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10-04-15   3284

[한명숙 1심 판결비평 ①] ‘침몰과 명예회복’ 기로에 선 검찰

지난 4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 김형두 부장판사)가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1심 판결 뿐 아니라, 공판과정을 통해 검찰 수사와 공소의 문제점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위원회(위원장 : 최강욱, 변호사)는 지난 14일 오후 3시, <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로 본 검찰권 남용 >이라는 주제로 판결비평 공개좌담회를 열었습니다.

이 좌담회는 한 전 총리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검찰의 수사권·공소권 남용과 이를 통한 검찰의 정치적 행태를 낱낱이 비판하고, 이번 1심 공판과정을 통해 새롭게 조명 받게 된 공판중심주의와 집중심리제 등의 의미를 평가하면서 검찰개혁을 위한 논의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 1심 무죄 판결 통해 검찰권 남용 비판과 공판중심주의 의미 평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인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좌담회 사회를 맡았고, 4명의 패널 가운데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김인회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는 법 이론적 근거에 바탕을 두고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아울러 한 전 총리 1심 공판 취재를 맡았던 이승훈 기자(오마이뉴스 정치부)와 이번 1심 공판을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방청한 파워블로거 정광현 씨(‘미디어 한글로’ 블로그 운영자)도 패널로 함께해 공판과정과 그 현장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하며 의미 있는 흐름들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참여연대·한겨레 하니TV·오마이뉴스·라디오21 사이트를 통해 약 2시간에 걸쳐 공동생중계된 좌담회 전체 영상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한겨레 하니TV를 통해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를 통해 좌담회 패널로 참여한 하태훈 교수, 김인회 교수, 이승훈 기자, 블로거 정광현 씨의 비평 글과 함께 좌담회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금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지성,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검사)의 비평 글도 차례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좌담회 영상 아래의 글은 그 첫번째 글로 하태훈 교수가 선고공판 전과 후에 각각 쓴 비평을 소개합니다. 본 판결비평 뿐 아니라, 이후 참여연대와 민변이 앞장설 검찰개혁을 위한 발걸음에도 많은 관심과 지지, 그리고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와 민변의 판결비평 좌담회 < 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로 본 검찰권 남용 >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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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과 명예회복’ 기로에 선 검찰

하태훈 교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하태훈 고려대 교수아니나 다를까.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주말에 만난 몇 사람의 입에서는 ‘뭔가 있었겠지,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덧붙였다. ‘도덕적 이미지, 타격 입은 거 아냐?’ 이처럼 검찰에게 치욕적인 무죄판결이 났음에도 검찰은 판정승을 거둔 거나 마찬가지다.

검찰의 한 전 총리 흠집 내기와 이에 동조한 언론의 피의사실공표로 지방선거를 앞 둔 한 전 총리는 무죄의 승리만큼의 큰 상처를 입었다. 뇌물의 액수와 제공방법에 관한 공여자의 진술이 오락가락했지만 이미 언론을 통해 오찬장 의자에 돈을 놓고 나왔다는 주장은 기정사실화되어 많은 유권자의 기억에 잔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죄판결이 두려웠던 것일까. 무죄판결로 받게 될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한 잔꾀였을까. 판결 선고를 앞 둔 피고인을 돈이나 받아 챙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선고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것일까. 검찰은 선고 일을 하루 앞두고 한 전 총리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고 언론에 피의사실을 공표했다. 아무리 이해당사자의 신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수사개시 여부와 시점은 여러 가지를 고려했어야 한다. 지난달부터 내사를 했다는 언론보도이고 보면 하루를 못 참아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압수수색을 할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과연 김준규 검찰총장이 강조하던 ‘신사다운 수사’, ‘과거 관행에서 탈피하는 수사’란 말인가. 표적수사와 선별기소 등으로 ‘정치인’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만드는 권한 남용도 여전하다. 명백한 증거도 없이 돈을 건넸다는 사람의 진술에 의존하여 기소하고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서 유죄의 여론을 형성하려 애쓰는 모습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변한 것 없는 검찰의 모습이다.

공판중심주의 형사절차에 적응하지 못한 미숙함도 드러냈다.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된 개정 형사소송법에서는 법정에서의 공격과 방어를 통해서 재판부가 유죄의 심증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자백조서만으로도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던 조서재판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태를 답습했다.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검찰은 기자회견을 통해 격앙된 어조로 재판부를 비난했다. 검찰이 아무리 피의사실을 유포하고 브리핑을 해대도 진실은 흔들릴 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이 거악을 척결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보여도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져야 한다. 장외에서 재판부를 공격하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반칙행위다. 항소이유서와 항소심 법정에서 할 얘기를 언론에 퍼뜨리면 여론을 만들어 보려는 속셈으로 비춰진다.

‘주요 핵심쟁점에 대한 판단을 누락해 짜 맞춘 반쪽짜리 판결’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할 것이 아니라 1심 공판절차를 되돌아보면서 항소심을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 언론과 여론에 기댈 수는 없을 것이다. 1심 재판에 문제가 있다면 항소심에서 증거를 갖추어 반박하면 되고, 공여자의 진술이 강압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진술의 임의성에 관하여 입증하면 될 일이다.

한 전 총리 사건의 담당 부장검사는 무죄판결의 치욕을 당하고서도 영전했던 선배검사들을 보면서 돈을 줬다는 곽 씨의 진술 외에 물증도 없이 기소하는 공소권 남용의 유혹을 느꼈을 수도 있다. 대검 중수부 수사사건의 무죄비율이 높아지고 대형 정치적 사건에서 줄줄이 무죄판결이 내려지는데도 책임지는 자가 없다면 죄 없는 자를 무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하는 검찰권 남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미네르바 사건 등 무죄 사건을 맡은 검사들에 대해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면 사후 평가 절차를 엄격히 해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새로운 건으로 한 전 총리를 틀어쥐고 있는 검찰수뇌부는 침몰이냐 명예회복이냐의 기로에서 진퇴를 결정해야 할 운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 이 글은 2010년 4월 14일, < 미디어 오늘 >에 함께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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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국가는 증거로 말하라

하태훈 교수
(고려대 법핟전문대학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국가는 증거를 갖고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 말은 국방부와 언론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명백한 증거도 없이 북한 관련 추정과 추측으로 몰아가자 대통령이 던진 주문이다. 이 주문의 메시지는 검찰과 법원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검사는 객관적 증거를 갖고 기소해야 하고 법원은 증거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검사는 주관적 혐의만으로 기소할 수 없다. 참고인의 입에 의존한 공소장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객관적 증거가 뒷받침되어 유죄판결을 받을 자신이 있을 때 기소해야 하는 것이다. 법원도 사실 인정은 증거로 해야 한다.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되어야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다.

오늘 한명숙 전 총리 수뢰사건의 유·무죄가 선고된다. 재판부가 공여자 곽영욱씨의 오락가락한 진술의 신빙성과 임의성을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명한 것은 판결이 어떻게 나든 상관없이 이미 검찰은 판정승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유죄가 선고된다면 검찰의 한판승이겠지만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얻은 게 적지 않다. 검찰의 한 전 총리 흠집 내기와 이에 동조한 언론의 피의사실 공표로 지방선거를 앞둔 한 전 총리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뇌물의 액수와 제공 방법에 관한 진술이 오락가락했지만 이미 오찬장에 돈을 놓고 나왔다는 사실은 기정사실화되었으므로 무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증거가 없어서 그럴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골프채와 골프빌리지의 선입견 효과 때문에 ‘뭔가 있었겠지’라는 인상은 잔상으로 남아 있다.

검찰, 한 전총리 흠집내기 판정승

요즈음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기소 자체만으로 성과를 거두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의 무리한 형사범죄화 시도로 국민들이 정부 정책 비판을 주저하게 되고 표현의 자유나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수사받을 것이 두려워 자기검열을 하기도 한다. 무죄판결의 치욕을 당하고서도 영전하는 선배 검사들을 본 담당 부장검사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곽씨의 진술 외에 물증도 없이 기소하는 공소권 남용의 유혹을 느꼈을 수도 있다. 돈을 건넨 사람이 처벌될 위험을 무릅쓰고 자백을 했다는 것도 석연찮은 일이지만, 번복 가능성이 농후한 진술만 믿고 기소하다 보니 공판절차 내내 검찰은 곽씨의 입만 쳐다보는 애처로운 꼴을 보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공소사실을 특정해야 한다는 공소 제기의 기본도 지키지 않아 재판부로부터 지적을 받는 수모도 당했다. 범행의 방법은 피고인이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구체적으로 적시되어야 한다. 증뢰자가 건넸다는 사실만 있지 어떻게 받았는지도 나타나 있지 않다. 부실수사이니 공소유지도 무리였음은 공판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검찰은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을 다시 불러 조사하는 탈법을 행하고 형사소송법을 지키지 않은 증거 제출과,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피고인에게 신문권을 보장해 달라며 메아리 없는 무의미한 신문을 강행하는 무모함도 보였다.

기소만으로 성과, 기이한 현상

명백한 증거도 없이 돈을 건넸다는 사람의 진술에 의존해 기소하고 공소사실과 상관없는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서 유죄의 여론을 형성하려 애쓰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변함 없는 검찰의 모습이다. 변화된 공판중심주의 형사절차에 적응하지 못한 미숙함도 드러냈다. 과거에는 피의자의 자백이 들어 있는 피의자 신문조서만으로도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된 개정 형사소송법에서는 법정에서의 공격과 방어를 통해서 재판부가 유죄의 심증을 얻어야 한다. 이 사건으로 다시 한 번 검찰개혁이 시급한 과제임이 증명되었다.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한 전 총리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었지만 검찰 스스로도 만신창이가 되었음을 바로 보아야 한다.
 
( 이 글은 2010년 4월 9일, < 경향신문 >에 함께 실렸습니다. ) 

광장에나온판결_2010-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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