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5-01-10   1536

<안국동窓> 사법적극주의와 사법개혁

교육부총리 임명을 둘러싼 인사파문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때, 조용하지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비난과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다름 아닌 법원의 판결에 대한 것이다.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법원의 판결

사례1) “사회에 기여한 공익성이 인정된다면 비록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 하더라도 구제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국립대 교수인 모씨가 혈중 알코올 농도 0.228% (0.05%이상이면 면허정지, 0.1%이상이면 면허취소)의 만취 상태에서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기사가 잠시 차에서 내린 틈을 타 택시를 운전(절도죄가 성립할 듯도 하다)하다가 면허가 취소된 사건에서, 법원은 ‘구제’의 근거로 ‘공익에 기여했다’든지, ‘지방출장이 잦다’든지 하는 이유를 내세웠다.

사례2) 현직 판사의 전세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 기소된 30대 여성에게 법원이 검찰구형량(4년)보다 많은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하였다. 1억원 이상의 전세금 사기 사건이라도 징역 10월에서 1년 6월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형기준이라는데, 이 여성에게 내려진 중형은 감히 ‘현직 판사’를 상대로 사기를 친 괘씸죄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이례적으로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례3) 청소년 성매매 누명을 쓰고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회사원이 검찰의 막무가내식 수사에 항의하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1심에 이어 항소심 법원은 “검찰이 수사를 잘못한 면이 있지만 합리성을 잃은 정도는 아니다”라며 원고패소판결하였다. 재판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난 검찰조사관의 폭행, 허위진술 강요, 무고와 손해배상에 대한 협박행위는 철저히 무시되었고, 결국 소송결과에 절망한 원고는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트랜드, 사법적극주의?

물론 위에서 든 몇 가지 사례는 특수한 것일 수 있다. 법관도 다양한 개성과 경험을 갖고 있으므로 다양한 판결을 내릴 수 있고, 그도 인간이기에 실수도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삼심제 등을 통해 재판의 오류를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내려진 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걱정과 우려를 갖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미묘한 상황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 중 단연 첫머리에는 대통령탄핵사태와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은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자,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률을 물거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사법적극주의’의 등장이라 할 만하다. 그동안 정치권력에 의해 이용되기는 하였으나 (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사법살인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저항하지는 않았고 무엇보다도 ‘법적 안정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사법권(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사법권이다)이 정책결정과정에 적극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사법적극주의라는 그릇 안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 하는 점이다.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사법적극주의의 본래적 의미대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기능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득권을 보호하고 보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사법권이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세 개의 판결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후자와 궤를 같이하는 것은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사법개혁의 필요성

필자는 ‘사법적극주의’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사법적극주의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은 ‘사법개혁’일 것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법원은 개혁의 사각지대로 존재해 왔다. 모두가 변하는데도 법원은 변하지 않았다. 사법개혁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문민정부 이래로도 논의만 무성했을 뿐, 별무성과였다. 그 결과 사법은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고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최근 대법원산하에 설치되어 활동하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가 대통령 산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로 전환되었다. 이미 사개위에서 일정이 합의된 로스쿨 도입(2008년), 배심참심제 혼합형 국민의 사법참여제도(2007년), 법조일원화 추진(2005년부터 점진추진), 고등법원에 3심을 맡는 상고부 설치(2007년) 등의 과제가 사개추위에 주어졌다. 사개추위에 거는 기대도 크지만, 걱정의 목소리도 높다. 사개추위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법’을 갖고 싶다.

장유식 (협동처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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