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법원개혁 2020-09-09   1752

[칼럼] 사법농단 모른다는 이흥구 대법관

이흥구 선임 대법관 인사청문회 관전기

어제(9/8)는 신임 대법관인 이흥구 대법관이 취임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대법관은 사법농단 가담자로 알려진 권순일 대법관의 후임이자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던 중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한 1호 법관입니다. 사법불신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요즘 신임 대법관으로서의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할 것입니다. 30년 가까이 법관생활을 한 그가 가지고 있는 법관으로서의 가치관과 사법개혁에 대한 의지가  어떠한지 확인하기 위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영민 간사가 인사청문회를 모니터링했습니다.   

글. 박영민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지식은 절대적 것이 아니다. 무엇이 앎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결정되는 과정에는 권력이 작용한다. 어떤 것은 알고 있을 때 힘이 되고, 때로는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이, 알 필요가 없는 위치 자체가 권력의 반영이기도 하다. 권력을 갖지 못한 자는 나의 세상과 권력자의 세상 모두를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반면 권력을 가진 자는 반쪽짜리 세상만을 알면서도 여유롭게 살아간다.   

앎과 모름의 권력

어제(9/8) 취임한 이흥구 대법관이 인사청문회에서 보인 태도는 권력에 둘러싸인 지식의 의미를 확연히 드러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살이까지 한 학생운동권 출신으로서 사회적 약자의 삶을 알 수 있었다는 그의 답변은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다수의 법관과는 다른 위치성을 나타냈다. 

 

색다른 위치성을 기반한 그의 주장은 함의하는 바가 크다. 이 대법관은 ‘국가보안법 1호 법관’이라는 타이틀을 ‘약자의 삶을 아는 법관’으로 치환했다. 약자의 삶을 아는 것을 공정한 재판과 연결시키며, 실질적 평등을 완수하는 것이 법원의 책무임을 분명히 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특혜가 아닌 다수의 부당한 횡포에 대항하여 약자를 지키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법적 지식을 넘어선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닌 부당한 권력에 대항했던 시절에 몸소 겪으며 깨달은 지식을 토대로 한 주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은 반쪽짜리가 아닌 약자와 강자의 세상을 직접 넘나들며 획득한 지식일 것이다. 

그런데 ‘사법농단’은? 

법관으로서의 삶이 너무 바빴던 탓일까? 눈앞에 놓인 재판만을 공정하게 처리하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모두발언때와는 달리 인사청문회 위원들의 질의응답 시간에 이흥구 대법관은 지나치게 모르는 것이 많았다. 아는 바가 없으니 답변도 충분하지 않았다. 제대로 답변할 수 없음에 양해를 구하는 경우가 반복됐다. 

 

직접 평석까지 할만큼 관심있게 봤던 2013년 GM 통상임금 재판이 사법농단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는 사실도, 동료 법관이 ‘위헌적 행위’를 했지만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재판에 외압이 있다면 직을 걸어서라도 저항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지난 몇 년간 현실에서 벌어졌던 외압의 구체적인 내용조차 몰랐다. 

 

청문회를 보는 내내 궁금함이 앞섰다. 다수의 시민들도 알고 있는 사법농단이었다. 뉴스 한 꼭지, 신문 한 페이지만 정독해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법한 사건들을 사법부의 일원이자 30년이 가까이 법관 생활을 한 사람이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성을 요구받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도 최소한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와 관련된 일은 알고 있지 않을까? 자신의 회사가 매일 같이 뉴스에 나오고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데 직장 동료들과 한 마디 대화라도 나누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찌된 일이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점심시간의 짧은 토론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2020. 7. 16. 10시 국회 소통관, 사법농단 법관 탄핵과 피해자 구제 등 사태해결 촉구 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2020. 7. 16. 10시 국회 소통관, 사법농단 법관 탄핵과 피해자 구제 등 사태해결 촉구 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몰라도 되는 것

추측해 보면 이렇다.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었구나. 몰라도 되는 삶을 살고 있구나.  사법농단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될 위치에 있었고 대법관 후보자가 되어 청문회에 오는 그날까지도 ‘사법농단’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세상만사를 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이 모든 일에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법관이 사법농단을 모른다는 것은 단순한 무지를 뜻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대법관이 되고자 청문회에 나온 사람이 사법농단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대법관 후보자로서 시민들 앞에 책임있는 자세로 답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답변은 비단 사실관계 확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음에 대해 청문위원들에게 양해를 구할 것이 아니라 반성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청문회 내내 주된 주제로 다뤄진 사법불신과 법관의 독립에 대해 성실히 답변했지만 정작 사법농단에 말을 아끼는 태도는 권력을 가진 자가 취할 수 있는 반쪽자리 세상에서의 안일함이다.  

 

의심이 제기된다, 오해가 있다는 답변도 마찬가지다. 사법행정권 남용, 독립적이지 못한 재판와 관련한 질의에 이흥구 대법관은 오해와 의심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제 그런 재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겪지 못했다는 것이다. 판결에 대해 비평이나 토론은 민주사회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힌 이흥구 대법관이지만 판결에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그러나 사법농단은 실재했다. 법관과 법원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거래대상이 되었다. 사법농단 피해자들이 이흥구 대법관보다 법적 지식은 부족할 수 있지만 사법농단의 전말은 훤히 꿰고 있다. 심지어 사법농단은 검찰이 기소까지 한 사건이고 사건을 뒷받침할 사법부 내부고발 및 문건들도 상당하다. 반쪽짜리 세상을 보면서 전체를 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의심과 오해라고 외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라떼는’ 반갑다

기회는 있다. 사법농단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책임있는 자세를 보일 기회가 앞으로 6년이나 남았다. 이흥구 대법관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른 것은 그가 약자와 강자의 세상을 넘나든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약자의 삶을 알기에 더욱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었다는 이흥구 대법관의 주장은 사법농단 피해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어제 청년시절 이흥구의 열망을 실현시킬 수 있을 만한 힘이 있는 대법관의 자리에 앉았다. 그때의 그 열망이면 사법불신을 해결할 개혁적 행보를 충분히 보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광주에서의 학살에 분노하고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20대 이흥구의 ‘라떼는’이 사법불신을 타파하는 힘으로,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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