고 피의자, 참고인이 대답하는 것을 검사가 입회해서 간여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와 함께 “검사의 수사를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중대한 기본권침해행위가 아닐 수 없다.

계장단독수사의 관행에 따른 피해를 뿌리뽑기 위해서 검찰청 직원에 대한 엄중한 지휘감독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검찰의 수사구조의 개혁이다. 검사 1인당 1달에 300건 이상을 처리해야 하는 수사현실에서 검사가 기획하고, 참고인조사하고, 피의자신문 받고, 공소장까지 쓰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부실한 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검찰업무가 억울한 사람의 신원(伸寃)을 해결하고 범죄 없는 사회를 구현하는 정의로운 사법서비스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검사의 증원 및 교육의 강화와 함께 자동차관리법, 도로교통법위반 등 행정형벌에 해당하는 사건을 검사의 업무에서 제외시키는 방안 등이 하루속히 현실화되어야 할 것이다.

사법처리와 검사의 지휘책임 물어야

그동안 검찰이 국민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정치검사들의 명예욕과 출세욕에 의해 대다수의 의욕적이고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들이 부당한 평가를 받았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검사 개개인을 보건대 사회정의와 범죄일소에 누구보다도 강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격무와 (변호사들에 비해) 박봉인 월급에도 불구하고 밤을 세워 일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검찰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아직도 차갑다. 딱히 정치적인 사안이 아니더라도 검찰의 업무처리가 공명정대하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이번 사건을 당한 박모씨는 검사도 청탁사실을 묵인하고 동조했으리라고 단정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검찰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이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기대 말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검찰직원이 검사를 대신해 수사를 하면서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지휘감독을 해야할 검사는 제 역할을 방기하며, 범죄혐의가 있는 검찰직원을 단호하게 처벌하지 않고 늘 “제식구감싸기”로 일관하여 잘못을 감추려고만 한다면 ……폭탄주 안먹기 결의를 한다거나, 친절스마일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을 따뜻하게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유식 | 변호사, 참여연대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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