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4-09-25   1570

[판결비평] 정치관여는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 재판부?!

지난 9월 11일,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1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 혐의는 유죄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핵심은 “국정원이 정치에 관여한 것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작성한 수 많은 댓글과 트윗글을 보았던 시민들, 심지어 현직부장판사와 법원 공무원까지도 비판을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사법감시센터 서보학 소장의 비평문을 소개합니다.

 

 

정치관여는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제21형사부 2014. 9.11.자 2013고합577 등

공직선거법위반, 국가정보원법위반 

판사 이범균(재판장), 이보형, 오대석

 

 

 

           서보학 / 참여연대사법감시센터소장,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보학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경희대 법전원 교수

 

 

지난 2014년 9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는 피고인 원세훈의 국가정보원법위반 및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정치에 관여한 혐의는 인정되어 국가정보원법은 위반이지만 선거개입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정보원이 원세훈의 지시에 의해 정치에 관여한 것은 맞지만 대선에 개입하여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할 때 국정원이 대선국면에서 정치에 개입했다면 분명히 선거를 염두에 두고 개입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일진대 재판부는 애써 국가정보원의 정치관여행위와 대선 간의 관련성을 부인하였다. 때문에 동료 판사에 의해 이 땅의 법치주의를 죽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와 같은 판결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럼 이 판결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판결문 속에 드러나 있는 모순점과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 판결문은 어떠한 행위를 선거운동이라고 보기 위해서는 특정후보자의 당선 내지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성과 그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는 드러나는 능동적·계획적인 행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수행한 사이버 활동이 제18대 대선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인 행위로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판결문은 바로 앞 문단에서 스스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이 제18대 대통령선거 시기 즈음에도 정부의 정책이나 국정성과 등을 홍보하는 글을 작성 및 게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시책에 반대하는 야당 또는 야권 정치인들을 반대·비방하는 글을 작성 및 게시하였는데, 당시 제18대 대선의 후보자 또는 후보예정자 등과 그들의 소속 정당에 대한 반대·비방 취지의 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사실이 인정되는바,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제18대 대통령선거 시기에 선거운동을 하였고, 이와 같은 선거운동을 피고인들이 지시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라고 인정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이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여당의 정책이나 국정성과를 홍보하는 대신 야권의 대선후보자·후보예정자와 소속 정당에 대한 반대·비방 취지의 글을 작성하여 올렸다면 이보다 더 명확하게 특정후보자의 당선 내지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성을 추론할 수 있는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명확하게 ‘누구를 당선시켜야 한다’ 또는 ‘누구를 낙선시켜야 한다’라고 적지 않았다고 해서 내심의 의사와 목적성을 추론할 수 없다면 이는 재판부의 상식적인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시장기를 느껴 ‘배가 고프다’라고 말했다면 이는 ‘밥이 먹고 싶다는 뜻’을 말한 것이지, 명확하게 밥을 먹고 싶다고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밥을 먹고 싶다는 내심의 의사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정부·여당의 정책·국정성과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면서 대신 야권의 대선후보자·후보예정자와 야당에 대한 반대·비방 취지의 글들을 작성·게시한 행위는 특정 대선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를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훈련 받은 심리전단 직원들의 조직적인 사이버활동 이상으로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상황이나 맥락에서 행위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이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그리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그 행위의 명목뿐만 아니라 그 행위의 태양, 즉 그 행위가 행하여지는 시기ㆍ장소ㆍ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하여 그것이 특정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하는 목적의지를 수반하는 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4.1.23. 선고 2013도41465 판결 참조)라고 밝힌 대법원의 입장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한편 판결문과 같이 선거운동의 개념을 목적성·능동성·계획성에 의해 좁게 해석하는 것은 일반 사인과 시민단체의 활동이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나 타당한 입장이다. 시민들의 정치적 기본권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기 위해서는 선거법 위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헌법과 법률에 의해 정치중립·선거중립의 엄정한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기관과 공무원에 대해서는 선거운동의 성립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합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애써 국정원 직원들의 행위에 대해 선거운동의 해당가능성을 부정하려고 애쓴 재판부의 입장은 헌법의 지엄한 명령을 저버린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판결문은 피고인 원세훈이 선거개입의 목적의사를 가지고 직원들에게 선거운동을 지시하여 그에 따라 선거운동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과연 그럴까? 원세훈의 발언인 소위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보면 원세훈은 야권을 종북세력으로 단정하고 선거에서 이들을 배제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 “금년에 여러 가지 대선도 있고 해서, 그리고 이번에 또 13명인가? 통합진보당만도 13명이고 종북 좌파들이 한 40여명이 여의도에 진출했는데 ….”,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종북 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가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정권을 잡을라 그러고 …”, “종북 좌파 세력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하는 등 사회 제분야에서 활개치고 있는데 대해 우리 모두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함.”

 

‘야권은 곧 종북세력’이며 ‘선거에서 반드시 종북 세력을 배제해야 한다’ 이것이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지시하면서 원세훈이 강조한 핵심내용이다.

 

이러한 발언들에서 원세훈의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에게서 선거에 개입할 목적의사를 인정할 수 없을까? 최소한 원세훈에게서는 대선에서 여당 후보자를 돕고 야당 후보자를 불리한 상황에 빠트리려고 도모한 편면적인 선거개입의 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

 

 

또한 판결문은 – 설혹 직원들의 행위가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 직원들의 구체적인 행위들이 원세훈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판결문은 앞서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관여행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 원세훈에 대해서는 공모공동정범 관계를 인정하였다. 즉 원세훈이 직원들이 행한 “범행의 구체적인 실행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전체적인 범행의 내용에 대하여 인식하고 이를 지시하였음이 인정되는 이상 공모관계를 인정함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여 유죄를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같은 법논리가 똑 같은 행위인 직원들의 선거법위반행위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즉 원세훈이 직원들의 정치관여행위에 대해 공모공동정범관계에 있다면 선거운동에 대해서도 공모공동정범관계에 있는 것이다. 같은 사실관계를 법이론적으로 달리 판단한 재판부의 판단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셋째, 판결문은 원세훈이 2012년 8월부터 11월까지 부서장 회의에서 선거에 개입하지 말 것을 반복적으로 지시했다는 점을 근거로 선거운동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사실상 선거개입을 지시한 다른 많은 발언들은 제쳐두고 소위 ‘알리바이 발언’에 지나친 믿음을 준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은 대선 직전까지 여당 후보를 지원하고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고, 원세훈이나 지휘부에서도 이들의 행위를 금지하거나 중단시키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한 점이 확인되지 않았다.

 

 

국정원과 같이 상명하복의 규율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부하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통제되는 조직에서 현장 직원들의 선거개입행위가 원세훈과 지휘부의 용인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추후 혹 문제가 될 경우를 대비하여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한 알리바이성 발언에 지나치게 큰 믿음을 준 재판부의 맹목적인 선의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넷째, 판결문은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관여행위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매우 엄중한 범법행위라고 지적하였고, 특히 원세훈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고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활동 관여행위를 방지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무를 저버려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말하였다. 그럼에도 정작 양형에 있어서는 원세훈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하여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말았다. 용두사미 격인 노골적 봐주기 판결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판결문은 국정원의 심리전단 활동이 원세훈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관행이었던 점, 원세훈이 이런 정치관여의 지시가 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점, 북한의 허위사실 유포 및 흑색선전에 대응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양형에 유리한 참작사유로 들었다. 

 

온 국민이 민주법치국가의 성숙을 지향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밀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라는 잘못된 관행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 내려간 행위는 오히려 국민들을 배신한 행위로서 더욱 중하게 처벌되어야 할 사유가 아닌가 싶다. 원세훈이 ‘법의 부지(不知)’ 상태에 있었다는 지적은 실소를 자아낸다. 민주사회에서 국가기관이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사회과목을 공부한 평범한 중·고등학생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원칙이다.

 

 

게다가 대법원은 일관되게 ‘법의 부지’를 면책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 비밀정보기관의 장이 정치개입이 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지적은 다름 아닌 원세훈에 대한 심한 모독이다. 마지막 사유인 북한의 허위사실 유포 및 흑색선전에 대응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여당을 홍보하고 야당을 비방하는 정치개입행위와 무슨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재판부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원세훈의 중범죄행위를 사실상 면책해 줌으로써 이 땅의 법치주의와 국민들을 모독하였다고 생각한다. 

 

흔히 ‘판사는 판결로 말해야 한다’고 한다. 사적 의사표현을 가급적 자제함으로써 매사에 중립성을 지키고 판결의 권위를 높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법언이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전제는 판사의 판결이 최소한 ‘논리와 경험칙’에 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상식’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판사에게 심증을 형성할 자유와 자신의 심증에 따라 결론을 내릴 자유가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 자유로운 심증의 형성이 ‘논리와 경험칙’ ‘상식’에 반하는 것이면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권위 있는 판결이 될 수 없다. 온갖 어려운 법 논리와 구차한 설명으로 무장하더라도 그것은 판결의 형식을 빈 궤변에 불과하다.

 

 

다시 모두의 문제제기로 돌아가 보자. 국정원이 대선국면에서 정치에 관여하는 행위를 했다면 이러한 행위는 선거를 염두에 두고 선거에 개입한 행위로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지 않을까? 국민을 상대로 판결을 내 놓으면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주장’하는 재판부의 용기를 칭찬해야 하는 것인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의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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